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은 거물급 정치인 ‘로비 루트’
‘뉴스타파’의 김용진 대표와 최승호 PD가 지난달 22일 서울 태평로 프레스센터 언론노조 대회의실에서 조세피난처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한 국내 인사를 공개했다. 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또한 이 과정에서 기업과 개인의 도덕적 해이 문제도 불거져 나오고 있다. 최근 CJ그룹에 대한 검찰의 비자금 수사에서 조세피난처에 페이퍼컴퍼니를 만들고 국내에 우회 투자하는 ‘검은머리 외국인’ 문제가 대표적인 경우다. 국내 증시에도 외국인을 가장한 한국인 투자자가 상당수에 이르는데 그 가운데 일부가 조세피난처를 통해 부당이득을 취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 가·차명 계좌로 설립됐기 때문에 탈세와 자금세탁 여부를 가리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지적이다. 조세피난처 설립 의혹 사건의 파장과 정치권 비화 가능성을 짚어봤다.
페이퍼컴퍼니 설립 사건의 파장은 크게 재계와 정치권, 두 방향으로 나갈 것으로 전망된다. 먼저 재계의 경우 페이퍼컴퍼니 설립 자체는 불법이 아니고 “합리적 절세 목적으로 세율이 낮은 곳으로 법적 소재지를 이동시키는 것”에 대한 이해를 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하지만 명백한 불법적 탈세와 돈세탁 행위에 대해선 이번 기회에 명확한 근거와 처벌규정을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더 높다. 특히 검찰이 CJ의 비자금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밝혀진 페이퍼컴퍼니의 ‘검은머리 외국인’ 국내 증시 투자 의혹은 대기업의 도덕적 해이를 말해주는 상징적 사건이라는 점에서 향후 철저한 조사가 이뤄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최근 금감원이 발표한 외국인투자자 증권매매동향을 보면 외국인을 가장한 한국인의 불법 국내주식 투자가 상당히 광범위하게 행해지고 있음을 짐작해볼 수 있다. 쿠바 인근 카리브해에 있는 영국령 식민지 케이먼 군도는 소득세와 법인세, 상속증여세를 물리지 않아 세계 주요 투자자들이 탈세를 위해 선호하는 대표적 조세피난처다. 인구 5만 3000명의 자그마한 섬이지만 이 중 우리나라 증시로 들어온 투자자는 모두 2796명에 이른 것으로 발표됐다. 한국에 투자한 외국인 숫자로는 미국과 일본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은 규모다. 그리고 한국 증시에 투자하는 전체 외국인투자자(3만 6331명)의 7.7%에 해당하는 것이다. 미, 일의 경우 경제규모와 교류범위를 볼 때 당연한 결과지만 케이먼 군도가 국내 주식투자 3위를 차지한 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결과다. 이들이 보유한 한국주식과 채권은 총 7조 7000억 원 규모인데 케이먼 군도가 한 해에 버는 국부의 3배에 달하는 엄청난 규모라고 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재계 주변에서는 이들 투자액 가운데 거의 대부분이 외국인을 가장한 한국인 투자자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하지만 투자액수는 다른 조세피난처가 훨씬 많다. 부자들의 ‘검은 계좌’가 많기로 이름난 스위스에 계좌가 있는 투자자의 국내 증시 투자 규모는 4월 말 현재 9조 9940억 원이다. 또 페이퍼컴퍼니가 많은 홍콩에서의 투자액도 7조 9390억 원에 이른다고 한다. 역시 조세피난처로 활용되는 룩셈부르크 국적의 투자자는 42조 4480억 원, 싱가포르 국적 투자자는 22조 5170억 원어치의 주식과 채권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검은머리 외국인’을 밝히는 데 정확한 자금정보를 캐낼 법적 근거가 아직은 미비한 상황인 것으로 알려진다. 의심은 가지만 자금의 원천을 조사할 근거가 부족하기 때문에 그 돈이 정작 누구의 돈인지를 밝혀내기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 사정이 이렇다보니 조세피난처를 거쳐 한국에 들어오는 자금을 무조건 ‘외국인 투자’로 구분하는 시스템에 대한 문제도 제기된다. 한국인 자금으로 의심될 경우 그 ‘원천’을 조사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강화해야 불법 주식투자를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재계의 한 관계자는 “실제로 개설된 계좌의 자금을 추적할 수 없다보니 주식 시세 조종에 악용되고 세금을 회피하기 위한 기업인들의 상속 증여 수단으로 사용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지적했다. 금감원 측도 “투자신고서에 나오는 국적만 갖고는 진짜 외국인인지 한국인인지 확인할 방법이 없다”고 말할 뿐 그 자금원천에 대한 근본적 조사 의지는 밝히지 않고 있다.
조세피난처의 페이커컴퍼니 설립에 대한 문제가 대부분 재계 쪽으로 집중되고 있지만 정작 큰 지뢰는 정치권에서 터질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도 나온다. 도덕성 면에서 볼 때 기업과 개인(정치인)은 상당한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일단 기업의 경우 페이퍼컴퍼니로 세웠다는 것은 의심은 할 수 있어도 그것을 명백히 비난할 증거가 없다. 더구나 외국진출과 절세 차원에서 실제로 비즈니스가 이뤄지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글로벌 기업은 페이퍼컴퍼니를 운영하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개인의 경우는 문제가 달라진다. 개인(정치인)이 현지에 직접 가서 비밀계좌를 만들었다는 것은 거의 명백하게 ‘검은 의도’가 숨어있다고 봐야 하기 때문이다. 해외에서 부동산을 구입할 경우 우리나라 은행을 통해 사야 하기 때문에 상당히 까다로운 법적 절차를 거쳐야 한다. 더구나 기업도 아니고 개인이 부동산 투자를 한다면 그것부터가 남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하다. 그렇기 때문에 정치인이나 유명인사의 경우 페이퍼컴퍼니를 세워놓으면 까다로운 법적 절차도 피하고 남의 시선에서도 자유롭기 때문에 이런 방법을 선호하기 마련이다. 이들은 특히 부동산 투자뿐 아니라 ‘외국인’으로서 언제 어디서든 국내 주식투자도 하고 있기 때문에 탈세와 비자금 축적 등의 주요 루트로 삼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정치인들의 경우, 비자금 조성을 위한 페이퍼컴퍼니 설립 유혹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주장이 많다. 국세청장 출신인 민주당 이용섭 의원은 최근 한 인터뷰에서 “자녀들에게 불법 증여를 하거나 불법 송금, 또는 불법 정치자금을 조성할 목적으로 정치인이 조세피난처에 페이퍼컴퍼니를 세울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정치인이 개입됐다 하더라도 차명으로 하게 되면 찾아내기가 상당히 어려울 것”이라고 분석했다.
사실 정치권에서 비자금 조성 수단으로 페이퍼컴퍼니 설립이 이용되고 있다는 의혹은 끊임없이 제기된, 새삼스런 문제가 아니다. 부자 출신 의원들이나 일부 중진급 의원의 경우 자녀들의 불법 상속 목적으로 페이퍼컴퍼니를 이용하는 것에 반해 대권주자의 ‘금고지기’들은 큰 규모의 비자금 조성을 위해 이 방법을 쓴다는 것이다.
모 대선주자의 캠프에서 오랫동안 몸을 담았던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이름만 대면 알 만한 대권주자 최측근의 경우 주변으로부터 의원공천을 미끼로 상당한 정치자금을 모은 것으로 안다. 그는 그 돈으로 주식 투자 등을 하며 자금을 불리려다가 실패했다는 후문이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정보기관 등의 자금추적을 피하기 위해 조세피난처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하고 그곳을 통해 주식투자 등을 하며 자금을 관리하고 키웠다는 얘기가 있었다. 여당의 경우 비교적 비자금 관리에서 자유로울 수 있지만 야당은 검은 돈을 만들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페이퍼컴퍼니 설립이 더욱 필요했을 것 아니겠느냐”라고 말했다.
비자금 조성뿐 아니라 정치인의 로비 통로로도 페이퍼컴퍼니는 상당히 유용하다. 민주당의 한 당직자는 이에 대해 “정치인 로비의 보안 특성상 ‘촌스럽게’ 국내에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자금이 스위스 등을 거쳐 조세피난처로 이동하는 루트가 있는 것으로 안다. 이는 거물급 정치인의 로비 전달 경로에 해당한다.
정치인이 직접 해외출장을 가든지 아니면 참모 등이 밖으로 나가서 로비를 받고 그것을 페이퍼컴퍼니에 은닉하는 식이다. 해외에서 버진 아일랜드 등 조세피난처에 숨겨놓은 돈을 빼내서 정치인에게 로비 자금으로 주면 그 자금원천을 어떻게 추적할 수 있겠느냐. 그래서 옛날부터 정치권에서는 초 거물급 정치인들이 이런 루트를 통해 로비자금을 받았다는 얘기가 공공연하게 나돌고 있었다”라고 말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옛날에는 대통령 퇴임 후의 비자금이 이런 경로를 통해 유통 관리되었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
한편 앞서의 이용섭 의원이 “페이퍼컴퍼니는 실체는 없고 서류상으로만 존재하는 가공회사다. 정상적인 사업 목적을 위해서 가공회사를 만들었다는 것은 얘기가 될 수 없다. 페이퍼컴퍼니 설립 동기는 거기(탈세, 비자금)에서 시작한다”고 주장한 점을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만약 정치인이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했다고 <뉴스타파>가 발표한다면 그것은 거의 명백한 불법 자금세탁과 비자금 조성 등의 불순한 의도가 개입되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볼 수 있다.
이 의원은 “절차나 상대방 국가에 진출하기 위해 조세피난처에 회사를 설립해야 되는 경우도 있지만, 그런 경우에는 페이퍼컴퍼니보다는 실질적으로 사업이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기업의 경우 불법 여부를 밝히는 게 상당히 애매하고 어렵지만 개인은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하는 것 자체가 ‘범죄 전 단계’로 해석될 수 있다는 것이다. 페이퍼컴퍼니 설립 사건의 장막 뒤에는 경제인보다 정치인(개인)들이 더 크게 떨고 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
페이퍼컴퍼니 3차 명단 5인은 누구
주식투자에 이용 김석기가 ‘시초’
인터넷 언론 <뉴스타파>가 조세피난처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한 한국인 3차 명단을 공개했다. 김석기 전 중앙종금 사장과 그의 부인인 연극배우 윤석화 씨, 이수형 삼성전자 전무, 조원표 앤비아이제트 대표, 전성용 경동대 총장이 조세피난처에 명목상의 회사, 페이퍼컴퍼니를 세운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이 발표의 첫 ‘피격자’는 전성용 총장이다. <뉴스타파>는 “전 총장이 지난 2007~2008년 버진아일랜드와 싱가포르 등에 4개의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경동대 측은 “전 총장의 페이퍼컴퍼니 설립은 총장 취임(2011년 5월) 3년 전의 일로, 전 총장은 개인적인 문제로 대학과 법인의 명예에 누를 끼친 점에 사과하고 이날 오전 법인에 사임서를 제출했다”라고 밝혔다.
한편 연예인도 이번 명단에 올라 주목을 받고 있다. 김석기 전 중앙종금 사장과 배우자인 연극배우 윤석화 씨가 그 주인공이다. <뉴스타파>는 중앙종금이 4000억 원이 넘는 부실을 떠안고 문을 닫은 뒤 김석기 씨가 해외로 도피한 2000년 이후에도 김 씨는 페이퍼컴퍼니 3곳을 만들었다고 보도했다. 이와 관련, 윤석화 씨는 “어려운 시기를 겪고 있는 남편을 돕기 위해 명의를 빌려준 사실은 맞지만, 남편 사업이라 잘 몰랐다”고 해명했다. 그런데 김석기 전 사장의 이력이 화제에 오르고 있다.
그는 과거부터 페이퍼컴퍼니를 이용한 주식 투자로 부를 많이 축적한 것으로 잘 알려진 인물이다. 김 전 사장은 한국에서 거의 처음으로 페이퍼컴퍼니를 이용한 주식 투자를 해서 성공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그는 한때 CJ 이미경 부회장과 결혼해 삼성가의 사위가 되기도 했다. 김 전 사장은 외화를 빼돌려 탈세한 혐의 등으로 수사를 받기도 했었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
주식투자에 이용 김석기가 ‘시초’
왼쪽부터 김석기 전 사장, 윤석화 씨
이에 대해 경동대 측은 “전 총장의 페이퍼컴퍼니 설립은 총장 취임(2011년 5월) 3년 전의 일로, 전 총장은 개인적인 문제로 대학과 법인의 명예에 누를 끼친 점에 사과하고 이날 오전 법인에 사임서를 제출했다”라고 밝혔다.
한편 연예인도 이번 명단에 올라 주목을 받고 있다. 김석기 전 중앙종금 사장과 배우자인 연극배우 윤석화 씨가 그 주인공이다. <뉴스타파>는 중앙종금이 4000억 원이 넘는 부실을 떠안고 문을 닫은 뒤 김석기 씨가 해외로 도피한 2000년 이후에도 김 씨는 페이퍼컴퍼니 3곳을 만들었다고 보도했다. 이와 관련, 윤석화 씨는 “어려운 시기를 겪고 있는 남편을 돕기 위해 명의를 빌려준 사실은 맞지만, 남편 사업이라 잘 몰랐다”고 해명했다. 그런데 김석기 전 사장의 이력이 화제에 오르고 있다.
그는 과거부터 페이퍼컴퍼니를 이용한 주식 투자로 부를 많이 축적한 것으로 잘 알려진 인물이다. 김 전 사장은 한국에서 거의 처음으로 페이퍼컴퍼니를 이용한 주식 투자를 해서 성공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그는 한때 CJ 이미경 부회장과 결혼해 삼성가의 사위가 되기도 했다. 김 전 사장은 외화를 빼돌려 탈세한 혐의 등으로 수사를 받기도 했었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