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품’ 팔기 전 ‘발품’ 먼저 팔아라
승진이 늦어서 항상 불만이었던 A 씨는 금융회사를 그만두고 프랜차이즈 패스트푸드 회사로 직장을 옮겼다. 그의 새 업무는 점포를 개발하는 일이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건물주들과 접촉이 잦아지고 자신의 회사 점포 입주와 관계없이 많은 건물주들과 친분을 쌓게 됐다. 그러던 차에 그는 상사와의 마찰로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다.
회사를 그만둔 A 씨는 머리도 식힐 겸 새로운 인생의 구상을 위해서 외국 배낭여행을 하기로 했다. 행선지는 미국. 아무래도 선진국이고 땅덩어리가 넓은 다문화 국가니 볼 게 많을 것이라고 생각을 했다. 가족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혼자서 약 2개월에 걸친 여행을 감행하고 돌아오자 안부전화가 걸려왔다. “잘 있나. 나 ○○빌딩 김 사장인데 별일 없어?”라면서 시작된 전화 통화는 바로 하소연으로 이어졌다.
‘지금 경기가 어려운데 입주자들이 월세를 잘 내질 않아서 힘들다. 특히 1층에 있는 옷가게는 지금 1년째 밀리고 있다. 다들 어려운 처지에 들어올 사람도 마땅치가 않고 비워두면 임대도 잘 안 되는 것으로 보여 오히려 손해라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혹시 당신 회사에서 입주를 할 생각이 있느냐’는 내용이었다. 여행에서의 경험이 스쳐지나간 A 씨는 ‘지금 회사를 그만두고 창업을 계획하고 있다. 내일 당장 찾아뵙겠다’고 했다.
A 씨의 머릿속에 미국 배낭여행에서 보았던 유명 도넛 체인이 떠올랐던 것이다. 그는 즉시 체인가맹 조건 등을 확인한 후 ○○빌딩 1층을 임대하고 창업 준비를 시작했다. 개업까지는 2개월이 걸렸다. 그는 본인이 직접 도넛을 만들기도 하고 식자재를 도매시장에서 구매하는 등 비용을 줄였다. 지역 특성상 주변에 어학원과 개인 사무실이 많다 보니 영업시간도 새벽 6시부터 밤 11시까지 최대한 늘려 잡았는데 영업시간에는 절대 자리를 비우지 않았다. 이렇게 철저한 관리로 그는 개업 3개월 만에 장인에게서 창업자금으로 빌렸던 5000만 원을 상환하기에 이른다. 얼마 뒤 월 매출은 1억 원을 훌쩍 넘겨버렸다. 개업 후 100일 만에 친구들과 만난 A 씨는 친구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왜 진작 창업을 생각하지 못했는지 후회된다. 항상 편하게 월급을 받다 보니 내 일을 하면 이렇게 보람되고 수입도 많아진다는 걸 몰랐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너희들도 창업을 해라. 지레 겁먹지 말고 잘 찾아보면 좋은 업종도 많이 있고 돈도 생각보다 많이 들지 않는다. 다만 부지런해야 한다.” 지금 A 씨는 가게를 더 내기 위해서 시장을 조사하고 자리를 보러 다니고 있다. 행복한 마음으로.
B 씨는 직장에서 명예퇴직을 하고서 1년여를 쉬었다. 그러다가 친구가 권유한 사업에 손을 댔으나 그대로 전부 날려먹고 말았다. 친구가 B 씨를 감언이설로 속였던 것이다. B 씨는 실의에 빠져서 술과 방탕한 생활로 6개월을 보낸 뒤 재기를 하기로 결심하고 할 일을 찾아보았다. 3개월 만에 찾아낸 것이 망해버린 식당이었다. 시내지만 낡은 건물 2층의 허름한 상가라 거의 거저 주는 가격에 나온 것이다. B 씨는 집기를 포함, 그대로 식당을 인수했다.
B 씨는 혼자 운영하기 좋은 식당을 차리기로 했다. 그는 우선 메뉴를 단일화시키면서 가격을 낮췄다. 메뉴는 쇠고기 생등심, 식사는 김치찌개 한 가지로 정했다. 다른 반찬을 모두 없애고 김치와 부추무침 그리고는 야채만 내놨다. 영업시간도 오후 5시 30분부터 시작해서 마지막 주문은 9시 30분까지로 한정했다. 주변에서는 다들 걱정했지만 B 씨는 기업들이나 관공서가 있어서 분명히 성공할 것으로 확신했다.
결과는 B 씨의 예상대로였다. 저렴한 가격으로 등심을 먹을 수 있고 분위기도 편안하다 보니 주변 직장인들의 회식장소로 환영을 받았다. 입소문이 나 지금은 예약을 하지 않으면 자리가 없을 정도에다 다른 지역에서도 찾아오는 명소가 되었다. 바쁠 때는 가족들이 돌아가면서 나와 도와주고 그렇지 않을 때는 철저하게 혼자서 운영하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 주중에만 영업을 하고 주말에는 예약된 10명 이상의 단체손님만 받으니 휴식시간도 충분했고 재료를 구입하고 준비하는 시간도 여유 있었다. 얼마나 버느냐고 물으면 그는 “그냥 억대 연봉을 번다고만 생각하라”고 말한다. 아마도 순수익이 월 600만 원 이상은 될 듯싶다. 아픈 기억을 잊어버리고 새롭게 출발해서 성공한 B 씨의 사례는 듣는 이까지 흐뭇하게 한다.
직장인인 C 씨는 그동안 모은 돈으로 부인을 시켜 꽃집을 차렸다. 본인이 직장생활을 계속하고 있으니 최소한 망하더라도 먹고사는 걱정은 없을 것으로 생각했다. 게다가 영업을 오래한 그는 자기 회사 물량만 가져와도 충분할 것으로 판단했다. ‘우리 영업부에서 한 달에 거래처에 보내는 화분이나 화환만 해도 100개 넘으니 그것만 해도…’라고 예단한 것이다.
그러나 지금 C 씨에게 남은 것은 빚 독촉뿐이다. C 씨나 그의 부인은 원예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었다. 게다가 살림만 해온 아내는 가정생활과 부업이 힘에 겨웠다. C 씨야 저녁에 퇴근해서 도와주는 것이 전부인데 아내는 아이들도 챙겨야 했고 집안 살림도 해야 했으니 그 고충은 말로 할 수가 없었다. 판매도 녹록지 않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차장급인 C 씨보다도 훨씬 더 높은 이사의 가족이 이미 화원을 경영하면서 회사 물량의 거의 대부분을 소화하고 있었던 것이다.
C 씨는 결국 가게를 유지하기 위해서 은행 대출을 받게 되었다. 경기가 어렵다 보니 회사에서도 감원이다 구조조정이다 해서 어수선한 분위기여서 쉽사리 부업을 한다는 이야기도 꺼내기가 어려웠다. 자칫 부업이 있다고 알려지면 정리대상에서 우선순위에 오를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전부 손해를 보고 은행 빚만 남은 것이 현재의 상황이다.
C 씨는 한마디로 잘 알지도 못하면서 무작정 저질러 버린 것이 나중에는 큰 화로 닥치게 된 경우다. 아무리 부업이라고 하지만 어떠한 경우에도 내가 잘 아는 업종이거나 아니면 전문적인 지식이 있어야 한다. 최소한 기술이라도 가지고 있는 상태에서 시작을 하거나 판단하는 것이 좋다. 아니 그래야 한다. 그리고 발품을 파는, 철저하고 실질적인 사전 조사를 한 후에 가부를 결정하는 것이 알토란 같은 내 돈을 지키는 법이다.
한치호 재테크전문 기고가 hanchi1019@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