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저’ 되기 싫으면 ‘중대형’ 갈아타라
자투리펀드에 대한 정확한 규정과 정의는 없다. 다만 지난 2월에 시행된 자본시장통합법에 따르면 설정액 100억 원 미만 상태가 1개월 이상 지속되는 펀드에 대해서는 운용사의 판단에 따라 청산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고객 분쟁 등의 사후처리나 책임소재는 명시하지 않아 사실상 임의 청산이 힘든 것이 현실이다.
일부 펀드판매사들이 자투리펀드 청산시 운용사에게 모든 책임을 넘기는 것도 이 때문이다. 무엇보다 100억 원 미만 펀드 가운데 10억 원도 안 되는 ‘진짜 자투리펀드’도 2000개를 넘어선 상황으로 이들 펀드의 청산에 먼저 나서야 할 듯하다. 전문가들은 “소형펀드는 정상적인 포트폴리오 투자가 불가능해 상대적으로 수익률이 낮을 수밖에 없다”며 “가능하면 수익률이 좋은, 유사한 중대형 펀드로 갈아타는 것이 투자자에게 유리하다”고 입을 모은다.
미국 자산운용협회 통계에 따르면 국내 펀드 수는 올 3월 말 기준 총 9500여 개로 조사대상 44개국 가운데 1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펀드당 순자산은 2400만 달러에 그쳐 평균치인 2억 7000만 달러의 11분의 1 수준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10일 기준 국내 전체 펀드 가운데 100억 원 미만의 자투리펀드는 65.5%에 이르고, 이보다 더 작은 10억 원 미만 펀드는 20%에 육박한다. 여기에 최근 해외주식형펀드의 자금유출(환매)이 50일 가까이 이어져 중형 펀드들도 소형 펀드로 전락하는 현상까지 생기면서 자투리펀드의 수는 계속 증가하는 추세다.
이렇게 자투리펀드가 늘어나면서 국내 펀드매니저는 평균 9개 이상의 펀드를 운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3∼4개 펀드를 동시에 운용하기에도 벅찬데 그 두 배에 가까운 펀드를 운용하기에 자투리 같은 펀드는 사실상 운용을 포기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자투리 펀드를 운용하는 모 자산운용사 펀드매니저는 “대형 펀드 2∼3개 운용하는 것보다 소형 펀드 1개가 더 힘들고, 더 어렵다”며 “상대적으로 다른 중·대형 펀드와의 수익격차가 더 커질 수밖에 없어 수익률 관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자투리펀드의 운용이 얼마나 어려운지 단적인 예를 보자. 지난 10일 기준 1000만 원 이하의 펀드도 200개에 이른다. 이들 펀드는 삼성전자 주식 5주만 사더라도 펀드 비중의 40%를 넘어선다. 하지만 국내 주식시장에서 유가증권 종목을 실시간 매매할 경우에는 10주 단위로, 10주 이하 단주 매매는 증시 정규거래 시간이 끝나고 시간외 매매로만 가능하다. 삼성전자 등의 대형 우량주를 매매하는 데 따르는 이 같은 제약으로 사실상 운용 자체가 불가능하며 수익률을 거둘 수 없는 셈이다.
이 같은 자투리펀드의 운용의 어려움으로 인해 금융투자업계의 청산 논의는 수년간 이뤄졌으며 펀드 운용사와 판매사들 모두 청산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공감하고 있다. 최근 자산운용업계의 자투리 펀드 청산 움직임이 간헐적으로 나타나고 있기도 하다. 지난 18일 외국계인 푸르덴셜자산운용은 설정액 100억 원 미만 펀드 17개를 청산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푸르덴셜자산운용의 전신은 현대투신운용으로 2000년대 이익치 전 현대증권 회장의 ‘바이 코리아 열풍’의 중심에 있었다. 이번 자투리펀드 청산에는 바이코리아 열풍으로 수백조 원의 자금이 쏠렸던 일명 스타 펀드 시리즈도 포함됐다. 국내 펀드 상품의 경우 스타 펀드가 탄생할 경우 비슷한 유형의 시리즈 펀드를 양산했기 때문이다. 푸르덴셜자산운용 역시 당시 나폴레옹(공격형) 르네상스(혼합형) 시리즈를 양산했다. 고객 이탈의 위험을 안고 적극적으로 감행한 푸르덴셜의 자투리펀드 청산에 대해 금융투자업계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자투리펀드 청산 과정에서 생기는 고객과의 분쟁 등의 책임소재에 대해 업계의 시각은 엇갈린다. 상당수 펀드 판매사들이 자투리펀드 청산에 소극적인 것도 청산과정에서의 고객 이탈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서 투자자들의 인식전환이 우선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자투리펀드의 수익이 상대적으로 저조한 현실에서 투자자들이 펀드 갈아타기, 펀드 자금 환매 등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최근 수개월간 주식형펀드에서 대량 환매가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설정액 10억 원 미만의 자투리 펀드에서는 돈이 크게 빠지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자투리펀드 투자자들이 펀드 수익률과 시장상황 변화에 무감각해져 사실상 손을 놓고 있는 경우가 많다”며 “적극적인 환매 또는 펀드 갈아타기를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증권업계 관계자도 “자투리펀드는 펀드의 간접투자 효과를 사실상 기대할 수 없기 때문에 환매를 서두르는 편이 유익하다”며 “수년 동안 가입해도 설정액이 늘지 않거나 다른 펀드에 비해 수익이 부진할 경우 펀드를 갈아탈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한편 최근 자투리펀드를 되살린 삼성투신운용의 움직임도 자투리펀드의 새로운 해결방안으로 급부상하고 있어 주목된다. 삼성투신운용도 지난 2000년에 설정됐지만 수탁고가 100억 원대에 머무르며 잘 알려지지 않은 ‘밀레니엄드래곤 승천펀드’를 지난 8월 ‘스트라이크 펀드’로 바꿨다. 이렇게 펀드를 개명하고 단 두 달 만에 수탁고는 810억 원으로 늘어났다. 애물단지에서 일약 보물단지로 변신한 셈이다.
이 펀드가 출시된 후 거의 10년 동안 별 관심을 못 끌었지만 갑자기 관심이 집중된 데에는 이 회사의 ‘집중’ 전략이 주효했다. 단순히 이름만 바꾸는 데 그치지않고 소외되던 상품을 회사의 주력으로 내세우고 판매사도 확보해 관심도를 높여 자금을 유치하는 방법이다. 꾸준히 수익률을 보여주는 건 기본이다. 스트라이크 펀드는 연초 이후 수익률이 64.22%로 상위권에 랭크돼 있다. 자산운용업계의 한 관계자는 “자투리 펀드의 청산 등으로 무조건 몰고 갈 수 없는 현실을 감안한다면 기존 펀드를 정상화시킨다는 점에서 바람직한 시도”라고 평가했다.
류민호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