측근들 앉혀 놓고 쥐락펴락?
▲ 지난해 1월 당시 이명박 당선자가 이경숙인수위원장, 손병두 대교협차기회장(왼쪽)과 건배를 하고 있다. | ||
삼성고른기회장학재단은 “지난 12일 이사회를 통해 손병두 전 서강대 총장을 2012년 9월까지 3년 임기의 새 이사장으로 선임했다”고 13일 밝혔다. 손 신임 이사장은 삼성그룹 전략기획실의 전신인 회장 비서실 임원 출신으로 전국경제인연합회 상근부회장을 지냈으며 제12대 서강대학교 총장을 역임한 바 있다. 지난 9월부터는 KBS 이사장을 맡아왔다.
삼성고른기회장학재단은 지난 2006년 전신인 삼성이건희장학재단이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의 개인재산 8000억 원을 출연받아 삼성으로부터 독립하면서 이름을 지금처럼 바꿨다. 당시 재단 측에선 “삼성과 특수관계는 모두 청산했지만 이 전 회장의 사재 출연을 기리는 뜻에서 ‘삼성’이란 이름은 남겨놓았다”고 밝힌 바 있다.
삼성고른기회장학재단은 2006년 9월 신인령 전 이화여대 총장을 이사장으로 받아들이고 교육계 인사들로 새 이사진을 꾸리면서 독립적인 장학사업을 펼쳐왔다. 그런데 최근까지 연임설이 나돌던 신인령 전 이사장 대신 돌연 손병두 신임 이사장 발탁 발표가 나면서 외압설이 불거졌다. 이번 이사장 인사를 전후로 재단 주변에선 “재벌에서 독립한 공익재단을 정부가 넘보고 있다”는 이야기까지 들려온다.
손 이사장 취임은 정치권에서도 논란거리가 되고 있다. 지난 15일 민주당은 브리핑을 통해 “손병두 이사가 재단 이사장에 선출된 것은 8000억 원짜리 장학재단 접수를 위한 정부의 ‘삼성고른기회장학재단 삼키기’ 작전을 입증하는 것”이라며 공세를 취하고 나섰다.
한편 이번 삼성고른기회장학재단 사태를 접한 재계에서도 “대기업 소유 공익재단 이사진 구성이 외풍 논란에 휩싸인 건 비단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현 정부 출범 이후 몇몇 대기업 계열 공익재단 이사진 명부에 친 MB 성향 인사들이 새롭게 이사로 등용된 사례가 제법 있는 까닭에서다.
지난 6월 삼성그룹 계열 호암재단 이사에 취임한 김정배 한국학중앙연구원장은 이 대통령과 고려대 동문으로 고려대 교수 출신이다. 학계에서 대표적인 친 MB계 인사로 불리는 김 원장은 이 대통령의 서울시장 재직 당시 청계천복원시민위원장을 역임했다.
지난해 8월 삼성문화재단 이사에 오른 서정돈 성균관대 총장도 눈에 띈다. 서 총장은 지난해 5월부터 대통령 직속 국가과학기술위원회 위원을 맡아왔으며 11월 출범하는 대통령 직속 사회통합위원회 위원에 포함될 것으로 알려져 있다.
범 삼성가인 CJ그룹 산하 CJ나눔재단엔 지난해 7월 이사직에 취임한 나경원 한나라당 의원이 있다. 지난 17대 대선 당시 이명박 후보 중앙선거대책위원회 대변인을 역임했던 나 의원은 정치권에서 친 MB계 인사로 알려져 있다. 지난 9월 CJ나눔재단은 나 의원 지역구(서울 중구)에 있는 신당1동 새마을문고에 도서 200권을 기증하기도 했다.
위의 경우와는 반대로 정부가 대기업 산하 공익재단 이사진에 올라있는 명망가들에게 ‘러브콜’을 보내는 경우도 잦아지고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대사로 유명한 이인호 서울대 명예교수는 지난해 8월 삼성문화재단 이사에 오른 뒤 올 초부터 대통령자문 통일고문회의와 대통령자문 국민원로회의의 위원을 맡아오고 있다.
지난 2008년 5월 현대중공업 산하 아산사회복지재단의 이사로 선임된 장명수 한국일보 고문도 올 초부터 대통령자문 통일고문회의 위원을 맡아오고 있다. 한데 장 고문은 지난 10월 23일자 <한국일보> 칼럼을 통해 삼성고른기회장학재단의 이번 이사장 교체 배경을 비판하면서 대통령자문회의 위원이 꼭 현 정부 역성을 드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도 했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