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 견제’ 같은 속셈 다른 셈법
▲ 금속노조 현대자동차지부가 지난 5월 울산공장에서 임금 및 단체협상 투쟁 출정식을 열었다. 연합뉴스 | ||
노동계와 경영계 등이 만나 토론을 벌이고 있지만 서로의 입장 차이만 확인한 채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다. 임태희 노동부 장관 후보자가 “더 이상 유예는 없다”고 청문회에서 못을 박았지만 한나라당 내부에서조차 “아직 시행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게다가 재계 1·2위인 삼성과 현대차도 입장차를 보인다. 12년 동안 ‘판도라의 상자’로 남아있는 복수노조와 노조전임자 임금 문제를 열어봤다.
지난 9월 18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노사정위),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대한상공회의소(대한상의), 노동부 및 노동 관련 3대 학회는 ‘복수노조·전임자 문제 어떻게 풀 것인가’라는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다.
각 단체의 기존 입장은 변함이 없었다. 노동계는 복수노조 허용에 찬성하지만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에 대해서는 부정적이다.
한국노총은 “전임자 임금지급은 노사 자율의 문제로 현행 금지 및 처벌 조항을 삭제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임금지급 금지가 부당노동행위로 노조의 자주성을 훼손할 수 있는 문제”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경영계는 견해차를 보이고 있다. 경총은 “복수노조 허용을 반대하지만 전임자 임금지급을 철저하게 완전히 금지하면 허용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대한상의는 “복수노조를 허용하되 교섭창구 단일화를 강제해야 하며 임금지급 문제도 반드시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노동계와 경영계의 지루한 싸움은 1997년 노동법 개정으로 양 조항이 입법화되면서 시작됐다.
지난 12년 동안 노사 간의 극한 대립 속에서 시행이 세 차례나 미뤄져왔는데 법 개정을 하지 않는다면 내년 1월 1일부터 시행하게 되어 있다.
노사정위에서 합의안을 내놓고 있지만 노동계와 경영계 모두 반대하고 있다. 합의안은 복수노조의 경우 자율적 교섭창구 단일화를 원칙으로 하되 합의가 되지 않을 경우 전체 조합원의 과반수교섭대표제를 실시하고, 전임자의 경우 전임자 임금지급을 원칙적으로 금지하되 예외적으로 타임오프제(특정 노조업무 활동시간에 대해 유급 인정)를 적용하고 30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해서는 정부가 재정을 지원하는 방안이다.
정부와 한나라당은 “내년에는 반드시 시행한다”고 밝히고 있다. 임태희 노동부 장관 후보자가 지난 9월 22일 인사청문회에서 “복수노조 허용, 전임자 임금지급 규정은 더 이상 유예되어서는 안 되며 내년부터 예정대로 시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임 후보자는 “복수노조·전임자 규정의 시행은 2006년 9월에 노사정이 이미 합의한 내용”이라며 “정부는 2010년 법 시행을 전제로 현장에서 야기될 수 있는 문제점들에 대한 대응방안을 다각적으로 준비하겠다”고 밝혔다.
안상수 한나라당 원내대표도 “내년부터 법은 시행되어야 한다는 게 당론”이라며 정부의 입장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하지만 12년 동안 유예가 된 만큼 정부의 바람처럼 되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시선이다. 노동 관련 학계의 한 관계자는 “복수노조와 전임자 임금에 대한 법을 시행하려면 최소한 30여 개의 관련 법규를 개정해야 되는데 지금 시점에서는 늦은 감이 있다”고 말했다.
한편 한나라당 내부에서도 내년 시행과 관련해 부정적인 목소리가 나오고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상당수 의원들이 복수노조 시행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나선 것.
안홍준 의원은 “우리 노동문화에서 복수노조가 되면 선명성 경쟁을 할 수밖에 없고 선명성 경쟁을 하다보면 기업이 살아남을 수 없다”며 재검토를 요구했다. 박준선 의원도 “법 시행을 유보한 3년 전 상황과 큰 변화가 없는 상황에서 노동부가 열린 마음으로 가야한다”고 말했다.
게다가 한국노총 출신 김성태 이화수 강성천 현기환 한나라당 의원은 최근 청와대에서 이명박 대통령과 만나 노동법과 관련해 “5년간 유예하면 좋겠다”고 건의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노동계의 반발도 만만치 않다. 손종홍 한국노총 사무처장은 “내년에 노동법을 그대로 시행한다면 2010년 지방선거에서 ‘반 MB 총력 투쟁’뿐 아니라 ‘정권교체’로 급선회할 것”이라고 밝혔다. 손 사무처장은 “전기를 멈추고 택시와 버스를 멈추며 공장 문을 닫게 하는 총파업을 조직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경영계에서도 노조 전임자 임금의 완전 금지가 안 될 바에야 차라리 유예하자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고 한다.
경총의 한 관계자는 “복수노조 허용에 대해서는 경영계에서도 찬반양론이 있다”며 내년 시행에 회의적인 입장을 보였다.
한편 복수노조 허용과 노조전임자 임금 지급금지 조항이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른 지금 서로 다른 셈법을 하고 있는 기업들이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바로 재계 1, 2위인 삼성그룹과 현대·기아차그룹이 그 주인공.
현대차는 내심 내년부터 법이 시행되기를 바라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현대자동차 내부 관계자는 “현재 ‘전임자급여지급 금지조항’에 대한 법안이 더 이상 유예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다각적인 방면으로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대차 노동조합이 대표적인 강성으로 분류되고 있는 만큼 노조 전임자 급여지급 금지가 이루어지면 노조의 힘이 어느 정도 빠질 수 있다고 분석하는 것이다.
삼성의 경우에는 현대차와 반대의 입장이라고 할 수 있다. 재계 일각에서는 삼성이 ‘복수노조금지’ 조항을 유예시키기 위해 전 방위적인 노력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현재 삼성은 ‘1사 1노조’ 원칙을 철저히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만약 노조가 만들어질 분위기가 탐지되면 미리 사측이 어용 노조를 만들어 버려 타 노조의 형성을 막고 있다는 것.
하지만 복수노조 조항이 통과될 경우 이런 방법을 활용할 수 없기 때문에 유예를 원한다는 관측이다. 결국 복수노조와 전임자 임금 지급금지 유예 여부에 따라 삼성과 현대차의 희비가 엇갈릴 듯하다.
이윤구 기자 trus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