쓴맛 보고서야 대중 입맛 찾았다
▲ 창업시장 실패를 통해 ‘고객이 진리’라는 걸 절실히 깨달은 여영주 대표는 퓨전 실내포장마차 ‘피쉬앤그릴’을 열어 소위 ‘대박’을 터트렸다. 임영무 기자 namoo@ilyo.co.kr | ||
퓨전 실내포장마차 ‘피쉬앤그릴’을 운영하고 있는 ㈜리치푸드(www.richfood.net) 여영주 대표(49)는 이 같은 진리를 참담한 실패를 경험하고서야 깨달았다고 고백한다. 나름 최고의 ‘레스펍’(레스토랑과 호프집의 결합형태)을 준비해 외식 창업시장에 첫발을 내딛었던 여 대표는 불과 1년 만에 어마어마한 빚만 남긴 채 손을 털고 말았다. 그리고 자신의 눈높이가 아닌 고객의 눈높이를 맞춰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의 굴곡 있는 성공스토리를 들어봤다.
여영주 대표는 현재 피쉬앤그릴 467개, 짚동가리쌩주 46개, 크레지페퍼 15개, 온더그릴 3개 등 전국에 총 530여 개의 매장을 둔 거대 프랜차이즈 본사를 운영하고 있다. 그는 일류호텔, 대형 패밀리레스토랑, 할인점 등 다양한 직장 경력을 바탕으로 지난 2003년 12월 길거리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포장마차 메뉴를 실내로 들인 피쉬앤그릴을 론칭, 창업시장에서 대박을 터뜨렸다. 포장마차의 단품 메뉴를 레스토랑에서 먹을 수 있는 전문 요리로 품격을 높여 외식 업계, 그중에서도 주점 시장에 큰 파란을 일으킨 것이다.
여 대표는 아이러니하게도 이 같은 성공이 쓰라린 실패를 밑거름으로 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그가 창업 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것은 2002년, 대형 패밀리레스토랑보다는 한 단계 낮은 수준의 대형 레스펍 ‘비어매드’로 야심차게 발을 내딛었다. 첫 출발은 화려했다. 지인들의 투자까지 받아 920㎡(280평) 규모의 대형 매장을 서초 강남 압구정 세 곳에 동시에 오픈했다. 매장 한 곳에 들인 비용은 4억~5억 원 정도. 동시에 소형 테이크아웃 시장에도 문을 두드렸다. 백화점 내 푸드 코트에 샐러드 전문점 ‘하프앤하프’를 연 것.
그러나 자신의 선택이 시장의 요구와는 철저히 괴리돼 있다는 것을 알기엔 그리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무분별하게 발급된 신용카드의 부작용으로 신용불량자가 급증, 소비는 물론 창업자들의 투자 여력도 넉넉지 않았던 것. 사람들은 맥주 대신 쓴 소주를 찾았고 백화점 샐러드 역시 질보다 양이 중시되는 시절. 그의 야심작은 생뚱맞은 아이템이 된 셈이다.
수익은커녕 적자가 누적되면서 결국 1년 만에 모든 사업을 접었다. 그리고 그의 손에 남은 것은 8억 원에 달하는 손실이 전부였다. 이제는 오히려 자신이 신용불량자의 처지로 전락할 위기에 내몰린 것이다.
여 대표는 “호텔과 대형 패밀리레스토랑 등 대기업에서 근무하던 시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어깨에 잔뜩 힘이 들어가 있었던 것, 고객의 눈높이를 정확하게 읽어내지 못한 것 등이 실패의 이유였다”며 “지금 와서 보니 그 실패는 너무나 당연한 결과였다”고 회상했다.
그러나 이대로 쓰러질 수 없었다. 그러기엔 나이가 너무 젊었고 자신을 믿고 투자해 준 투자자들도 재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 문득 일본 출장 때 눈여겨봤던 ‘이자카야’(선술집)가 떠올랐다. 일본도 당시 장기 불황에 소비가 위축된 상황이었지만 저렴한 동네 이자카야에는 한잔의 술로 스트레스를 풀기 위한 손님들이 꾸준히 몰리고 있었던 것. 우리나라 역시 포장마차를 실내로 들여온다면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10개월의 시간을 투자해 준비를 마쳤을 무렵, 대형 레스펍 창업을 원하는 예비창업자가 그를 찾아왔다. 여 사장은 그를 설득, 연신내에 76㎡(23평) 규모의 퓨전 포장마차 피쉬앤그릴 1호점을 개설했다. 실패를 바탕으로 한 그의 새로운 도전은 성공적이었다. 점포비를 포함해 총 1억 8000만 원을 투자한 점포에서 한 달 매출 2600만 원, 순수익 800만 원을 기록한 것.
1호점이 성공을 거두면서 가맹사업은 순조롭게 진행됐다. 직영점은 1년 뒤인 50호 가맹점 개설 뒤에야 이뤄졌단다. 8억 원의 빚을 모두 갚고 2005년 서울의 중심인 종로에 264㎡(약 80평) 규모의 직영 1호점을 개설한 것. 현재 직영점 매출은 월 9000만 원에서 많게는 1억 원을 기록하고 있다.
피쉬앤그릴 성공 이후 론칭한 제2, 제3, 제4 브랜드 역시 대중의 눈높이를 맞추는 데 역점을 뒀다. 2006년에 선보인 짚동가리쌩주는 전통주인 한산소곡주를 신세대 입맛에 맞도록 알코올 도수를 13도까지 낮춰 ‘그린비’라는 PB(자체브랜드) 상품으로 출시, 젊은 세대에게 좋은 반응을 얻고 있으며 매운 맛을 선호하는 소비자들을 겨냥해 2007년 출시한 해물떡찜전문점 크레지페퍼 역시 창업 시장에서 선전하고 있단다. 지난해에는 온더그릴이라는 브랜드로 고기전문점까지 영역을 넓혔다.
여 대표는 앞으로도 변화하는 소비자 트렌드에 맞춰 다양한 브랜드를 지속적으로 선보일 계획이라고 한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지난해 말, 경기도 평택에 위치한 1만 3200㎡(4000평) 규모의 물류 센터에 R&D연구소를 개소했단다. 선두 브랜드인 피쉬앤그릴을 쫓아오는 후발 주자와의 거리를 더욱 넓히기 위한 메뉴 개발과 품질관리 등 내부 경쟁력을 높이는 것이 연구소의 역할이라고.
그는 “프랜차이즈 본사의 역할은 본사와 가맹점이 함께 장수하는 것”이라며 “이를 위해 본사는 직영점 개설보다 안정적인 생산과 제조에 집중하고 있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 식자재 비용을 100% 공개, 투명한 경영으로 본사와 가맹점과의 신뢰도를 높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가맹점 로열티도 받지 않는다고. ㈜리치푸드는 지난해 317억 원의 매출과, 22억 9000만 원의 당기순이익을 기록했다고 한다.
여 대표는 예비창업자들이 프랜차이즈 창업을 결정할 때 첫째 재무구조가 건전한지, 둘째 메뉴개발과 교육 마케팅에 지속적으로 투자를 하는 곳인지 셋째, 함께 성장할 수 있는 비전을 제시해 주는 곳인지 꼼꼼히 확인한 후 선택한다면 실패하지 않는 창업이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김미영 객원기자 may424@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