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어보니 ‘말기암’ 우리 보고 어쩌라고…
강덕수 STX그룹 회장.
STX그룹은 현실적으로 강덕수 회장이 전문경영인으로서라도 그룹을 이끌기를 바라는 마지막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최근 주요 계열사들이 잇달아 법정관리 혹은 자율협약에 착수하고 있는 상황에서 국내 3대 해운사인 STX팬오션마저 산업은행으로의 피인수가 불투명해지면서 구조조정 작업 차질이 예상되는 데다, 채권단은 강 회장의 지분 전량에 대해 매각을 검토 중이기 때문이다.
STX그룹은 지난해 말부터 유동성 확보 차원에서 STX팬오션 매각을 추진해 왔지만 공개 매각에 실패했다. STX그룹은 STX팬오션의 공개매각이 무산되자 지난 3월 말 산업은행 사모펀드부(PE)에 인수를 요청했다. 그런데 산업은행이 태스크포스팀(TFT)을 꾸려 STX팬오션 인수에 대한 예비실사를 실시했지만 예상보다 부실이 심각해 인수하기 어렵다는 잠정 결론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까 보니 생각보다 더 많이 썩은 양파였던 것.
지난 2009년 금호그룹 구조조정 당시의 ‘트라우마’를 갖고 있는 산은으로서는 STX팬오션 인수를 주저할 수밖에 없는 결정적 이유인 셈이다. 산은은 지난 2009년 금호그룹 구조조정 당시 사모투자펀드(PEF)를 통해 금호생명을 인수한 후 대기업 특혜 지원 논란을 불러일으키며, 감사원과 검찰 등으로부터 집중 포화를 맞은 바 있다.
문제는 정부의 생각이 산은과 다르다는 것. 정부는 STX팬오션이 무너질 경우 우리나라의 해운산업에 대한 국제적 신인도 하락 등을 불러 올 수 있는 만큼 어떻게든 STX팬오션을 살려야 한다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관련, 최근 홍기택 산은금융지주 회장 겸 산업은행장은 최근 정부 고위당국자와 만나 채권단이 STX그룹에 유동성을 지원하는 대신 대규모 손실이 발생하더라도 감사원이나 검찰 등 사정기관에서 문제를 삼지 않겠다는 약속이 선행돼야 한다는 뜻을 비공식적으로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STX그룹의 회생 가능성에 대한 채권단의 부정적 시각을 간접적으로 전달한 것으로 보인다는 게 금융권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아직 공식적으로 전혀 결정된 게 없는 상황에서 사실과 다른 얘기들이 계속 흘러나오고 있다”며 일련의 언론 보도를 사실상 부인했다.
채권단이 공동 집도하는 대대적 수술을 앞두고 수술대에 누워 있는 STX그룹을 누구보다 애타게 지켜보는 사람은 다름 아닌 강덕수 회장이다. 이미 채권단에 지원을 전제로 지분과 경영권 위임을 내걸며 ‘백의종군’의 뜻을 밝힌 바 있는 강 회장이다. 우리은행은 그런 강 회장 지분의 전량 매각을 검토하고 있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우리 측에 대출 담보로 잡혀 있는 강 회장의 (주)STX주식은 구조조정 과정에서 감자가 진행돼 휴지조각이 되기 전에 다 파는 게 맞고, 실제 매각을 검토하고 있다”며 “하지만 강 회장이 개인 대출을 줄이려고 주식을 판다는 오해를 받을까봐, 산업은행의 주도로 진행되는 그룹 전체 구조조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서도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이와는 별개로 지배구조상 지주회사인 (주)STX의 위에 위치하는 포스텍의 자율협약 수용도 어렵다는 게 금융권의 중론이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포스텍이 강 회장 개인 회사나 마찬가지라 이런 회사까지 살려야 하냐는 부정적 기류가 강한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연호 기자 dew9012@ilyo.co.kr
정치권 STX지원 배경
PK, 금융당국 압박 중
“한때 경남의 조그만 동네에서는 거의 매일 STX조선 정규직 전환을 축하하는 잔치가 벌어졌다.”
STX그룹 관계자의 말이다. 조선업이 호황일 당시 지역경제의 고용창출에 큰 영향을 끼쳤다는 뜻이다. 채권단의 한 관계자는 “STX가 부산·경남 지역에서 직접 고용하는 인원이 4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이처럼 덩치가 워낙 크다 보니 당장 리스크를 감수해야 하는 채권단과 달리 정부 당국에서는 이 회사를 어떻게든 살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STX그룹의 지역 위상을 반영하듯 최근 정계에서도 STX 지원에 대해 연이어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를 두고 재계 일각에서는 강 회장이 정치권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는 것 아니냐는 추측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지난 4월 부산 영도 재선거를 통해 국회 재입성에 성공한 김무성 새누리당 의원은 “STX가 무너질 경우 PK 지역경제가 쑥대밭이 되고 서민경제에 엄청난 피해가 예상되는 만큼 반드시 살려야 한다”며 “STX그룹에 대한 금융당국과 산업은행의 지원 의지가 부족하다”고 비판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권 실세인 김 의원의 이 같은 발언이 STX 회생을 위한 금융 당국의 지원 의지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을지 재계는 주목하고 있다.
경남도의회는 지난 9일 청사 외벽에 STX그룹의 경영정상화를 기원하는 대형 현수막을 내걸어 관심을 끌기도 했다. 또 강만수 전 산은금융지주 회장 겸 산업은행장은 자리에서 물러나기 직전인 지난 2월 말 계열사 대표들과 가진 회의에서 STX그룹 등 회사채 상환에 어려움이 많은 기업들의 회사채 차환발행을 적극 지원할 것을 주문한 바 있다. 강 회장의 이런 주문이 있은 직후 산업은행은 지난 3월 STX팬오션의 회사채 400억 원을 매입하기도 했다.
하지만 STX그룹 관계자는 “강 회장은 샐러리맨 출신으로 정치권에 특별한 인맥이 있을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조선업계에서는 정부 측도 현 STX 부실의 원인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을 정부의 STX그룹 회생 의지와 연관 지으려는 시각도 감지된다.
업계 관계자는 “현재의 STX그룹 부실 사태는 경영진에게 일차적인 책임이 있겠지만 금융당국도 여기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라며 “지난 2008년 말 조선 산업이 세계 금융위기의 직격탄을 맞으며 불황에 빠지자, 금융권에서는 선박금융(선박건조를 위한 융자) 지원마저 끊어버렸다며 이로 인해 STX의 부실이 더 커질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이연호 기자 dew9012@ilyo.co.kr
PK, 금융당국 압박 중
서울 중구 남대문로5가에 위치한 STX남산타워 전경. 이상민 인턴기자
STX그룹 관계자의 말이다. 조선업이 호황일 당시 지역경제의 고용창출에 큰 영향을 끼쳤다는 뜻이다. 채권단의 한 관계자는 “STX가 부산·경남 지역에서 직접 고용하는 인원이 4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이처럼 덩치가 워낙 크다 보니 당장 리스크를 감수해야 하는 채권단과 달리 정부 당국에서는 이 회사를 어떻게든 살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STX그룹의 지역 위상을 반영하듯 최근 정계에서도 STX 지원에 대해 연이어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를 두고 재계 일각에서는 강 회장이 정치권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는 것 아니냐는 추측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지난 4월 부산 영도 재선거를 통해 국회 재입성에 성공한 김무성 새누리당 의원은 “STX가 무너질 경우 PK 지역경제가 쑥대밭이 되고 서민경제에 엄청난 피해가 예상되는 만큼 반드시 살려야 한다”며 “STX그룹에 대한 금융당국과 산업은행의 지원 의지가 부족하다”고 비판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권 실세인 김 의원의 이 같은 발언이 STX 회생을 위한 금융 당국의 지원 의지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을지 재계는 주목하고 있다.
경남도의회는 지난 9일 청사 외벽에 STX그룹의 경영정상화를 기원하는 대형 현수막을 내걸어 관심을 끌기도 했다. 또 강만수 전 산은금융지주 회장 겸 산업은행장은 자리에서 물러나기 직전인 지난 2월 말 계열사 대표들과 가진 회의에서 STX그룹 등 회사채 상환에 어려움이 많은 기업들의 회사채 차환발행을 적극 지원할 것을 주문한 바 있다. 강 회장의 이런 주문이 있은 직후 산업은행은 지난 3월 STX팬오션의 회사채 400억 원을 매입하기도 했다.
하지만 STX그룹 관계자는 “강 회장은 샐러리맨 출신으로 정치권에 특별한 인맥이 있을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조선업계에서는 정부 측도 현 STX 부실의 원인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을 정부의 STX그룹 회생 의지와 연관 지으려는 시각도 감지된다.
업계 관계자는 “현재의 STX그룹 부실 사태는 경영진에게 일차적인 책임이 있겠지만 금융당국도 여기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라며 “지난 2008년 말 조선 산업이 세계 금융위기의 직격탄을 맞으며 불황에 빠지자, 금융권에서는 선박금융(선박건조를 위한 융자) 지원마저 끊어버렸다며 이로 인해 STX의 부실이 더 커질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이연호 기자 dew901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