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용퇴론을 들고 나선 한나라당 소장파 의원들. 왼쪽부터 남경필, 이성헌, 권영세, 오세훈 의원.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이런 저런 ‘수모’를 당하기 전에 ‘명예롭게’ 물러나겠다는 노장 의원들도 늘어가고 있다. 이들 중에는 자신이 정계에서 물러나는 대신 자식들을 출마시켜 ‘정치인 대(代) 잇기’를 시도하는 경우도 있어 눈길을 끈다. ‘명분’과 ‘실리’를 동시에 추구하는 이들의 행보는 일면 긍정적 평가를 받으면서도 아버지의 ‘후광’에 기대어 새로운 ‘권력 세습’을 기도하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론도 적지 않다. ‘일전불사형’에서 ‘자진은퇴형’ ‘실리추구형’ 등 세대교체 요구에 대응하는 노장 의원들의 각양각색 행보를 훑어봤다.
‘일전불사형’은 ‘용퇴’ 요구에 거센 반감을 표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내놓고 소장파들과 ‘각을 세우는’ 이들은 많지 않다. 세대교체의 문제가 시대적 조류에 따른 측면이 있는 만큼 적극적인 공론화를 시도할 경우 수세에 몰리기 쉽다는 판단에서다. 때문에 이들은 공개적인 공방 대신 당 지도부에 대한 압력 행사를 통해 파장을 최소화하려는 우회 전법을 사용하는 경향이 많다.
그러나 공개적으로 소장파들과 정면으로 맞서는 강경파들도 있다. 한나라당 김용갑 의원(36년생)이 대표적인 경우. 김 의원은 소장파들이 ‘5·6공 출신 용퇴’를 주장하자 기자회견을 통해 “중요한 것은 ‘언제 어디에 있었느냐’가 아니라 ‘그곳에서 무엇을 했느냐’다”며 “5·6공에서 나의 역할에 자부심을 가진다”고 밝혀 주목을 받은 바 있다. 김 의원은 육사 17기 출신으로 안기부 기조실장과 청와대 민정수석, 총무처 장관을 지냈으며 ‘안보모임’ 회장을 맡는 등 당내에 대표적인 보수인사로 소장파들의 표적이 되어 왔다.
김 의원은 이처럼 ‘노장파 지킴이’ 역할을 자처하고 나선 것은 얼핏 감정적인 문제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의도된 측면이 강하다는 것이 한나라당 내 평가. 그는 지난해 12월 대선에서 한나라당이 패배한 이후 “명예롭게 은퇴할 것을 진지하게 고민하겠다”고 밝힌 적이 있다. 지난 2000년 16대 총선에 출마하면서도 “이번이 마지막”이란 말을 지역구민들에게 수 차례 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그러나 소장파들의 용퇴론을 주장하고 나서자 태도가 백팔십도 달라졌다. “스스로 판단해 은퇴 결정을 내리면 모를까 쫓겨나듯이 물러날 수는 없다. 내년 총선에 꼭 나가겠다”며 공언하기 시작한 것이다. 한나라당 주변에서는 “결과적으로 소장파들의 용퇴론 제기가 거취 문제에 대한 김 의원의 고민을 말끔히 해결해 준 셈이 됐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는 상황.
▲ 김용갑 의원 | ||
민주당 내에서는 구주류를 축으로 ‘노장 벨트’가 형성돼 세대교체론에 맞서고 있는 양상. ‘60세 이상’이라는 기준을 놓고 보면 박상천 최고위원, 정균환 원내총무, 김옥두 최명헌 유용태 최선영 최영희 김경천 의원 등 ‘민주당 정통성을 지키는 모임’(정통모임)의 핵심멤버들이 대부분 해당된다. 이 때문에 신당파에서는 “구주류들이 신당에 반대하는 이유는 외부인사들이 대거 영입될 경우 과거 경력에다 연령상 물갈이가 불가피할 것이란 우려 때문”이라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자진은퇴형’과 ‘실리추구형’은 앞서 언급한 대로 서로 맞물려 있는 경우가 대부분. 구성원을 개별적으로 들여다 보면 ‘명예롭게’ 결단을 내린 경우는 두 유형이 공존하는 반면 비리에 연루되는 등 여러 흠결로 인해 은퇴로 내몰린 경우는 반대 급부를 기대하기 어려운 형편이다. 전자의 대표적인 케이스는 박관용 국회의장. 6선 의원인 박 의장은 일찌감치 “(내년) 총선에 더 이상 출마하지 않겠다”고 천명했으며 최근에도 “라스트 신이 좋아야 감명 깊은 영화”라는 말로 심경의 변화가 없음을 확인시켜준 바 있다. 박 의장은 아들인 재우씨가 서울 마포갑에 출마 의사를 피력해 ‘의원 2대’ 달성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재우씨는 연세대 신방과를 나와 YTN 기자를 지냈으며 미국 유학 후 현재는 정보통신 관련 벤처회사를 운영중이다. 재우씨는 박 의장의 ‘후광’을 둘러싼 주변의 시선을 의식한 탓인지 “국회의장의 아들이라는 것이 운신에 많은 부담을 줘 득보다는 실이 많은 것 같다”고 밝히기도.
민주당 김상현 의원의 경우 아들 영호씨의 출마설이 나돌면서 일각에서 은퇴설이 나오고 있는 상황. 부자가 동시에 지역구에 출마한 경우는 과거에 없었기 대문에 이런 관측이 나오는 것 같다. 하지만 주변에선 김 의원의 지역구(광주 북갑) 출마를 기정사실로 여기고 있다. 지난해 8·8보궐선거를 통해 원내에 뒤늦게 재입성한 데다 김 의원 자신이 민주당 ‘위기 돌파의 주역’을 자임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 의원의 거취가 아들 영호씨의 출마 여부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시각이다. 영호씨는 중국 베이징대 국제정치학과를 졸업한 후 <스포츠투데이> 부설 한중문화연구소장 등 ‘젊은 중국통’으로 알려졌으며 부친의 오랜 지역구였던 서울 서대문갑 출마를 고려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 박관용 국회의장 | ||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은퇴를 검토중인 노장 의원들은 비리 연루 등의 이유로 출마해봐야 별반 승산이 없다는 판단이 작용한 경우가 많다. 지역구 내 군수 후보 공천 희망자들로부터 수억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기소된 경북의 K의원과 자신이 설립한 대학의 공금 1백여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경북의 P의원 등이 대표적이다. 또 세무조사 무마청탁과 함께 수천만원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는 서울의 P의원도 본인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은퇴설이 끊임없이 나돌고 있는 상황이다. 이준원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