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관식 가는 길 조수석 교체 중
▲ (위)삼성 이재용 전무 (아래 좌)최지성 사장 (아래 우)장충기 사장 | ||
삼성
삼성그룹은 지난해 4·22 쇄신안 발표로 이건희 전 회장의 퇴진과 전략기획실 해체로 시작된 변혁기를 지나고 있다. 지금을 이건희 전 회장 외아들 이재용 전무의 경영권 승계로 가는 과도기로 보는 재계 관계자들은 새 시대를 열어젖힐 조타수로 최지성 삼성전자 사장을 꼽는 데 주저함이 없다. 최 사장은 이윤우 부회장과 더불어 삼성전자 투톱 체제를 이루고 있지만 이 부회장이 이끄는 부품(DS)부문보다 최 사장의 완제품(DMC)부문 비중이 높다 보니 최 사장이 삼성전자의 실질적 수장으로 거론되곤 한다.
지난 6월 이명박 대통령의 방미 당시 경제인수행단에 최 사장이 삼성그룹 대표로 동행했을 정도로 최 사장은 삼성전자의 대내외적 간판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최 사장을 더욱 주목받게 만드는 대목은 ‘황태자’ 이재용 전무와의 관계다. 이 전무의 해외일정에 동행하는 모습을 자주 보여 온 최 사장에겐 이 전무의 ‘가정교사’라는 수식어가 따라붙고 있다. 최 사장은 지난 1981년부터 4년간 회장비서실 기획팀 근무를 통해 오너일가 보좌 경험을 쌓기도 했다.
이재용 전무의 실무 경험에 최 사장의 존재가 큰 힘이 되는 것처럼 조직관리 측면에선 장충기 브랜드관리위원장의 역할이 주목을 받는다. 이재용 전무의 서울대 동양사학과 선배인 이인용 삼성 커뮤니케이션팀장(부사장)이나 지배구조 핵심인 삼성에버랜드의 최주현 사장보다도 장충기 사장이 ‘과도기 체제’의 삼성에 미칠 파급력이 더 크다고 보는 것이다.
장 사장이 올 초부터 맡은 브랜드관리위원회는 홍보와 광고를 통한 삼성의 이미지 제고와 삼성 브랜드의 법적 보호 등을 담당한다. 그런데 ‘국가경제 발전을 위해서라도 삼성에 과거 전략기획실과 같은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는 재계 일각의 목소리로 인해 브랜드관리위원회의 향후 위상에 대한 여러 관측이 양산되고 있다. 장 사장이 비서실→구조조정본부(구조본)→전략기획실을 거치며 홍보·기획부문을 맡아온 그룹 내 대표적인 기획통인 까닭에서다. 이에 대해 삼성 측은 “(삼성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그냥 넘겨짚어 쏟아내는 근거 없는 말들”이라며 “브랜드관리위원회는 본연의 임무에만 충실할 뿐”이란 입장이다.
삼성 주변에선 “이건희 전 회장 퇴진 이후 이재용 전무가 아직 그룹 장악에 필요한 리더십을 보여주지 못하는 까닭에 영이 제대로 서질 않는다”는 이야기가 나돌기도 한다. 얼마 전 깜짝실적을 발표한 삼성전자에서 임원들의 스톡옵션 행사가 이어지자 “새롭게 바뀔 체제에 대비해 회사를 그만두기 전 차익실현이나 하려는 심산”이란 해석이 나오기도 했다.
일각에선 지난 5월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CB) 편법증여 의혹 대법원 무죄판결로 큰 짐을 덜어낸 이건희 전 회장의 경영 복귀설도 조심스레 흘러나온다. 이에 대해 삼성 측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극구 부인해왔다. 하지만 ‘오너 보좌 경험’을 쌓은 인사들의 부상이 ‘황제의 귀환’과 ‘황태자 등극’ 중 어떤 시나리오를 위한 밑바탕이 될지에 쏠리는 재계의 관심을 잠재우지는 못할 전망이다.
▲ (위 큰사진)현대차 정의선 사장 (위 좌측)김경배 부사장 (위 우측)김치웅 부회장 (아래 큰사진)최태원 회장 (아래 우측)최재원 부회장 (아래 좌측)박영호 사장 | ||
현대·기아차그룹에선 정몽구 회장 특유의 수시인사가 빚어낸 혼란 속에 등장한 이른바 ‘난세의 영웅’들이 눈길을 끌고 있다. 가장 주목받는 인사는 지난 7월 물류 계열사 글로비스의 새 대표이사로 취임한 김경배 부사장이다. 김 부사장은 글로비스 발령 직전까지 정몽구 회장 비서실장(전무)이었으며 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비서를 10년간 지내기도 했다. 정의선 사장이 최대주주로 있는 글로비스가 향후 기아차 지분 매입용 실탄창고로 거론되는 만큼 정 회장이 글로비스에 측근을 대표로 앉혀 후계구도 전초기지로 삼을 것으로 관측됐다.
전임 글로비스 대표였던 이광선 전 사장이 지난 3월 현대차 사장에서 글로비스로 옮겨왔다가 고문으로 물러나기까지 걸린 시간은 단 4개월. 그 사이 김 부사장은 전무에서 부사장으로 승진하는 동시에 그룹 내 최연소 계열사 대표이사에 등극, ‘이광선 체제가 김경배 체제 연착륙을 위한 과도기였다’는 해석까지 낳았다.
글로비스 대표를 지낸 김치웅 부회장 역할론도 주목을 받는다. 김 부회장은 지난해 8월 글로비스에서 위아로 자리를 옮겼지만 정 사장 승계구도와의 인연은 더욱 깊어졌다. 정 사장이 최대주주로 있는 비상장 계열사 위스코 대표직을 겸하게 되면서 새로운 실탄창고 육성을 이끌 참이다.
김경배 부사장이나 김치웅 부회장은 그룹 주류를 형성해온 현대정공(현 현대모비스) 출신들이다. 주류의 세대교체를 통한 정몽구-의선 부자 승계 토양 닦기가 이뤄지고 있는 셈이다. 지난해 정몽구 회장이 8·15 특사를 받은 직후부터 정 회장 특유의 잦은 럭비공 인사를 통해 ‘MK 1세대’로 불려온 노신들이 대거 짐을 꾸려야 했다.
지난해 9월 김동진 현대차 부회장이 계열사 현대모비스로 전보발령을 받았고 박정인 HMC투자증권 회장이 고문으로 물러났다. 다음달엔 10년 만에 그룹에 복귀해 현대차 부회장을 맡아 화제가 됐던 김용문 부회장이 컴백 6개월 만에 계열사 다이모스로 전보됐다. 12월엔 기아차 공동대표이사였던 김익환 부회장과 조남홍 사장이 나란히 고문직으로 물러났다. 지난해 11월 현대차 사장에서 승진한 최재국 부회장은 사령장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인 올 초 고문직 발령을 받았다.
조직을 ‘들었다 놓았다’하는 정 회장의 수시인사 목적은 정의선 사장으로의 안정적 승계를 위한 조치로 풀이돼 왔다. 그러나 부회장단 대거 인사 이후로 나돌았던 정 사장의 부회장 승진설은 현실화되지 않았다. 지난해 4월 실적 논란 속에 기아차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난 정 사장의 대표이사 복귀도 점쳐졌지만 아직 감감무소식이다.
재계 관계자들은 “새 총수 등극을 위해선 인적쇄신 못지않게 새 리더의 확실한 지지세력을 만들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대표이사를 불과 몇 달 만에 교체하는 정 회장 식의 수시인사가 조직 내 기득권 세력의 뿌리를 약화시키는 동시에 정 사장 체제를 떠받칠 수 있는 신진세력을 얼마나 빨리 연착륙시킬 수 있을지 주목된다.
SK
SK그룹에선 최태원 회장의 ‘동문’들이 요직에 대거 전진배치돼 그룹 내 신주류로 자리잡아가고 있어 눈길을 끈다. 이들은 대부분 외부 영입 케이스다. 지주사 SK㈜의 대표이사를 맡고 있는 박영호 사장은 최 회장과 미국 시카고대학교 동문이다. 포스코경영연구소에 있던 박 사장은 지난 2000년 SK㈜ 전무로 영입돼 지난 2004년 부사장, 2007년 사장으로 승진했다.
검사 출신 김준호 SK에너지 CMS 사장은 최 회장의 신일고-고려대 선배다. 지난 2003년 서울고등검찰청 검사로 있다가 SK㈜ 윤리경영실장(부사장)으로 영입돼 지난해 사장 직함을 달았다. 최 회장의 신일고 선배인 남영찬 SK텔레콤 대외협력부문장(부사장) 역시 법조인 출신이다. 서울고법 판사와 대전지법 부장판사를 거쳐 2005년 SK텔레콤 윤리경영센터 부사장으로 영입된 뒤 법무실장 등을 역임했다.
최 회장의 고려대 후배가 되는 유정준 SK에너지 R&C 사장은 LG건설(현 GS건설) 이사로 재직하다 최 회장이 총수직에 오른 1998년 SK㈜ 종합기획실장(상무보)으로 영입됐다. 이후로 줄곧 SK㈜에서 요직을 두루 거친 뒤 지난해 SK에너지 사장에 올랐다.
최 회장이 외부영입 동문 인사들을 중용하는 배경을 그가 아직 그룹 인사를 비롯한 전권을 장악하지 못했다는 재계 일각의 해석에서 유추해볼 수 있다. 최태원 회장은 1998년 선친 최종현 회장에 이어 그룹 3대 총수에 올라 12년째를 맞고 있다. 당시 SK가 맏형 격인 최신원 SKC 회장이 아닌 최태원 회장이 총수직에 오르는 과정에서 손길승 전 회장(현 SK텔레콤 명예회장) 등 선대회장 가신들의 영향력이 컸던 것으로 알려진다.
최 회장은 올 초 친동생인 최재원 SK E&S 부회장을 지주사 SK㈜와 주력사 SK텔레콤의 등기임원 자리에 앉혀 그룹 경영 전면에 내세웠다. 친족경영을 통한 그룹 장악력 높이기에 나섰다는 해석이 뒤를 따랐다. 최재원 부회장 역시 신일고 출신으로 최 회장의 고교 후배가 된다.
재계에선 현재 한창 진행 중인 SK그룹 지주회사 전환작업을 최 회장의 그룹 장악력 강화 과정으로 보고 있다. 지난해 말 손길승 전 회장이 SK텔레콤 명예회장으로 영입된 것을 두고 “그룹 내 노신들 관리·단속을 맡기려는 것”이란 해석이 등장하기도 했다. 재계 일각에선 지주회사 전환 순항의 열쇠가 될 SK C&C 상장작업 못지않게 외부영입파 동문들의 입지 강화 여부에 최 회장이 마음을 졸이고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 (위)LG 구본무 회장 (아래 좌)조준호 부사장 (아래 우)구본준 부회장 | ||
LG그룹에선 구본무 회장의 신뢰가 남다른 것으로 알려진 조준호 ㈜LG 대표이사 부사장을 중심으로 한 신진인사들의 세력화가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해 말 구 회장은 조 부사장을 사장으로 승진시키고 싶어 했으나 당시 40대(1959년생)였던 점을 감안, 부사장 직급은 유지한 채 대표이사 자리만 맡겼다고 한다. 조 부사장의 약진은 1948년생인 강유식 ㈜LG 부회장과 1949년생인 남용 LG전자 부회장 등 그룹을 대표하는 노신들을 염두에 둔 세대교체 예고 성격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미국에서 공부를 마친 구 회장 양아들 구광모 씨가 오는 9월 경영일선에 복귀할 가능성이 점쳐지면서 구 회장의 신진세력 키우기가 후계구도 과정의 일환으로 비치는 것이다. LG에서 공식 언급을 자제하고 있지만 재계에선 구광모 씨를 구인회-구자경-구본무에 이은 LG가 장자승계 차기주자로 보고 있다.
올해 말로 예정된 정기인사 역시 그룹 내 세력 간 판도를 가를 중요한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KTF 합병으로 통신공룡이 된 KT와 이동통신 1위를 지켜온 SK텔레콤 간의 통신 양강 틈바구니 속에서 LG 또한 내년 초엔 LG텔레콤-LG파워콤-LG데이콤 합병으로 맞대응에 나설 태세다. 3사 통합 법인이 출범할 경우 전자와 화학에 견줄 거대세력이 되는 만큼 그룹을 대표할 수 있는 부회장급 인사가 조직을 맡을 전망이다.
문제는 누가 거대 통신사를 이끌 적합한 인물이냐는 것이다. 1959년생인 정일재 LG텔레콤 대표이사 사장이 강유식 남용 부회장 등에 견줄 부회장으로 승진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이렇다 보니 LG텔레콤 대표이사 경력이 있는 데다 올해로 LG전자 대표이사 임기 3년이 만료되는 남용 부회장에 시선이 쏠린다. 때 이른 예측이긴 하나 남 부회장의 이동이 이뤄질 경우 LG전자 CEO 자리를 호시탐탐 노려온 구 회장 친동생 구본준 부회장의 LG전자 입성을 통한 입지강화 전망도 그려볼 수 있다.
정기인사를 위한 임원 평가작업은 구광모 씨의 회사 복귀가 예상되는 9월 중에 시작된다고 한다. 구광모 씨의 연착륙을 위한 조 부사장 등 젊은 세력의 약진, 그리고 그룹 내 무시할 수 없는 세력을 꾸려온 구광모 씨 삼촌 구본준 부회장의 도약 여부가 주목을 받을 태세다. 올해 말 정기인사를 앞두고 시작될 9월 임원평가에서부터 LG그룹 권력지형 변화를 예측하게 할 수 있는 여러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올 전망이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