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FTA 보다 미국 하나가 탐나네
그런데 한EU FTA 가서명이 이뤄진 날 정부 관계자들은 조금 이상한(?) 행동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각 언론사의 FTA 담당 기자들에게 한EU FTA와 관련해 미국 언론들이 내보낸 기사나 논설 중 발췌한 내용이나 전체 내용을 한국어로 번역, 보도자료 형태로 만들어 보낸 것이다. 정부부처에서 해외 언론의 반응을 직접 번역해서 기자들에게 서비스하는 것은 무척 이례적인 것이다. 그것도 당사국인 유럽 국가들도 아닌 미국 언론의 반응이라면 더욱 그렇다. 내용도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노동조합에 발목이 잡힌 사이에 한EU FTA 체결로 EU가 한국 시장을 미국보다 선점하게 됐다는 경고의 메시지였다.
좀 심하게 말하면 정체상태에 빠진 한미 FTA 인준을 위해 한국 정부가 전 방위적으로 미국을 압박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셈이다. 이처럼 미국을 독촉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미국은 ‘공화당 정부 때 일을 저지르고 민주당 정부 때 수습한다’는 전통 아닌 전통 때문이라는 분석이 있다.
한 정부 관계자는 “외교사를 보면 공화당 정부 때 이라크전이나 테러와의 전쟁을 일으키고 민주당 정부가 이를 수습했다. 또 경제에서도 공화당 때 재정을 펑크 내면 민주당이 이를 메운다.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도 서명한 것은 공화당 정부였던 아버지 부시 대통령 때지만 각종 반대를 무릅쓰고 인준시킨 것은 민주당이 정권을 잡은 빌 클린턴 행정부 때였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한미 FTA도 아들 부시 대통령 때 타결됐지만 노조 등의 반대로 정체 상태에 빠지는 등 NAFTA 때와 비슷하다. 노조에 영향력이 있는 민주당 정부인 오바마 행정부가 이번에도 해결의 열쇠를 쥐고 있는 만큼 민주당 정부 때 인준을 받는 것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정부는 왜 이렇게 한미 FTA에 매달릴까. 다른 나라들과 연속적으로 FTA를 맺은 마당에 좀 더 시간을 줘도 좋지 않을까. 전문가들은 FTA의 효과가 EU보다 미국에서 더 크기 때문으로 본다. 미국은 이미 자동차 회사들이 경쟁력을 상실하면서 자동차 시장 침투가 쉬워진 데 반해 EU는 자동차 산업이 여전히 견고하다. 휴대폰과 가전제품 등도 EU 측의 경쟁력이 높다. EU보다는 미국이 보다 파고들기 쉬운 시장인 셈이다. 거기에 덤으로 정치·군사 위주의 관계를 다변화시키는 이점도 있다.
이준석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