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사고에 멍드는 ‘MK의 꿈’
▲ 충남 당진에 건설 중인 일관제철소 현장을 둘러보고 있는 정몽구 회장. 일관제철소는 고 정주영 명예회장이 두 번이나 추진하다 좌절됐던 숙원사업이었다. | ||
지난 3월 15일 일요일 저녁 현대제철 고로 신설 현장 C 지구에서는 장 아무개 씨(36)를 비롯해 노동자 다섯 명이 작업을 하고 있었다. 당시 장 씨는 6m 높이의 공중에서 채널(철제 판자와 판자를 서로 연결한 것으로 공사현장에서는 보통 ‘잔넬’이라고 부름)을 설치한 뒤 ‘실링벨트’의 후크(고리)를 제거하던 중이었다. 그때 갑자기 채널이 부러지면서 장 씨를 정면으로 강타했다. 중심을 잃은 장 씨는 튕겨져 추락해 목숨을 잃었다.
장 씨 사망 소식이 알려진 후 현장 노동자들은 그날 상황에 대해 여러 문제점들을 제기했다. 우선 ‘강풍이 부는 기상 여건 속에서 굳이 야간에 작업을 강행할 필요가 있었느냐’는 것이다. 더욱이 당시 조명이라고는 크레인에 설치한 불빛뿐이었다고 한다. 또한 현장에는 안전로프 등 최소한의 안전장치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장 씨 사망의 결정적인 원인이었던 채널도 용접불량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는데 당시 현장에 있던 노동자들 중에서는 전문 용접사가 한 명도 없었다고 한다. 일관제철소 공사현장에서 일하는 한 노동자는 “주먹구구식으로 작업이 진행되는 곳이 많다. 안전교육이 잘 이뤄지지 않고 완공 기일을 무리하게 맞추려다 이러한 일이 발생한 것 같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노동자들과 장 씨 유가족들은 사건현장이 훼손된 것에 대해서 은폐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날이 밝은 다음날 아침 사고 현장을 찾아갔지만 이미 흙으로 묻힌 상태였기 때문. 이를 본 유가족들은 “어떻게 사고 현장을 훼손할 수 있느냐”며 울부짖었다고 한다. 이 때문에 노동부와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의 현장 조사도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었다.
노동자들은 사고 발생 후 사측이 취했던 대응 태도 역시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당진에 위치한 전국건설플랜트노동조합(노조·위원장 윤광재) 충남지부의 한 관계자는 “그동안 크고 작은 추락 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해 안전조치를 여러 차례 요구했지만 그때마다 현대제철은 물론 건설에 참여하고 있는 협력업체들 역시 들은 척도 안했다. 그동안 발생했던 사고의 정확한 통계조차 나오지 않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장 씨가 사망한 이후에도 추락사고가 발생해 현재 한 노동자가 의식불명 상태라고 한다.
노조는 이번 사고가 발생한 뒤 회사 측으로부터 어떠한 안전교육도 받지 못했다고 전했다. 또한 현장 전파가 전혀 이뤄지지 않아 아직 사고 소식조차 듣지 못한 노동자들도 상당수라고 한다. 이는 ‘될 수 있으면 사고를 감추려고 하는 회사 측 태도 때문’이라고 노조는 지적한다.
노동부 등에서 현장 조사를 위해 나온 조사관들도 비난받고 있다. 사건 현장이 훼손된 상태에서 1시간 만에 모든 조사를 끝마치고 돌아갔기 때문이다. 더욱이 조사관들은 정확한 진상 파악을 원하는 유가족들의 면담 요청마저 계속 거절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현장에서 ‘노동부 조사는 회사 측과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는 비아냥거림이 흘러나올 정도다. 이에 대해 노동부 관계자는 “공정하게 조사했고 숨기는 것 없이 결과를 발표할 것”이라는 공식적인 입장을 내놨다.
현대제철 일관제철소 공사현장의 안전문제가 도마에 오른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3월엔 용접작업을 하고 있던 노동자가 수톤 무게의 쇳덩이에 깔려 사망한 사고가 발생했다. 당시 이 쇳덩이를 지탱하던 안전장치가 마모된 상태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같은 달 같은 장소에서는 한 노동자의 팔이 절단되는 사고가 일어나기도 했다. 또한 지난해 10월에도 한 노동자가 복통을 호소하며 갑자기 쓰러져 숨졌는데 이 과정에서 안전조치 미숙과 구급차의 현장진입 어려움 등이 문제가 됐었다.
이처럼 공사현장에서 사고가 잇따르자 현대제철도 곤혹스러운 분위기다. 일관제철 사업은 정몽구 현대·기아차 회장이 “내 인생의 마지막 사업”이라고 말했을 정도로 애착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정 회장은 공사장의 첫 삽을 뜬 이후 월 1~2회꼴로 당진을 방문해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2006년 비자금 사건과 관련해 구속됐다 보석으로 풀려난 직후 방문한 곳도 이 곳이었다.
일관제철 사업은 정 회장의 부친인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숙원 사업이기도 하다. 정 명예회장은 1977년과 1994년 두 차례에 걸쳐 사업 진출을 추진했지만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결국 세상을 떠났다. 그 뒤를 이어 정 회장이 아버지의 못 이룬 꿈을 이루기 위해 일관제철소 건설을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정 회장의 관심이 현장에서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는 견해도 있다. ‘공사 기일을 맞추고, 성과에 급급한 나머지 정작 노동자들에 대한 안전조치는 부실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대제철 측은 정 회장이 제철소 착공 이후 여러 차례 ‘무재해’ 원칙을 강조해 왔다고 강변한다. 지난해 3월에도 현장을 찾아 관계자들에게 “대규모 공사현장은 무엇보다 안전이 가장 중요하다. 안전을 최우선으로 두고 공사에 임하라”고 주문했다는 것.
현대제철 관계자는 “항상 안전관리에 신경을 쓰고 있을 뿐 아니라 공사를 맡은 시공업체에도 수시로 안전을 기해달라고 당부하고 있다”면서 “사실 공사를 발주한 업체에게 책임을 묻는 것도 억울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이번에 사고 난 현장 시공사인 로템 측은 “항상 안전에 신경 쓰고 있다”고만 밝혔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