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3일 의원총회를 하고 있는 한나라당 의원들. 신당에 대해 일단은 느긋한 모습이다. 이종현 기자 | ||
그렇다면 한나라당은 어떤 ‘손익계산서’를 도출해 냈을까. 한나라당으로선 내년 총선에서 여권의 표가 호남과 개혁세력으로 분열됨으로써 얻게 되는 반사이익에 웃음 짓고 있다. 또한 여권이 둘로 나누어짐으로써 정책공조 ‘경우의 수’가 이전보다 늘어나 내년 총선까지 정국 주도권을 더욱 탄탄하게 거머쥘 수 있다는 판단이다. 반면 신당 바람이 걷잡을 수 없이 불게 될 경우 지난 대선의 ‘노풍’처럼 또다시 내년 총선에서 ‘거꾸러질’ 가능성도 내심 우려하고 있다. 과연 한나라당은 신당 바람에 대비해 어떤 대응 전략을 세우고 있는 걸까.
한나라당에는 여권 신당 출현을 놓고 두 가지 기류가 흐르고 있다. 수도권 지역의 소장파 의원들은 신당의 폭발력이 상당할 것이라고 예견하고 있다. 오세훈 의원은 “신당이 뜨기 전에 정치개혁 프로그램을 선점하지 않으면 뒷북만 치게 되고 결국 그 영향이 총선에서 표로 연결될 것”을 염려하고 있다. 하지만 영남권 중진들의 경우 신당 바람은 ‘찻잔 속의 태풍’으로 그칠 것이라며 내심 느긋한 표정들이다. 박희태, 김용갑 의원 등은 “지역구에서 확실한 기반(박 의원은 하동 지역, 김 의원은 김해 김씨가 주된 기반)을 갖고 있기 때문에 신당 바람이 분다해도 지역의 고정표를 날려버리기는 힘들 것”이라고 진단하고 있다.
이런 두 가지 기류는 신당의 폭발력이 어느 정도 될지 가늠하지 못한 상태에서 나올 수 있는 예상된 결과다. 하지만 신당의 잠재력에 대한 당내 예측치는 초반 ‘미풍’에서 점차 ‘강풍’으로 변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한나라당 윤여준 의원의 분석은 눈여겨볼 만하다. 윤 의원은 최근 여의도연구소장에 임명돼 내년 총선의 실질적 전략가로 지목받고 있다. 윤 의원은 <일요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신당 바람에 대해 그 폭발력에 대해선 조심스런 입장을 밝혔지만 그 잠재력에 대해 높게 평가했다.
“아직 신당의 ‘로드맵’이 나오지 않아 예상이 조심스럽다. 하지만 한나라당으로선 신당 바람을 매우 경계해야 한다. 왜냐하면 신당이 반년 동안 온갖 잡음과 난리를 쳤는데도 불구하고 평균 지지도는 한나라당보다 조금 높게 나온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상식적으론 납득이 잘 안되는 결과다. 민주당이 저렇게 분당되어도 국민의 상당수는 이 갈등이 정치권이 뭔가 새롭게 태어나는 과정으로 인식하는 긍정적 시각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니까 신당이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도 있다. 이 점에서는 한나라당이 경계를 늦추어서는 안된다.”
한나라당의 또 다른 관계자 S씨도 신당 바람에 대해 경계의 목소리를 전하고 있다. S씨는 “그간 신당 논란이 확대될수록 민주당이 집권여당의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신·구파로 나뉘어 싸움만 한다고 비난했다. 하지만 그런 비난도 신당 출범이 가시화되면서 빛을 발하지 못하고 있다. 그동안 신당이 커지지 않을 것이라고 보고 무관심했는데 지금은 예상외로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한나라당도 ‘신당대응팀’을 만들어 조직적으로 대응해야 할 정도다. 그런데 지금 지도부는 신당에 대해 너무 안이하게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며 신당의 잠재력에 대한 경계심을 나타냈다.
그러면 한나라당이 신당 바람을 잠재울 수 있는 대응카드는 어떤 것이 있을까. 사실 한나라당은 지난 대선에서 ‘노풍’의 잠재력을 읽지 못하고 허무하게 패한 전력이 있다. 그래서 이번 총선에서는 최악의 상황만 가정하고 대응하자는 의견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신당 바람도 불고 노무현 대통령 지지율도 회복될 것을 전제로 모든 가능성을 검토해보자는 것.
▲ 지난 8일 민주당 신당준비위 기자회견 모습. | ||
그러면 내부 변화를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 먼저 수도권 소장파 의원들을 중심으로 한 ‘미래연대’ 그룹은 정치개혁의 이슈 선점을 주요 방법으로 내세우고 있다. 오세훈 의원은 이에 대해 “민주당에서 갈라져 나오는 신당은 당사 마련에 돈이 많이 들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원내 정당화를 추진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평상시에 지구당을 운영하지 않다가 총선이나 대선 직전에 지구당을 가동하는 미국식 지구당 제도를 도입할 가능성이 높다. 지구당 폐해가 많기 때문에 지구당 위원장직도 폐지할 가능성이 많다. 그리고 정치자금 내역도 시민단체가 주장하는 대로 투명하게 공표할 것이라고 본다”며 신당의 개혁프로그램을 예상했다.
오 의원은 신당의 이런 개혁 공세에 대해 한나라당이 수동적으로 따라가다 보면 결국 ‘뒷북정치’밖에 안된다고 보고 있다. 그 결과가 수도권에서의 신당 바람으로 이어질 것으로 우려하고 있는 것. 오 의원은 신당의 개혁 공세에 대한 대응 방식으로 적극적인 개혁 이슈 선점을 들고 있다. 오 의원은 “먼저 신당이 그들만의 카드로 들고나올 정치개혁 프로그램을 한나라당이 먼저 이슈를 제시하고 실천하는 모습을 보이자는 것이다. 당에서 빠른 시일 내에 정치개혁 화두를 먼저 수용해나가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상당히 중요하다. 한나라당이 정말 달라지고 있구나 하는 것을 꼭 보여주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도 있다. 신당이 국민들의 지지를 받고 있는 이유는 정치개혁 프로그램이 훌륭해서가 아니라 이전투구를 해서라도 현 정치지형을 바꾸려는 신당의 역동성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이런 점에서 한나라당 소장파 의원들이 주장하는 개혁 프로그램 선점은 아마추어적 발상이며 여론을 제대로 읽지 못하는 것이라는 지적. 오히려 한나라당도 내부 개혁을 위해 민주당의 신당 논란처럼 ‘피 튀기는’ 내부 투쟁이 있어야 한다는 시각이다.
한나라당의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국민들은 지금 정치에 신물이 나 있다. 이런 점에서 신당이 아무리 좋은 개혁 프로그램을 제시하고 개혁적인 정책을 내놓더라도 그것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오히려 6개월 동안 ‘머리채’ 싸움을 벌이면서도 여전히 신당을 지지하는 이유는 뭔가 바꾸어보려는 의지를 보였기 때문이다. 한나라당도 바로 이런 점을 국민들에게 낱낱이 보여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나라당 의원들의 현 성향 상 이런 ‘희생’을 기대하기는 힘들어 보인다. 옛 여권에서 오래 생활한 중진 의원들은 ‘좋은 게 좋은’ 성향의 정치인들이다. 그리고 소장파들도 ‘윗분’들의 위세에 눌려 선뜻 행동으로 옮기지 못한다. 최근 ‘문제 있는’ 중진들을 향해 용감하게 용퇴론을 주장한 오세훈 의원도 호흡 조절을 외치고 있는 실정이다.
오 의원은 이에 대해 “추석 민심이 각 당에서 ‘노’와 ‘청’이 대립하는 모습이 보기 좋지 않다는 쪽이다. 하지만 용퇴론을 포기한 것은 아니다. 다만 국감 기간 동안 호흡조절도 필요하다. 또한 그들에게 당장 나가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판단해서 용퇴해 주십사 하는 것이다. 그리고 한 달 정도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시간을 주는 게 도리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앞서의 한나라당 관계자는 “이런 ‘속도조절’이 결국 내부 변화 의지를 퇴색하게 만들고 있다”고 지적한다.
아직 신당이 창당도 되지 않아 지금으로선 그 폭발력을 가늠하기는 쉽지 않다. 또한 추석 이후 호남 민심은 신당에 더욱 부정적이라 중도파들의 발걸음을 무겁게 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한나라당으로선 지난 대선의 ‘노풍’이 재점화되지 않을까 하는 염려마저 놓고 있을 수는 없는 상황이다. 그 대응 방법을 놓고 당내엔 현재 강온책이 혼재하는 모습이다. 그렇다면 한나라당이 선택할 만한 제3의 ‘해법’은 없을까. 윤여준 의원의 진단은 이런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우리 정치는 결국 다수 국민들의 상식적인 생각에 좌우돼 왔다. 정당은 이런 국민들의 상식과 판단에 접근하려고 노력하면 된다. 무슨 책략(대응)이 필요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