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게 쓰고 많이 내고… ‘국민이 봉이냐’
전력수급경보 준비단계를 발령한 지난달 3일 정홍원 국무총리가 한국전력거래소 전력수급대책상황실을 둘러보고 있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국회 예산정책처의 ‘전력가격체계의 문제점과 개선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1인당 연간 전력소비량은 9744㎾h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34개 회원국 중에서 9위로 높은 편이다. OECD 회원국 평균인 8306㎾h보다 많은 것은 물론 독일(7215㎾h)이나 영국(5819㎾h), 프랑스(7992㎾h) 등 선진국보다도 많다. 정부는 이를 근거로 전기 절약을 강조하고 있다.
그런데 이 소비량은 산업용과 주택용, 교육용, 농업용, 일반용(건물에서 소비하는 전력)을 합한 것이다. 이 가운데 기업 등이 사용하는 산업용과 일반 가정에서 사용하는 주택용을 뽑아서 비교해보면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온다. 우리나라 1인당 산업용 전력소비량은 4617㎾h로 OECD 회원국 평균인 2445㎾h의 2배에 가깝다. 전체 순위도 34개 회원국 중 7위로 높다.
반면 우리나라 1인당 주택용 전력소비량은 1240㎾h에 불과하다. 이는 OECD 회원국 평균인 2448㎾h의 절반 수준이다. OECD 34개 회원국 중에서도 27위에 불과하다. 독일(1733㎾h)과 영국(1935㎾h), 프랑스(2582㎾h)보다 크게 낮은 것은 물론 미국 1인당 주택용 전력소비량인 4674㎾h와 비교하면 4분의 1 수준이다. 주택보다 산업용 전력소비량이 월등히 높지만 정부는 국민들에게 에너지 절약을 강조하고, 강제 순환정전을 주택부터 실시하는 안일한(?) 계획을 세워놓고 있는 셈이다.
국민들은 전기요금으로 인해 또 다른 피해를 입고 있다. 에너지관리공단에 따르면 우리나라 4인 가구가 내는 전기요금은 월 평균 5만 7000원 수준이다. 여름철에 15형 에어컨을 매일 3시간 정도 사용한다면 전기요금은 11만 4000원으로 껑충 뛴다. 5시간씩 사용할 경우 전기요금은 18만 2000원까지 늘어나게 된다. 이러한 차이는 우리나라 누진제가 다른 나라에 비해 지나치게 징벌적이기 때문이다. 월 100㎾h 미만 전기를 사용한 가정의 경우 1㎾h당 59.1원의 요금(1단계)이 적용되지만 월 사용량이 500㎾h가 넘으면 1㎾h당 요금이 690.8원(6단계)으로 11.7배나 급등한다.
누진제가 이처럼 복잡하고 징벌 위주로 돼 있다 보니 우리나라 국민들은 평균 수준의 전력을 사용해도 요금은 선진국보다 많이 내게 되는 문제가 발생한다. 우리나라 4인 가구 월 평균 전기요금이나 에어컨 3시간, 5시간 사용 시 전기요금과 가장 근접한 값을 미국과 비교해보면 문제가 뚜렷하게 드러난다.
우리나라 가구가 매달 평균 350㎾h의 전력을 사용할 경우에 내는 전기요금은 5만 3880원이지만 미국의 경우 4만 6680원이다. 전력 사용량이 500㎾h까지 늘어나면 전기요금은 11만 1570원으로 미국 6만 2017원의 2배 가까이 된다. 전력 사용량이 600㎾h를 기록할 경우 우리나라 전기요금은 18만 6140원으로 미국 7만 2241원보다 크게 높아진다. 이는 미국도 누진제를 쓰고 있지만 단계가 대부분 2단계에 불과하고, 누진율도 여름철에 한해 1.1∼1.3배를 적용하기 때문이다.
전수연 국회예산정책처 사업평가관은 “전기에너지 절감 정책의 주요 대상은 산업용이 되어야 한다. 또한 우리나라 주택용 전기요금의 누진율이 외국에 비해 과도하게 높은 측면이 있어 주택용 전기요금의 누진제 완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준겸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