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지는 장사에 쌓여가는 불만
▲ 길거리 가판점에서 교통카드 소액 충전을 거부하는 사례가 많아 시민들이 불편을 겪고 있다. 임영무 기자 namoo@ilyo.co.kr | ||
서울 중랑구 면목동에 있는 한 가두판매점에 붙어 있는 글귀다. 지하철역이 멀어 집 앞 충전소에 5000원을 들고 왔던 학생 정 아무개 군(16)은 이를 보고 어안이 벙벙하다. “왜 충전이 안 되느냐”며 가판상과 실랑이를 벌이다 아침부터 기분만 상했단다. 가판상 박 아무개 씨(51)는 “5000원 충전해주면 손해나 마찬가지”라며 “거절 이유를 일일이 설명하기도 지쳤다”고 손사래를 친다. 최근 박 군처럼 충전소의 선불 교통카드 소액 결제 거부에 전국의 많은 사용자들이 불편을 호소하고 있다. 왜 그럴까. 충전소·교통카드업체·지자체의 속사정을 들춰봤다.
서울·경기·인천 수도권 지역의 경우 티머니(T-money) 유패스(U-pass) 이비(eB)카드 세 종류의 교통카드가 사용되고 있다. 대중교통 이용자는 각 충전소에서 1000원 이상부터 원하는 금액을 교통카드에 충전, 사용할 수 있다. 충전기 설치는 교통카드사와 충전소 간 계약으로 이뤄진다. 충전소는 우선적으로 교통카드사에 10만 원의 보증금을 지불해야 한다(eB카드는 보증금 없음). 이는 충전기를 분실, 훼손하거나 갑작스런 사업 중지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충전소가 충전기 선수금을 입금하고 고객에게 충전을 해주면, 교통카드사가 충전 금액의 일정 비율을 수수료로 지급한다. 충전기 선수금은 얼마를 입금하든 관계없다. 충전수수료는 T-money 0.7~1.0%, eB카드 1.0%, U-pass 0.7%로, 전국의 교통카드사가 대체로 0.7%~1.0%의 수수료를 충전소에 지급한다.
이제 충전소 측의 얘기를 들어보자. 서울시 양천구 신월동 가판상 김 아무개 씨(48)는 교통카드 충전기를 ‘애물단지’라고 표현했다. 교통카드를 충전해주고 실질적으로 남는 게 거의 없기 때문이란다. 그는 “전화선을 이용해 교통카드사에 충전 금액 정보를 보내야 하므로, 통화요금과 전기세가 별도로 나온다. 거기다 임대료까지 합하면 실질적으로 손에 쥐는 것은 충전 금액의 0.5%~0.8%뿐”이라고 말했다. 즉 1만 원을 충전해주고 실제로 김 아무개 씨가 가져가는 돈은 50~80원뿐이라는 것. 그나마 5000원 이하는 사실상 손해라는 게 대다수 충전소 측의 주장이다.
신용카드 충전은 ‘당연히’ 거절당한다. 종로구 적선동에 위치한 가판상 박 아무개 씨(51)는 “법으로 금지돼 있는 것은 아니지만, 카드 수수료가 4% 안팎이라 신용카드로 충전해줄 경우 오히려 충전금액의 3%를 손해 본다”고 설명했다.
이번엔 교통카드사의 얘길 들을 차례. 한국스마트카드 관계자는 “(충전소가 얻는) 수수료 이익이 미미하지만 수수료 자체보다는 충전 서비스를 통해 가판점이나 편의점으로 고객의 발걸음을 유도하려는 목적이 있다”고 밝혔다. 소액 충전 거부에 대해 이 관계자는 “충전기를 설치할 때 고객이 원하는 금액을 1000원부터 충전해 주라고 권고하지만 그분들의 사정을 알기에 강력한 조치를 취하기는 힘들다”고 말했다.
이러한 가판상의 애로, 이용자들의 불편을 보고도 지방자치단체가 문제 해결을 위해 직접 나서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서울시 관계자는 “서울시의 재정적 지원이 전혀 없는 상황에서 직접적인 개입은 어려울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이 관계자는 “수수료가 낮다는 가판상의 민원을 받아들여 2007년 교통카드사와 협의, 수수료를 0.7%에서 1.0%로 올려준 바 있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1000원 충전해봐야 한 번밖에 쓸 수 없는데 소액 충전을 원하는 시민들이 정말 있는지 의문이지만 가판의 소액충전 거부로 민원이 계속 제기된다면 3번 경고 후 충전기 철수 조치를 취하라고 한국스마트카드에 권고하고 있다”면서 “통계에 따르면 교통카드 충전은 지하철에서 56%, 가판에선 16%에 불과하다. 나머지 28%가 모바일·인터넷을 통해 이뤄지고 있다. 지하철 무인충전기의 경우 1000원부터 충전이 가능하니 지하철과 모바일을 통한 충전 방법을 홍보하는 방향으로 개선점을 찾아야 할 듯하다”고 밝혔다.
제2의 도시 부산의 사정은 서울과 또 다르다. 부산에서는 마이비카드와 하나로카드, 두 종류의 교통카드가 사용되고 있다. 두 교통카드업체 모두 충전소에 충전금액의 1.0%의 수수료를 지급하고 있다. 부산시 관계자는 “부산은 일률적으로 1%의 수수료를 지급하게 돼있어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라며 “그럼에도 충전소 운영업자들은 수수료가 낮다고 항의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부산은 교통카드가 도입된 지난 1998년부터 2007년 12월까지 최소 충전 금액을 5000원으로 설정해왔다. 그 후 2008년부터 지하철에 무인 충전기가 설치되면서 1000원부터 교통카드 충전이 가능하게 됐다. 부산시 관계자는 “지하철 외 충전소는 아직까지도 5000원부터 충전이 가능하다”면서 “충전기 자체가 5000원부터 충전이 가능하도록 설정돼 있는데 이를 바꾸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지하철역이 집에서 멀리 떨어진 부산의 교통카드 이용자들도 서울의 경우처럼 충전소에서 5000원 이하의 금액은 충전할 수 없어 불편을 호소하고 있다. 부산시 관계자는 “수수료를 인상할 경우 그 인상된 운용비를 시민들이 고스란히 떠안아야 한다. 충전소와 시민들의 입장을 모두 고려해 개선방안을 모색 중”이라고 전했다.
교통카드 소액 충전은 후불 교통카드(신용카드)를 발급받을 수 없는 데다 고액권을 갖고 다니기도 어려운 학생이나 저신용자 등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취재 중 한 가판상은 “학생의 소액충전을 거부했다가 학부모의 항의를 받았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여러 상황을 종합해 볼 때 이 문제는 빨리 해결 되기는 어려울 듯하다. 당분간 선불 교통카드를 사용하는 시민들은 가까운 충전소에 1만 원 이상을 들고 가든지, 아니면 지하철까지 가든지 계속 불편을 감수해야 할 듯하다.
정유진 인턴기자 kkyy1225@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