옆집 ‘청첩장’ 보고 ‘짝짓기’ 돌입
공정위의 허가를 받은 KT 합병법인 출범의 마지막 장애물은 ‘필수설비’ 논란과 ‘주식매수청구권’ 문제다. 공정위는 KT-KTF 합병 허가를 해주면서도 필수설비 논란에 대해선 ‘방통위가 판단할 사안’이라고 밝혔다. 여기서 필수설비란 ‘누구든 현실적으로 다시 만들기 쉽지 않은 설비’를 일컫는다. KT가 전국적으로 보유한 통신용 관로와 전화선, 전주, 전화국의 각종 장치용 시설, 통신장비와 연결되는 가입자망을 뜻하는 것이다.
초고속인터넷뿐 아니라 인터넷전화-IPTV-이동전화까지 묶은 결합상품 시대를 맞으면서 가정까지 망을 설치하려면 관로와 전주의 확보가 필수적이다. 경쟁사들은 상대적으로 요금이 비싼 한전이나 LG파워콤 등 후발사업자들의 설비를 이용하고 있는 형편인데 그나마 한전의 전주는 포화상태에 이르렀다고 한다. KT가 보유한 필수설비를 일부 제공받으려는 경쟁업체들과 이에 미온적 자세를 취하는 KT 간의 관계를 방통위가 어떻게 풀어낼지가 관심사다.
주식매수청구(합병 등의 요인으로 주주 이익에 변화가 생긴다고 판단될 때 소유 주식을 공정한 가격으로 매수할 것을 회사에 요구하는 것) 문제도 변수가 될 수 있다. KT는 지난 1월 20일 회사합병 결정 공시를 통해 ‘KT 주주들의 매수청구금액이 1조 원을 초과하는 경우 또는 KTF 주주들의 매수청구금액이 7000억 원을 초과하는 경우 합병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합병 과정에서 매수청구권 비용이 과도하게 집행되면 경영에 부담으로 작용, 합병 시너지 효과가 없다는 판단에서다. 뜻하지 않은 주가 폭락 사태가 일어나 주식매수청구를 하는 주주가 많아질 경우 합병법인 출현이 연기될 수도 있는 셈이다. 현재 KT는 거액 합병자금 마련 등을 위해 올해 2분기까지 최대 1조 2000억 원 규모의 회사채 발행 계획을 세워놓은 상태다.
이석채 KT 사장은 얼마 전 방통위 전체회의에서 “현대차와 와이브로(Wibro·초고속 무선인터넷) 사업에 대해 논의 중”이라며 “와이브로와 3세대 이동통신 서비스의 결합상품을 만들려면 제조업체의 협력도 필요하다. 삼성전자와 LG전자가 협조해줘야 한다”고 밝혔다. ‘KT가 잘 돼야 국가경제도 잘 된다’는 논리 설파에 앞장서고 있는 셈이다.
KT 합병법인의 등장은 경쟁사들의 합병을 부추기는 현상으로 이어질 듯하다. KT-KTF 합병이 기정사실화하면서 이동통신업계 1위 SK텔레콤의 SK브로드밴드(옛 하나로텔레콤) 합병 여부가 주목을 받고 있다. SK텔레콤은 지난해 유선업체 하나로텔레콤을 인수해 유선사업 확장 기반을 다지면서 합병 관측을 낳았다. SK 측은 “합병 계획이 없다”는 입장이지만 매출액 19조 원이 예상되는 KT 합병법인에 맞서려면 SK텔레콤-SK브로드밴드 합병을 통한 시너지 창출이 우선과제로 여겨지는 분위기다. SK텔레콤은 지난 2002년 신세기통신 합병을 통해 이동통신시장 1위 자리를 누구도 넘볼 수 없게끔 만든 바 있다.
통신업계에선 최태원 SK그룹 회장 친동생 최재원 E&S 부회장이 SK텔레콤 사세 확장 작업의 선봉에 설 가능성에 주목한다. SK텔레콤은 지난 13일 주총을 통해 최재원 부회장과 정만원 SK텔레콤 사장을 사내 등기이사로 신규 선임했다. 정만원 사장이 대표이사를 맡았지만 경영상 무게 추는 최재원 부회장에 쏠릴 듯하다. SK그룹은 정체기를 맞이한 SK텔레콤에 추진력이 돋보이는 최재원 부회장의 가세가 큰 힘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지난 2004년부터 SK텔레콤 대표이사를 맡아온 김신배 사장이 지난 연말 정기인사를 통해 SK C&C 부회장으로 승진 이동한 점도 최재원 부회장의 SK텔레콤 내 활동반경 확대를 예감케 하는 대목이다. 최재원 부회장은 SK텔레콤과 동시에 지주사 SK㈜ 사내 등기이사로 신규 선임돼 최태원 회장과 그룹의 전폭 지원하에 SK텔레콤의 영토 확장을 진두지휘할 전망이다.
비록 KT나 SK텔레콤에 비해 규모는 처지지만 LG텔레콤의 몸 불리기도 업계의 관심사다. KT-KTF 합병법인과 SK텔레콤-SK브로드밴드 결합체가 출현할 경우 LG텔레콤 역시 합병 수순을 피할 수 없을 전망이다. 이동통신 시장에서 SK텔레콤과 KTF에 밀려온 LG텔레콤이 유선업체 LG데이콤과 인터넷 업체 LG파워콤을 흡수해야 유무선 통합상품 시대에서 도태되지 않을 것이란 지적이다.
LG데이콤의 자회사인 LG파워콤은 지난해 11월 유가증권시장(코스피)에 상장됐다. 글로벌 경제위기로 인한 하락장세 속에 상장일정을 철회하는 회사들이 속속 등장했음에도 상장을 강행했다. 이는 이미 상장돼 있는 LG데이콤과의 합병을 용이하게 하려는 수순으로 해석되기도 했다. 당시 LG파워콤 측은 합병설을 부인했지만 KT-KTF 합병이 사실상 종착지에 이르면서 이젠 LG데이콤-LG파워콤뿐만이 아닌 LG텔레콤까지 한데 묶는 합병안이 업계에서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LG텔레콤은 4월 말까지 전국 1700여 개의 직영점과 대리점의 간판을 자사의 무선인터넷 서비스 브랜드명인 ‘OZ’(오즈)로 전면 교체할 예정이다. KTF가 ‘SHOW’(쇼)로 간판을 교체하면서 쏠쏠한 재미를 본 것을 답습하는 셈. LG 측은 합병설을 부인하고 있지만 업계 인사들의 시선은 벌써 SK텔레콤과 KTF의 양강 구도에 눌려온 LG텔레콤이 합병을 통해 돌파구를 찾을 수 있을지에 쏠리고 있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