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세상품 개발…재벌가에 호객행위 의혹
비영리 독립언론 ‘뉴스타파’의 김용진 대표와 최승호 PD가 조세피난처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한 국내 인사들을 잇따라 공개하고 있다. 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일부 전문 로펌들은 조세피난처 전용 금융상품 등을 주 고객인 ‘재벌’가에게 소개해주고 합법적인 탈세 방법까지 알려주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렇게 전문 로펌들이 버젓이 ‘장사’를 하고 있음에도 모든 루트가 합법적이라는 이유 때문에 처벌을 할 수도 없다고 한다. ‘알고서도 못 잡는’ 조세피난처 ‘브로커’들의 정체는 무엇일까. 그들이 소속된 조세피난처 전문 로펌의 세계를 집중 조명해봤다.
조세피난처 설립자 명단이 매주 공개되고 있다. 대부분 유명 인사들이다. 이들은 도대체 어떤 루트로 조세피난처 설립을 할 수 있었고 합법적인 탈세까지 해결할 수 있었을까. 법조계에서는 재벌이나 유명인사들이 조세피난처를 설립할 때 일종의 ‘브로커’로부터 도움을 받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른바 조세피난처 전문 ‘브로커’들이 그동안 명목상 합법적인 조세피난처 상품을 개발해 재벌가 등을 상대 해왔다는 의혹이 최근 제기됐다.
국세청의 한 관계자는 최근 기자와의 사석에서 “재벌인사들이 무슨 수로 합법적으로 돈세탁하는 방법을 처음부터 알았겠는가, 대부분 조세피난처 전담 ‘브로커’들의 자문을 받아온 것으로 알고 있다”고 귀띔했다. 조세피난처에 ‘은밀한’ 자금을 유통시키는 ‘희한한’ 금융상품들이 전문 브로커들에 의해 우후죽순 개발됐지만 국세청 등 금융당국은 넋 놓고 있는 실정이라고 한다. 문제의 브로커들이 직접 개발해 유력인사들을 상대로 판매한 것으로 알려진 조세피난처 상품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대형로펌 출신 조세전문 변호사 A 씨는 “거래 직후 거래내역이 자동적으로 파기되는 상품이 가장 잘 팔린다. 혹여 탈세 의심을 받고 국세청이나 관세청 조사를 받더라도 이미 증거가 인멸돼 법적으로 안전하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이밖에도 해외법인이나 SPC(Special Purpose Company:금융기관에서 발생한 부실채권을 매각하기 위해 일시적으로 설립되는 특수목적 회사)를 설립해서 해외에서 모든 거래가 이뤄진 것인 양 꾸미는 기법도 선호되는 조세피난처 전용 금융상품 중의 하나로 꼽히고 있다. 해외 내 거래시 치외법권 지역인 경우가 많아 국내 사정당국의 조사가 사실상 어렵기 때문이다.
문제의 브로커들이 개발한 것으로 알려진 ‘아랍계’ 금융상품도 눈여겨볼 만하다. 그동안 홍 콩 필리핀 싱가포르 등 금융선진지역을 중점적으로 추적해왔던 금융당국은 최근 아랍지역으로 눈을 돌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몇몇 대형로펌에서 아랍계 금융상품을 우후죽순 개발하기 시작했다는 소문 때문이다. 거래직후 내역이 자동 파기되는 ‘증거인멸’ 상품인 데다 금융거래가 국내에선 생소한 아랍지역에서 이뤄지다보니 전 방위적인 추적을 차단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이에 대해 앞서의 조세전문 변호사 A 씨는 “의뢰인이 재벌일 경우 해외에 묻을 돈 중 약 3~5% 정도의 커미션만 받아도 큰돈이 되기 때문에 확실한 호객행위를 할 수 있는 상품들이 꾸준히 개발되어왔다”며 “조세피난처 브로커들의 행태가 도의적 차원에서 문제가 있는 건 사실이다. 절세 관련 법률자문을 해주면 그만인데 합법적 탈세를 방조하는 사례가 더 많아지고 있어 문제다”라고 지적했다.
조세피난처 전용 상품을 개발하는 브로커들은 주로 대형로펌에서 활동한다고 한다. 표면상으로는 의뢰인이 ‘절세’에 대한 자문을 요구하면 ‘법리적’ 차원에서 조언을 해주는 선에서 마무리된다. 하지만 몇몇 로펌 관계자들은 “실상은 다르다. 커미션(수수료) 받고 페이퍼컴퍼니를 만들어주는 게 대부분”이라면서 “재벌가를 상대로 한 고액의 커미션이 로펌 수익의 큰 축을 담당하기 때문에 일부 로펌은 최근 은퇴한 ‘따끈따끈’한 금융당국의 고위급 인사들을 고문으로 모시고 전문 TF팀을 꾸리기도 한다. 합법적인 범법행위를 하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이어 이 관계자들은 “특히 로펌에 고문으로 고용된 국세청 출신 인사들의 경우 사정당국이 주의 깊게 눈여겨보고 뒷조사도 해야 한다”며 그들의 ‘역할’에 의혹을 제기했다.
실제로 W 로펌 등 일부 중대형급 로펌들이 최근 국제조세전문가들을 대거 영입한 사실이 확인됐다. 금융당국 고위급 임원 출신들도 ‘러브콜’을 받고 유명 로펌에 터를 잡는 사례도 부쩍 늘었다. 이에 대해 금융당국의 한 관계자는 “국세청 등 일부 고위급 인사가 조세피난처 상품 개발을 돕는다는 소문은 확인되지 않은 사실이기 때문에 뭐라 답변할 수 없다. 게다가 금융상품의 경우 금융위 등을 거쳐 국내 승인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조세피난처 관련 상품들은 해외에서 거래되고 있는 것으로 안다. 아마도 전직 금융당국 고위급 인사들이 이 같은 해외개발 작업에 간접적으로 도움을 줄 순 있을 것 같지만 이 또한 확인할 길이 없어 잡아내기 어렵다”라고 말했다.
최근 한 유명 로펌은 국제조세 전문 회계사들을 영입한 데 이어 조세피난처 관련 지역 현지 로펌과의 협력 체제를 재빨리 구축했다. 이를 두고 법조계 일각에선 “당분간 브로커들이 조세피난처 상품개발은 뒷전으로 미뤄두고 국세청 등을 상대로 한 ‘줄줄이’ 소송전을 준비하는 데 전력을 다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조세피난처 설립 의혹을 받고 있는 일부 유명인사들이 조만간 국세청을 상대로 대대적인 소송을 제기할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하기 때문이다.
덕분에 국세청 내부에선 “또다시 ‘론스타’ 사태가 벌어지는 것이 아니냐”는 불안한 기류마저 흐르고 있다고 한다. 국세청 한 관계자는 최근 기자에게 “‘먹튀 자본’이라고 비난받던 론스타만 하더라도 종국엔 대형 로펌을 끼고 국세청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지 않았나. 당시 국세청 측이 얼마나 곤혹스러워했는지 말도 못한다”며 “기껏 요주의 인물들을 잡아도 로펌과 소송이 붙으면 국세청이 지는 경우가 많았다. 황당한 대목은 조세피난처 전담 브로커들이 문제가 불거질 경우 그 소송전에도 참여해 고객한테 확실한 애프터서비스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사정을 국세청은 알고 있을까. 앞서의 국세청 관계자는 “조세피난처 상품은 대부분 해외를 통하기 때문에 관련 자문 브로커들에게 죄를 묻기가 어렵다. 법률의 고수들이라 이렇다 할 대처방법도 없는 상황”이라며 “국민적 여론에 따른 적극적인 조사만이 소송전을 대비하는 유일한 대처방법일 것 같다”고 말했다.
김포그니 기자 patronus@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