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가’를 위한 ‘알토란’ 모으기?
그런 최 회장이 틈만 나면 하는 일이 또 있다. 자신이 회장으로 있는 SKC 주식 매입이다. 최 회장은 지난 2005년에만 해도 1%에도 못 미쳤던 SKC 지분율을 3년 만에 3.15%까지 늘렸을 정도다. 그런데 그가 최근 들어 틈틈이 SK증권 등 다른 계열사 주식을 조금씩 사들이고 있어 눈길을 끈다.
최신원 회장은 지난 1월 3일 SKC 주식 5000주 매입에 이어 3월 19일 8000주를 사들이는 등 SKC 지분 늘리기 행보를 멈추지 않고 있다. ‘여력이 있을 때마다 SKC 지분을 사들인다’는 평까지 들을 정도로 SKC 지분율 높이기에 열심이다. 그러나 사촌동생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기가 좀처럼 어려워 보인다. 그룹 지주사인 SK㈜가 SKC 지분 42.50%를 보유한 반면 그의 지분율은 3.15%에 불과해 ‘빅딜’이 없다면 추월은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최신원 회장의 친동생 최창원 SK케미칼 부회장은 이미 SK케미칼 계열을 SK그룹에서 분리할 수 있는 요건을 갖춘 상태라 최신원 회장의 발걸음은 더욱 바쁠 것으로 보였다.
그런데 ‘SKC 올인’으로 대변되던 최신원 회장의 주식 매입 패턴에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최근 들어 SK증권 주식을 틈틈이 사들여 지분율을 늘려가고 있는 것이다. 최신원 회장은 지난 2월 4일 SK증권 1만 주 매입을 통해 SK증권 주주명부에 처음으로 이름을 올렸다. 다음날인 2월 5일에도 1만 주를 사들인 최신원 회장은 2월 19일엔 3만 주, 3월 18일 3만 주, 3월 20일 2만 주에 이어 3월 25일 2만 주를 추가 매입했다. 이로써 총 12만 주를 확보한 최신원 회장의 지분율은 0.04%에 불과하지만 최태원 회장의 친동생인 최재원 SK E&S 부회장(8만 8481주)을 앞질러 개인 최대주주로 부상했다.
SKC 지분율 늘리기가 지상과제일 것 같았던 최신원 회장이 SK증권 주식 매집에 나선 배경에 대해 재계에선 이런저런 해석을 내놓고 있다. 우선 지난 2월 ‘증권사의 지급·결제 기능 허용’을 골자로 하는 자본시장통합법(자통법) 시행으로 증권사 가치가 높아졌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지난해 대기업들의 증권사 인수가 줄을 이었던 것도 ‘법 개정 특수’를 염두에 둔 새 캐시카우(현금창출원) 확보 차원에서였다.
최신원 회장이 처음 SK증권 주식을 매입한 2월 4일 1525원이었던 주가가 3월 25일 현재 2315원까지 올라섰을 만큼 그 투자가치가 최신원 회장에게 충분히 어필했을 것이란 지적이다. SK증권 투자 차익을 SKC 지분 매입용 실탄으로 활용할 가능성도 점쳐진다. 물론 최신원 회장의 SK증권 지분율이 앞으로 더 크게 늘어나고 SK증권 주가도 훨씬 더 오른다는 가정하에서만 가능한 시나리오다.
▲ 최태원 SK 회장(왼쪽)과 최신원 SKC 회장. 최신원 회장이 최근 들어 SK증권 주식을 틈틈이 사들이자 그 배경에 대해 추측이 무성하다. 사진은 합성. | ||
일부 재계 관계자들은 ‘최태원 회장이 SK증권을 애지중지한다’는 데서 최신원 회장의 SK증권 지분 매입 배경을 찾기도 한다. 사실 최신원 회장에 앞서 SK증권에 대한 투자자들의 관심을 고조시킨 것은 최태원 회장이었다. 지난 2월 말 최 회장이 지주사 SK㈜ 주식을 거의 대부분 처분하면서 약 900억 원의 SK㈜ 주식 매각대금으로 SK증권 등 계열사 지분 추가매집에 나설 것이란 관측이 제기됐다.
지난 2007년 6월 지주회사제 전환을 선언한 SK그룹은 오는 6월까지 지주사 요건을 충족시켜야 한다. 현행법상 일반 지주사는 금융 자회사 및 손자회사를 둘 수 없으므로 SK㈜의 손자회사인 SK증권에 대한 매각설이 나돌기도 했다. 그러나 자통법 시행 등으로 증권사를 포기할 수 없게 된 최태원 회장이 주식 매각대금을 활용해 SK증권 지분을 사들일 가능성이 거론된 것이다.
SK 측은 “국회에서 논의 중인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SK증권을 매각할 이유가 없다”며 최태원 회장의 지분 매입설을 일축해왔다. 그런데 지난 2월 임시국회에선 출자총액제한제도 폐지안만 통과됐을 뿐 지주사 요건 충족기한을 2년에서 3년으로 늘리는 안과 일반 지주사의 금융 자회사·손자회사 보유를 허용하는 안의 처리는 미뤄진 상태다. 재계에선 여·야 대치정국으로 관련 개정안의 국회 통과를 장담할 수 없는 가운데 SK가 최대 2년까지 가능한 지주사 요건 충족기한 연장을 당국에 신청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런 시점에 최신원 회장이 SKC에 비해 주가가 저렴한 SK증권 주식 보유고를 야금야금 늘려가면서 SK증권에 대한 입김을 높이려 할 가능성이 주목을 받는다. 최신원 회장의 SKC가 SK증권 지분 12.26%를 가진 2대주주란 점도 최신원 회장의 SK증권에 대한 영향력 강화 의지를 부추길 요인으로 꼽힌다. 최신원 회장이 지난 2월 24일 SK네트웍스 지분 1만 3700주를 매입, 보유주식 총수를 1만 8000주로 늘린 점도 주목할 만하다. SK네트웍스는 SK증권 지분 22.71%를 보유한 최대주주다.
최근 들어 SK증권은 ‘언제 매각설이 나돌았느냐’고 할 정도로 몸집 키우기와 관련해 이런저런 소문들을 낳고 있다. 얼마 전 “SK증권이 하나대투증권 일부 지점을 인수할 것”이란 소문이 나돌아 지난 3월 19일 유가증권시장본부에서 이에 대한 조회공시를 요구하기도 했다. SK증권은 공시를 통해 ‘인수설은 사실이 아님’이라고 밝혔지만 재계 관계자들은 최태원 회장이 법 개정 등 시장 환경변화에 따라 SK증권을 그룹의 새로운 동력으로 삼으려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일각에선 최태원 회장이 애지중지하는 SK증권에서 최신원 회장의 지분율이 조금씩 높아지는 것을 분가 전망과 연결하기도 한다. SKC 지분율 따라잡기가 여의치 않은 최신원 회장이 SK증권에 대한 영향력 강화를 통해 훗날 최태원 회장과의 계열분리 담판에서 조금이라도 우위를 점하려는 행보의 일환으로 보는 것이다.
SK증권에 앞서 최신원 회장이 계열분리 살림으로 워커힐을 요구할 가능성 역시 재계인사들 사이에서 꾸준히 제기돼 왔다. 고 최종건 회장이 1973년 인수해 말년까지 기거했던 워커힐에 최신원 회장이 깊은 애정을 갖고 있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최신원 회장이 지난해 11월 워커힐에서 거행된 최종건 창업주 35주기 행사를 주재하면서 선친과 워커힐에 대한 그의 애착이 다시 한 번 부각되기도 했다.
그런데 SK증권이나 워커힐은 최태원 회장에게도 남다른 의미가 있다. 지난 외환위기 당시 선친인 최종현 회장은 투병 중임에도 불구하고 동분서주하며 위기에 놓였던 SK증권을 살려냈다. 고 최종현 회장은 따로 집을 얻지 않고 워커힐 빌라에 기거했으며 최태원 회장 역시 결혼 전까지 워커힐에 살았다. 최신원 회장의 분가행보를 기정사실로 보는 재계 인사들은 조만간 SK ‘분가혈전’의 무대가 SKC를 넘어 SK증권과 워커힐까지 넓혀질 가능성을 주시하고 있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