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세경영’ 시동에 ‘신엔진 찾기’ 분주
정기선 부장
지난 13일 현대중공업은 대주주인 정몽준 새누리당 의원의 장남 기선 씨(31)가 재입사 형식으로 울산 본사 경영기획팀 부장으로 근무하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정기선 부장은 1982년 생으로 대일외고와 연세대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지난 2009년 현대중공업 재무팀 대리로 근무하다 휴직한 그는 미국 유학을 떠나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MBA(경영학석사)를 취득했다.
정 부장의 현대중공업 재입사는 남다른 의미를 띤다. 재계에서는 현대중공업의 3세 경영이 시작됐다는 분석을 내놓는다. 그러나 사실 그보다 11년 만에 현대중공업에 오너십이 본격적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는 데 더 큰 의미가 있다. 재계 관계자는 “2009년 재무팀 대리 때와는 확연히 다르다”며 “경영기획팀 부장이라면 경영수업도 받고 직간접적으로 오너십을 발휘하기에도 충분한 자리”라고 말했다.
정몽준 의원이 정계로 진출하면서 현대중공업은 줄곧 전문경영인 체제를 유지해왔다. 2002년 정 의원이 현대중공업 고문 자리까지 내놓은 후 지금까지 11년 동안 현대중공업 내에는 오너 일가가 없었다. 그럼에도 현대중공업은 전문경영인 체제의 성공사례를 보여주기라도 하듯 훨훨 날았다. 2000년대 초중반 조선업 최대 호황기 덕을 한껏 누린 것. 그러나 침체가 계속되자 버틸 재간이 없어진 듯하다. 지난해 임원 10%를 감축키로 결정했으며 창사 이래 처음으로 희망퇴직도 실시했다.
현대중공업으로서는 조선업 침체는 둘째 치고 신성장동력을 찾아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 더 심각한 문제다. 새로운 먹을거리로 삼았던 태양광사업이 부진했고 결국 1100억 원의 투자금을 날린 채 폴리실리콘 제조 사업에서 철수하고 말았다. 더욱이 태양광사업 때문에 사촌기업인 KCC와 소송전도 벌이게 됐다. 막대한 투자비를 고스란히 날리면서 형제기업으로부터 소송까지 당하는 망신을 당한 것.
현대중공업이 조선업 장기 침체로 실적 부진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오너3세’ 정기선 부장의 복귀가 어떤 효과를 불러올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사진제공=현대중공업
현대중공업이 KAM 지분을 모두 처분할 당시 오히려 반가운 표정을 지었던 KCC가 갑작스레 소송을 제기한 것은 보는 이들을 갸우뚱하게 한다. KCC 관계자는 “누가 이기고 지는 싸움이 아니라 합작관계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일들을 처리하는 마무리작업으로 이해해달라”는, 막연한 답변만 되풀이했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도 “1000억 원이 넘는 돈을 감자하면서 발생할 수 있는 회사 간 유·불리 문제를 정리하는 수준인 것으로 안다”며 “감자와 관련해 회사와 회사 간 정리해야 할 문제들이 오히려 투명하고 깔끔하게 처리될 것”이라고 말했다. 두 기업 모두 “친척기업 간 법정다툼이 절대 아니다”라며 경계하고 있다. 그러나 중재와 관련한 구체적인 답변은 두 기업 모두 피하고 있다.
태양광사업에서 쓴맛을 본 현대중공업이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쪽은 항공우주산업. 지난해 말 현대중공업은 한국항공우주산업(KAI) 인수전에 불쑥 나타나 그동안 유력 인수 후보인 대한항공의 입지를 위축시킨 바 있다. 당시 현대중공업 측은 “들러리나 서려고 최고 자문기관을 선정한 것이 아니다”라며 KAI 인수에 적극적인 관심을 표명했다. IB업계에서는 오는 7월부터 매각작업이 재개될 것으로 보이는 KAI 인수전에 현대중공업이 또 다시 참여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다양하게 검토하고 있는 중”이라며 참여 여부를 부인하지 않았다.
현대중공업에 따르면 조선업이 현대중공업에서 차지하고 있는 비중은 35%다. 해양·육상플랜트사업, 전기·전자, 건설장비 등 현대중공업의 사업포트폴리오는 다양하다. 다시 말해 “조선업 장기 침체가 어려움을 주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회사의 운명을 좌우할 정도는 아니다”라는 것이 회사 측 설명이다. “태양광사업에서도 완전히 철수한 것이 아니다”라고도 했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폴리실리콘 제조 등 원료사업부터 발전사업까지 수직계열화했던 것에서 원료사업 부문만 철수한 것일 뿐 그린에너지사업본부도 남아있고 태양광사업도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가까운 시일 내에 현대중공업이 업황 침체를 극복할 것이라고 보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다.
이 같은 상황에서 정몽준 의원의 장남 정기선 부장의 복귀는 남다를 수밖에 없다. 정몽준 의원이 고문을 그만둔 후 정 부장 복귀 전까지 현대중공업 내에 오너 일가는 한 명도 재직하지 않았다. 사내이사 3명, 사외이사 4명으로 구성돼 있는 이사회에도 오너 일가는 없다. 돌파구를 마련하기가 쉽지 않은 위기 상황에서 대기업들은 종종 결단의 필요성과 조직에 긴장감을 불어넣기 위해 오너 일가를 전진배치하기도 한다. LG전자의 위기가 가중되던 2010년 9월 구본무 LG그룹 회장이 친동생인 구본준 부회장을 LG전자 대표이사에 올린 것이 대표적인 예다.
그렇다고 정몽준 의원이 새삼스레 현대중공업 경영 일선에 복귀하기도 힘든 상황이다. 정 부장의 복귀는 후계자에게 경영수업을 받게 하고 조직 내 오너의 참여로 분위기를 바꾸는 데도 효과를 볼 수 있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그동안 다양한 경험을 쌓은 후 회사에 다시 복귀한 것”이라며 “후계구도를 논하기에도 아직 이른 나이”라며 애써 의미를 축소했다.
임형도 기자 hdli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