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착륙인간 했더니 연기만 모락모락~
지난 21일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 신관 9층 코스콤 김광현 사장의 집무실에 검찰 관계자들이 들이닥쳤다. 갑작스런 압수수색에 직원들이 당황하는 사이 검찰은 김 사장의 개인용 컴퓨터 하드디스크와 각종 거래내역서 등 관련 자료를 압수했다. 의정부지검 고양지청 형사2부(부장검사 김성은)가 밝힌 압수수색 사유는 김광현 사장의 금품수수 혐의.
김 사장은 우선 코스콤 대표이사 취임 전인 2002년부터 2004년까지 현대정보기술 SI사업본부장 재직 당시의 납품비리 의혹을 받고 있다. 코스콤 관계자는 “민간업체 측에서 검찰에 투서를 보내 사실 여부를 확인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며 “검찰의 수사 상황을 계속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김 사장은 또 코스콤 사장으로 재직하면서 브로커로부터 수천만 원의 금품을 제공받은 의혹도 받고 있다. 브로커 A 씨가 코스콤의 하청업체 선정과 관련해 김 사장에게 금품을 제공한 정황이 잡혔다는 것이다. 김 사장에 대한 수사는 검찰이 고양시 일산서구 탄현동 백마사격장 이전사업과 관련해 A 씨를 뇌물수수혐의로 구속하면서 시작된 것이라고 한다.
A 씨는 정보통신 관련 업체 등 여러 회사의 고문이나 회장 직함을 가지고 다니며 유력 인사와의 친분을 과시하는 등의 수법으로 공사를 따낸 뒤 대가를 받았다고 한다. 그러다 지난해 백마사격장 이전 사업권을 따내기 위해 고양시의회 의원에게 3000만여 원의 뇌물을 제공하고 담당 공무원에게도 900만여 원 상당의 향응과 골프접대를 한 사실이 밝혀져 구속된 것이다.
A 씨를 구속한 검찰은 또 다른 시의원과 공무원에게도 뇌물과 향응을 제공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수사를 확대하다가 A 씨와 김광현 코스콤 사장 사이에 금품이 오고간 정황을 파악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사장이 코스콤에 취임한 2008년 10월 이후 증권거래시스템 사업을 발주하는 과정에서 A 씨가 접근했다는 것.
B 사 대표에게 “코스콤 사업을 따도록 해 주겠다”고 접근한 A 씨는 김 사장에게 B 사가 코스콤 하청업체로 선정하게 해주면 이익금의 일부를 지급하겠다고 청탁했고 이에 B 사 대표는 2회에 걸쳐 1억 원을 A 씨에게 전달했다고 한다. 사건의 핵심은 물론 김 사장이 A 씨한테 이 돈을 받았는지 여부다.
이에 대해 김 사장은 “사실무근”이라며 “내가 받지도 않은 돈을 누가 줬다는 말이냐”고 반문하며 의혹을 강하게 부인하고 있다고 코스콤 사장 비서실 관계자는 전했다. 이 관계자는 “언론에서 의혹을 너무 부풀리고 있는 것 같다”며 “검찰의 수사 상황을 보면서 대응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수사를 담당하고 있는 검찰 관계자는 “계속 수사 중”이라고만 말했다.
한편 한국노총 공공연맹 코스콤노동조합(노조·위원장 김응석)는 “김광현 개인의 비리 혐의에 대해 검찰의 엄정한 수사를 촉구한다”면서 “이번 사건의 당사자가 코스콤이 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밝혀 눈길을 끈다. 노조는 “김광현 사장은 개인의 비리혐의로 코스콤의 명성과 신뢰를 일거에 물거품으로 만들어버렸다”며 “이에 대한 엄중한 책임을 지고 사퇴를 각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조는 또 “세 번씩이나 사장 관련 불미스러운 일을 겪게 만든 사장추천위원회의 존재와 능력에 대해 실망과 분노를 거둘 수 없다”며 사장인선 문제를 걸고 넘어졌다.
실제로 코스콤은 18개월 동안 사장이 두 번이나 바뀌는 불운을 겪었다. 2006년 5월 취임한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 세제실장 출신인 이종규 전 사장이 불행의 시작이었다. 이 전 사장은 임명될 때부터 낙하산 논란이 제기됐으며 비정규직 문제의 대표적 사건인 코스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장기투쟁을 불러일으켰다.
코스콤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2007년 4월 코스콤이 협력업체와 도급계약을 갱신하는 과정에서 직접고용과 정규직 전환을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자 400여 일간의 장기 농성에 돌입했던 것. 결국 그는 비정규직 사태의 책임을 지고 임기를 1년 남겨둔 지난해 5월에 자리에서 물러났다. 이 전 사장은 현재 한국외환은행 상근감사직을 맡고 있다.
주인을 잃은 코스콤 수장 자리를 물려받은 사람은 정연태 전 사장이었다. 정 전 사장은 지난 18대 대선 당시 한양대 겸임교수 자격으로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의 자문교수진 활동을 한 뒤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의 IT TF팀 상임위원으로 일하다 코스콤 사장에 임명됐다. 그는 강만수 경제특별보좌관이 기획재정부 장관에 재직 중일 때 주도한 ‘상록포럼’ 사무총장을 맡을 정도로 현 정권과 코드가 맞았다. 낙하산 논란이 또 불거졌지만 정권 실세 사장에 대한 기대감이 내부에서 확산되기도 했다.
이런 기대에도 정 전 사장은 ‘10일천하’에 그쳤다. 정 전 사장은 2000년부터 한국멀티넷 대표이사로 있으며 금융기관 등에 진 빚 52억 원의 부채를 갚지 못했다. 결국 회사를 자진폐업하며 법원으로부터 개인파산 선고를 받은 사실이 드러나자 그는 취임한 지 불과 11일 만에 불명예스럽게 물러난 것이다.
정 전 사장 사퇴 후 코스콤은 3개월이라는 시간을 두고 사장 선임 작업을 벌여 현재의 김광현 사장을 임명했다. 고려대 경영학과를 나와 한국IBM, LG CNS 상무, 현대정보기술 본부장 등을 역임한 김 사장은 코스콤 최초로 민간업계 출신 사장에 올랐다. 그는 취임 이후 비정규직 노조원을 전원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등 비정규직 사태를 종식시키고 해외 시스템 수출 등의 신사업을 추진하기도 해 회사 안팎에서 연착륙한 것으로 평가받았다. 하지만 이번 금품수수 의혹으로 김 사장에 대한 기대는 실망감으로 변하고 있다. 코스콤의 한 관계자는 “검찰이 어느 정도 유력한 혐의를 잡았으니까 압수수색을 한 것 아니겠냐”며 “직원들 사이에서 사장 개인의 비리가 회사에까지 악영향을 미칠까봐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고 밝혔다.
이윤구 기자 trus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