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도 업계도 ‘싸늘’…직접 배 띄워?
▲ 사진은 기사내용과 관련없음. | ||
한전 자회사들이 국내가 아닌 외국 국적의 해운업체와 운송계약을 맺은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한국동서발전은 지난 2004년 호주에서 수입할 석탄 2700만 톤의 장기 수송권을 세계 2위 해운업체인 일본의 NYK(Nippon Yusen Kaisha)의 한국법인인 ‘NYK벌크쉽코리아’에 준 바 있다. 당시에도 국내 해운업체들의 항의가 빗발쳤고 그 결과 한전을 포함한 대형 화주들은 국내 해운업체들과 ‘대량화물수송협의회’를 만들며 화해했다. 그러나 지난해 한국서부발전이 세계 4위인 일본의 케이라인(K-Line)과 석탄 400만 톤 규모의 운송 계약을 체결하자 양측의 관계엔 다시 냉기가 돌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동서발전이 지난 6월 초 공고한 10년 장기 운송계약 입찰엔 국내 해운업체 4곳을 포함, 6곳이 신청서를 낸 것으로 알려졌다. 관례상 국내 업체 승리가 유력했지만 막상 뚜껑을 열자 가장 낮은 가격을 써낸 NYK벌크쉽코리아가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이 소식에 안정적인 물량확보를 위해 장기 계약에 사활을 걸고 있는 국내 해운업체들은 발끈했다.
일각에서는 이번 계약이 총 수송비용 560만 달러(약 72억 원)가량에 연간 수송량 80만 톤 수준으로 다른 건보다 적은 규모임을 감안해 국내 업체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미미할 것이라는 평가도 내놓고 있다. 그러나 해운업계는 이번 계약을 신호탄으로 일본 해운사들의 입찰 참여가 본격화할 것을 더욱 우려하고 있다고 한다. 실제로 지난 7월 7일 한전의 또 다른 자회사인 한국남동발전의 공개입찰에서도 NYK벌크쉽코리아를 비롯한 일본 업체들이 참여한 것으로 전해졌다.
해운업체들을 대표하는 한국선주협회(회장 이진방)의 한 관계자는 “일본의 경우 지명 입찰제를 통해 사실상 일본 업체에게만 운송권을 주기 때문에 한국 국적의 해운업체는 참여할 수도 없다. 그런데 우리는 안방에서조차 밀리고 있다”며 답답함을 털어놨다. 이 관계자는 이어 “민간 기업도 국익을 고려해 국내 업체와 계약을 하는데 공기업인 한전이 그래서 되겠느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 김쌍수 한전 사장. | ||
이에 대해 한전에서는 “자회사와 경영이 분리돼 있다. 한국동서발전이 스스로 결정한 것”이라며 공식적인 언급은 피하고 있다. 이에 대해 선주협회 등은 “책임 회피”라며 한전을 몰아붙이기도 한다. 계약 당사자인 한국동서발전 측은 “적자가 심해 단가를 낮추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최저 입찰 가격을 써낸 회사를 선택했을 뿐이다. NYK벌크쉽코리아도 국내 운송면허를 가지고 있는 만큼 선주협회의 주장처럼 입찰 자체를 배제할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한국동서발전을 비롯한 자회사들은 입찰과 관련, 국내 해운업체들이 시비를 걸고 있는 것에 대해 불쾌한 모습이 역력하다. 한전 자회사인 한국중부발전의 입찰 업무 관계자는 “그동안 국내 업체들이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나. 1위와 2위의 가격차가 얼마 나지 않는다고 하는데 왜 국내 업체들은 가격을 낮추지 못하는지 반성해야 할 것”이라면서 “공기업 적자를 비난하면서 원가 절감 하는 것을 가지고 왜 뭐라 하는지 납득하기 어렵다. 해운업체들 돕자고 비싼 값에 배를 빌리면 결국 전기세가 올라 국민에게 피해가 갈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최근 한전은 이처럼 불만을 가지고 있는 자회사들에게 ‘공식적인 대응은 피하라’고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최근 한전이 모색하고 있는 해운업 진출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다. 지난 5월 한전은 국토해양부에 해운업 진출을 타진했고 부정적인 답변을 듣자 화주의 해운업 진출에 제한을 둔 해운법 24조에 대한 해석을 공정거래위원회에 의뢰해 놓은 상태다. 이와 동시에 한전은 해운업 진출에 반대하는 기존 해운업체 설득 작업에도 심혈을 기울여 왔다. 따라서 이번 계약을 둘러싼 해운업체와의 마찰을 최소화하겠다는 전략인 것으로 보인다.
정부에서도 일본 업체와의 계약을 그리 달갑게 여기고 있지는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그동안 국토해양부는 침체에 빠져있는 해운업에 활기를 불어넣기 위해 여러 정책을 실시해왔다. 자금난에 시달리는 해운사의 선박을 사들이기 위해 자산관리공사(캠코)가 조성한 4조 3000억 원대의 선박펀드도 그 중 하나다. 그런데 공기업인 한전이 국내 해운업체를 입찰 경쟁에서 탈락시키자 정부가 이를 ‘해운업 살리기’에 찬물을 끼얹는 행위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는 김쌍수 한전 사장에게도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는 것으로도 알려진다. LG전자 부회장 시절 ‘혁신 전도사’로 이름을 날린 김 사장이 지난해 8월 취임한 이후 뚜렷한 개혁의 성과를 내놓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김 사장이 의욕적으로 추진했던 부동산 직접 개발과 해운업 진출이 잇달아 정부 벽에 가로막혀 좌절된 것도 이 연장선상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동안 김 사장은 조직 내부에서도 무리한 인사발령과 사기업 문화도입과 관련 직원들로부터 비판을 받아 왔다(<일요신문> 874호 보도). 당시 한전 측은 “어느 조직이든지 개혁에 대해서는 불만이 없을 수 없다”고 밝힌 바 있다. 오는 8월 취임 1주년을 맞는 김쌍수 사장이 한전 안팎의 비판들을 어떻게 돌파할지 주목된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