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업 ‘이태백’ 뽑자니 ‘오륙도’가 울고...
▲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달 29일 한국산업인력공단에서 열린 ‘청년취업’ 젊은이와의 대화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 ||
지난해 금융위기가 발생하면서 고용이 악화될 조짐을 보이자 정부는 희망근로와 인턴제 등 공공근로를 통해 실업률이 높아지는 것을 막아왔다. 일부 통계 기준이 다른 점은 있지만 선진국의 실업률이 10%를 바라보는 반면 한국의 실업률은 3%대에 머물러 온 것도 이런 정부의 노력 덕분이다. 그렇다면 금융위기로 인해 악화된 우리 사회의 일자리 문제는 완화됐을까. 한편으로는 그렇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전혀 그렇지 않다. 왜 그럴까.
우리 사회 전체적인 취업자 수는 금융위기 이전과 큰 차이가 없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금융위기 직후인 지난해 4분기 취업자 수는 2363만 6000명으로 3분기 2375만 2000명보다 11만 6000여 명이 줄었다. 올 1분기에도 취업자 수는 2290만 4000명까지 떨어졌다. 그러나 이후 정부의 공공근로가 본격화하면서 취업자 수는 2분기 2373만 7000명, 3분기 2375만 1000명으로 증가했다. 특히 3분기 취업자 수는 1년 전보다 1000명 줄어든 데 그친 것이다.
이러한 사회전체적인 취업자 수 유지가 ‘밝은 면’이라면 20∼30대의 청년 취업자 수가 더욱 줄어든 것은 ‘어두운 면’이다. 20∼30대 취업자 수는 지난해 3분기 987만 5000명이었으나 올해 3분기에는 959만 3000명으로 줄었다. 이는 3분기 기준으로 볼 때 지난 1989년 3분기 936만 8000명 이후 20년 만의 최저치다. 경제위기에 민간기업들이 허리띠를 졸라맨 데다 정부의 공공근로가 대부분 50∼60대층에 집중되면서 사회 초년생인 20∼30대의 일자리가 줄어든 때문이다. 사회 초년생이 일자리를 잡지 못하는 것은 고용시장의 고령화는 물론, 정부가 애써오고 있는 출산율 늘리기 등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이로 인해 정부·여당은 청년실업 문제 해결에 골머리를 앓고 있고, 야당과 시민단체들도 해결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문제는 지금까지 정부가 진행해온 각종 정책들로 인해 청년층 취업자를 빠른 시일 내에 늘리기 어렵다는 점이다. 현재 세계 경제 환경은 완전히 회복되었다고 보기 힘든 상태다. 민간기업들이 투자나 채용을 늘리기 어려운 상황인 셈. 이런 때 가장 쉽게 청년 실업을 해결할 수 있는 것은 공무원 수를 늘리거나 공기업 취업자를 증가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그동안 ‘작은 정부’를 외치며 공무원 수와 공기업 직원 숫자 줄이기를 추진해왔기에 이를 되돌리기가 쉽지 않다.
이명박 정부 초기 발표한 공기업 선진화 정책에 따르면 129개 공공기관은 2012년까지 현재 17만 5706명 중 2만 2364명을 줄여야 한다. 인원감축이 공기업 평가점수와 연결되어 있는 마당에 새로운 인력을 뽑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정부는 올해 평가점수가 낮은 4명의 공기업 사장을 사퇴시키기까지 했다. 정부는 ‘기존 인력을 줄이는 대신 청년 인력을 뽑으면 된다’며 압박을 가하고 있지만 가뜩이나 노동조합이 센 공기업 입장에서 자연 감소분 외에 인력을 줄이는 일은 추진하기 어렵다. 공기업은 정부 압력에 인턴제를 운영하고 있지만 시한이 지나면 ‘도로아미타불’이 되기 때문에 청년실업 해결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자 한나라당 청년위원장 강용석 의원이 지난 16일 신입사원을 뽑지 않는 공기업에 대한 무가산점제를 주장하고 나섰다. 강 의원은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해마다 청년실업률은 늘어만 가는데 올해도 공기업 중 70곳만 신입을 뽑고 200개가 넘는 곳이 뽑지 않고 있다”면서 “공기업은 안 뽑으면서 대기업보고 뽑아 신입을 늘리라고 할 수 없다. 기획재정부에서 연말에 공기업을 평가하는 데 있어 신입을 안 뽑아 정원을 줄인 공기업은 채점에서 적어도 가점은 않는다면 공기업이 적극 신입을 뽑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기업에 대한 임시투자세액공제 제도(임투공제) 폐지도 청년실업 문제 해결의 또 다른 걸림돌이다. 임투공제는 기업이 설비투자를 하는 경우 법인세나 사업소득세에서 투자액의 일부를 공제해주는 제도로 1982년 도입됐다. 정부는 금융위기 이후 재정건전성이 악화되는 점과, 임투공제가 대기업에게만 혜택이 돌아간다는 점을 고려해 올해 말 폐지키로 했다. 이에 기업들은 임투공제가 폐지되면 투자가 악화될 것이라고 볼멘소리를 하고 있다. 기업이 정부가 원하는 대로 투자를 유지하려면 인건비를 줄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혜훈 한나라당 의원도 지난 15일 임투공제를 1년 연장하는 내용의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한 상태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정부가 그동안 벌여왔던 정책이 청년실업 문제 해결을 어렵게 하고 있다. 그러나 정책을 후퇴시키면 정부 정책의 일관성이 떨어지고, 정책을 밀어붙이면 청년실업 문제가 풀리지 않는 딜레마 상태”라고 말했다.
청년 실업 심각 이유 있었네...
'쩐' 풀어야 '문'열리지
청년실업 문제 해결이 요원한 가운데 금융위기 전 정부의 일자리를 위한 재정지출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사실상 꼴찌인 것으로 드러났다. OECD가 최근 발표한 ‘2009 고용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2007년 OECD 회원국의 노동시장 프로그램에 대한 공공지출을 조사한 결과, 우리나라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0.41%에 불과했다. 이는 OECD 조사대상 27개 국가 중 꼴찌인 멕시코 다음으로 낮은 수준이며, OECD 평균인 1.32%의 3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
가장 낮은 국가인 멕시코는 노동시장에 대한 공공지출이 GDP 대비 0.01%였다. 멕시코가 만성적인 경제난에 시달리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우리나라의 노동시장 지출이 가장 낮은 셈이다. 노동시장에 대한 공공지출은 공공고용지원서비스(PES)와 직업훈련 등 9개 항목으로 구성됐다.
우리나라의 노동시장 공공 지출 비율이 낮은 것은 노동시장에 정부가 개입하기 시작한 것이 지난 1997년 외환위기 이후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늦게 시작한 데다 완전시장경제도 아니고 복지형 국가도 아닌 어정쩡한 경제 철학으로 운영되다보니 노동시장 프로그램 개발도 더뎠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노동시장에 개입하는 전통이 강한 유럽에 비해 우리나라는 고용유지 지원금 등 일자리를 위한 정책이 최근에서야 이뤄지기 시작했다. 또 유럽의 경우 실업률이 높아 정부의 재정지출 비율이 높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면서 “우리나라도 저소득층을 위한 공공근로사업 등으로 2009년에는 일자리를 위한 재정지출이 크게 늘었다”고 설명했다.
노동시장에 대한 공공지출 비율이 가장 높았던 국가는 벨기에로 GDP의 3.29%에 달했고, 덴마크(2.81%)와 네덜란드(2.49%), 독일(2.40%) 등의 순으로 복지형 유럽 국가들 대부분이 상위권에 포진했다. 이들 국가의 GDP가 한국의 2∼3배라는 점에서 실제 지출비용은 10~20배 정도 되는 셈이다. 반면 완전시장경제를 강조하는 미국은 노동시장에 대한 공공지출이 GDP 대비 0.43%로 한국 다음으로 낮았다.
이준석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