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A´, CM-SM…부창부수네
재벌가 중에는 영문 이니셜 등을 붙여 오너 회장을 코드화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오너 회장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기 힘든 이유도 있고 원활한 대화나 보안의 필요성 때문이기도 하다(<일요신문> 1100호 보도). 오너 회장을 지칭하는 코드네임이 외부로 알려진 기업들은 공식적으로는 전면 부인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룹 내부 문서에 적시돼 있고 내부 직원들 사이에서 코드네임으로 통하고 있다. 그렇다면 오너 일가 여성들은 어떨까. 남성들보다는 덜하지만 오너 일가 여성들도 코드네임으로 통하기는 마찬가지다.
검찰의 CJ 비자금 수사로 오너 일가 여성에도 특별한 코드네임이 붙는 것으로 나타났다. ‘C1’으로 알려진 이재현 회장 외에 ‘C2·C3’가 각각 이미경 CJ E&M 총괄부회장과 손복남 고문을 지칭하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여성 오너에게 붙는 코드네임이 오히려 더 비밀스럽고 중요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기도 하다.
재계 1위 삼성은 남성 못지않게 여성 인력을 중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건희 삼성 회장의 형제들은 물론 두 딸인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과 이서현 제일모직 부사장 역시 경영 일선에 참여해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삼성그룹 법무팀장을 지낸 김용철 변호사의 <삼성을 생각한다>에 따르면 이건희 회장 부인 홍라희 삼성미술관 리움 관장은 과거 ‘A’’로 통했다. 이 회장이 영문 대문자 ‘A’로 통하는 데서 파생됐다는 것이다.
이건희-홍라희 부부를 대문자 A로 표기한 것과 달리 자제들에는 하나같이 영문이름 이니셜을 사용했다. 즉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JY’, 이부진 사장은 ‘BJ’, 이서현 부사장은 ‘SH’로 적었다는 것이 김 변호사의 말이다. 삼성그룹에서는 이마저도 부인하고 있지만 내부 직원들과 대화할 때 종종 이 같은 이니셜을 사용하는 것을 보면 전혀 쓰지 않는 표현은 아닌 듯하다. 일각에서는 이서현 부사장의 경우 영문 이니셜(SH) 때문에 ‘수협’으로 불리기도 한다.
김승연 한화 회장의 부인 서영민 씨는 그룹 내부에서 ‘SM’으로 통한다. 김 회장의 코드네임 CM에서 파생된 것으로 보이는데 ‘사모(님)’의 영문 이니셜이라는 얘기도 있다. 재계 일각에서는 한화그룹 내에서 서 씨의 영향력이 꽤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최근 김 회장이 배임 혐의로 재판 중이어서 경영 공백 상태가 길어지고 있고 장남인 김동관 한화솔라원 기획실장의 경영 능력이 아직 검증되지 않은 터라 서 씨의 입김이 더 세지고 있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더욱이 차남마저 대마초 흡입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어 오너 리스크에 시달릴 우려가 적지 않은 상황이다. 따라서 서 씨의 역할이 더 커질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한화 관계자는 “내부적으로 SM이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경영에 참여하거나 입김을 행사하고 있다는 것은 터무니없다”며 “오너 부재에 대해서는 고문단이 비상경영체제로 잘 이끌어오고 있으며 서 여사는 살림에만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은영 한진해운 회장의 별칭은 ‘DDM’. 최 회장의 경우는 특별히 ‘스페셜 원’ 대우를 하거나 보안상 필요성에 기인한 것이 아니라 항공·해운업계 특성 때문에 사용하던 것이 별칭으로 굳어진 예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인터넷이 없던 옛날에는 영문 텔렉스를 썼는데 해외 통신망을 쓰는 탓에 철자 하나하나가 다 돈이었다”며 “항공·해운업계는 물론 종합상사 등에서도 비용을 절약하기 위해 약자를 쓸 수 있는 것은 다 썼다”고 회고했다.
한진해운은 직급별로 알파벳 대문자를 쓰는데 임원급은 D, 부사장과 사장 등 CEO(최고경영자)나 오너는 DD라고 쓴다. 최 회장의 경우 여성 존칭인 마담(Madame)을 붙여 ‘DDM’으로 쓰는 것.
한진해운 관계자는 “회사 내부에서 쓰는 표현이 외부에 알려진 것”이라며 “지금도 회사 내부 문서 등에는 DDM이라고 쓰고 있다”고 말했다. 한진그룹은 과거 고 조중훈 회장을 ‘DDP(President)’로 표기하고 조양호 대한항공 회장은 영문 이름 이니셜을 따 ‘DDY’로 표기했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조양호 회장에 대해 지금도 DDY로 쓰고 있다”고 말했다.
임형도 기자 hdli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