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이 키운 복싱 전두환이 죽였다”
김광수 관장.
# 각하의 한 마디
“1984년 초로 기억한다. 당시 복싱 프로모션은 방송사와 전속계약을 맺고 활동했다. 부친을 대신해 실질적으로 현대프로모션 일을 맡았던 나는 김성윤 선수(주니어라이트급 동양챔피언 등극)의 경기를 위해 KBS를 찾았다. 그런데 KBS 관계자가 의미심장한 얘기를 했다. ‘각하(전두환)가 한국선수가 지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라고 말이다. 알아서 이기는 시합을 만들라는 뜻이었다. 담당자는 KBS 스포츠국의 고위관계자였다. 어쨌든 이후 우리는 이기는 시합을 잘 만들었다. 다른 프로모션도 마찬가지였다. 실력이 모자라는 외국선수를 데려오고, 심지어 외국선수에게 억지로 물을 먹여 체급을 올려 링에 올리기도 했다. 철권을 휘두르는 정권 앞에서 방법이 없었던 것이었다. 워낙 복싱인기가 좋아 일주일에 국제전이 많으면 3회씩 열렸는데 랭킹 및 전적 조작, 가짜복서 등이 비일비재했다. 그러다 그 해 9월 급기야 카스트로 사건, 그러니까 IBF 플라이급 챔피언 권순천의 3차방어 상대로 알베르토 카스트로(콜롬비아) 대신 다른 선수가 링에 서는 세계타이틀매치 ‘가짜복서’ 사건이 터졌다. 이후 복싱은 시간과 비례해 급격히 몰락했다.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정치논리(각하의 뜻)를 따르다 망한 것이다.”
# 전두환과 프로복싱
‘스포츠 대통령’으로 잘 알려진 전두환은 체력이 강하고 운동을 즐겼다. 1984년 LA올림픽 기간에는 마음이 졸여 TV를 끄고 비서관으로부터 메모를 받았고, 승전보를 들으면 그렇게 기뻐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 지금도 골프를 즐긴다.
원래 그가 좋아하는 스포츠는 축구와 복싱이었다. 먼저 축구는 중학교 때부터 시작했고, 육군사관학교 시절에는 골키퍼로 이름을 날렸다. 1983년 박종환의 청소년축구 4강 신화 때는 하프타임을 이용해 국제전화로 직접 작전 지시를 했다는 후문도 있다.
전 씨의 복싱에 대한 애정도 만만치 않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 ‘양아들’로 불리던 그는 주요 프로복싱경기가 있는 날이면 대통령의 부름을 받았다. 그리고 해설위원 못지않은 구수한 입담으로 권투해설을 들려줘 박 대통령을 즐겁게 했다.
그가 대통령일 때 장정구 등 주요 세계챔피언들은 승리 직후 대통령의 축하전문을 받았고, 때로는 청와대와의 특별전화까지 연결돼 “대통령의 큰 관심과 사랑으로 챔피언에 오를 수 있었다”며 생방송에서 감격에 겨운 소감을 전하기도 했다. 전 대통령은 챔피언들을 불러 거액의 금일봉을 전하기도 했다.
심지어 전재산이 29만 원이라고 밝힌 후에도 이런 복싱사랑은 계속됐다. 1990년대 말 모 세계챔피언은 타이틀을 딴 직후 전 씨의 호출로 연희동 사저를 찾았고, 금일봉을 받았다. 액수는 수백 만 원 상당. 전 씨는 “복싱을 워낙 좋아한다. 예전 같으면 내가 훨씬 더 잘해줄 텐데 지금은 이것밖에 주지 못해 미안하다. 열심히 하라”고 격려했다고 한다.
“스포츠, 복싱에 대한 실권자의 애정은 사실 비난할 것은 아니다. 하지만 과유불급이라고 전 대통령의 경우 지나쳐서 문제가 된 것이다. 중요한 것은 스포츠는 정치논리가 아니라 철저하게 경제논리를 따라야 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렇게 한다면 이미 바닥을 친 한국복싱은 향후 다시 살아날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프로복싱의 전성기와 최악의 흥행침체기를 모두 겪은 김광수 관장은 ‘각하의 한 마디’ 외에 나름 프로복싱 중흥의 해법도 제시했다. 먼저 복싱은 6.6m×7.2m의 정사각형 링에서, 1m도 안 되는 거리에서, 약 1톤의 펀치가 시속 60~80km의 속도로 교환되는 익사이팅한 경기라는 것이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슈퍼스타인 플로이드 메이웨더의 인기가 대단하다. 오는 9월 14일 열릴 예정인 사울 알바레스(멕시코)와의 라이벌매치는 대전료 5000만 달러와 200만 개 이상의 PPV가 예상되고 있다. 미국에는 메이웨더 외에 100만 달러 이상의 파이트머니 복서는 약 20명이 있다. 이밖에 유럽에서도 헤비급의 글리츠코 형제를 위시하여 매주 벌어지는 메가파이트에 4만~5만 명의 관중들이 운집하고 있고, 가까운 일본은 7명의 세계챔피언을 보유하고 있다.
요즘 사회적으로 빅이슈가 되고 있는 갑의 횡포도 프로복싱에서 하루 빨리 개선돼야 한다. 즉 매니저와 선수 간의 종신계약(일명 노예계약) 제도가 일정기간(예를 들어 3년)을 전제로 한 FA(프리에이전트)시스템으로 바뀌어야 한다. 그래야 효율적인 투자와 선수들의 운동전념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김광수 관장은 “요즘 프로복서들은 야식배달 등 온갖 허드렛일을 하면서 운동을 하고 있다. 예전 전성기를 생각하면 정말이지 눈물이 날 지경이다. 하루빨리 한국 프로복싱이 예전만큼은 아니더라도 제대로 된 스포츠로 자리잡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유병철 스포츠전문위원 einer6623@hotmail.com
김광수 관장은 누구
1970년대 말 언론에 소개된 삼형제 복서. 맨 오른쪽이 김광수 관장이다.
‘탱크’라는 닉네임으로 유명했던 형 김광민은 라이트급 동양챔피언을 지내다 1982년 ‘비운의 복서’ 김득구에게 명승부 끝에 타이틀을 내줬다(판정패). 앞서 언론인 출신의 부친 김종영 회장(2007년 작고)이 1981년 현대프로모션을 설립했고, 김광수 관장은 형제와 함께 트레이너, 매니저 등을 맡아 1996년까지 최희용(WBA 미니멈급, 라이트플라이급 2체급 석권), 박영균(WBA 페더급 8차방어 성공) 등 두 명의 세계챔프를 길러냈다.
유병철 스포츠전문위원 einer6623@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