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관심은…‘염불보다 잿밥’
공정위는 8년 만에 조사국을 부활시킨다는 방침이다. 일각에선 경제민주화에 편승한 조직 불리기 아니냐는 지적이 일고 있다. 일요신문 DB
공정위도 이러한 분위기를 놓치지 않고 8년 전에 폐지된 조사국을 ‘기업집단국’이라는 이름으로 부활시킨다는 방침을 세워놓고 있다. 기업집단국이 만들어지면 자산총액 5조 원 이상 그룹 62곳의 내부거래 감시와 조사를 전담하게 된다. 기업집단국의 전신이었던 조사국은 대기업 전담 부서로 막강한 힘을 발휘하다 지난 2005년 대기업을 지나치게 압박한다는 경제계의 의견에 따라 폐지됐다. 벌써부터 기업집단국이 공정위에서 핵심부서가 될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다.
공정위는 또한 현재 재벌 정책을 맡고 있는 경쟁정책국과 조사를 맡은 시장감시국, 카르텔조사국의 일부 업무를 기업집단국으로 옮겨 대기업 조사뿐 아니라 관련 정책 기능까지 일원화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일각에서는 어차피 지금도 하고 있는 일을 굳이 새로 조직을 만들어 맡기려고 하는 것은 경제민주화에 편승한 조직 불리기 아니냐는 지적이 일고 있다.
공정위에 이어 힘 키우기에 주력하고 있는 곳은 국세청이다. 국세청은 올해 초 인수위 업무보고 때 금융회사들이 금융정보분석원(FIU)에 보고하는 수상한 거래(혐의거래보고제도·STR)나 하루 2000만 원 이상 고액거래(고액현금거래보고제도·CTR)의 자료 열람 권한을 확대하면 최소 4조 5000억 원의 추가 재원을 마련할 수 있다고 보고했다.
이에 따라 국회에서는 국세청이 FIU의 금융거래자료를 자유롭게 열람하게 하는 내용의 ‘특정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FIU법)’이 발의된 상태다. 현재 국세청 등 법집행기관은 FIU가 불법 거래나 자금세탁 행위와 관련된다고 판단되는 금융자료만을 제공받고 있다.
하지만 국세청의 FIU 열람을 확대할 경우 사생활 비밀과 자유를 보장한 헌법(17조)을 위반할 소지가 있고, 금융거래의 비밀을 보장한 금융실명제법(4조·금융거래의 비밀보장)에도 위배된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실제 민주당 등 야당에서 국세청 권한 강화에 따른 추가 견제 장치 마련을 요구하며 FIU법 통과에 제동을 걸고 있다.
조달청 등 다른 부처들도 경제민주화 분위기에 맞춰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현재 국회에 제출된 공정거래법 개정안에는 현재 공정위가 공정거래 사건에 대한 검찰 고발 여부를 단독으로 결정하는 ‘전속고발권’을 폐지하는 내용이 담겨있다. 대신 발주 기관이 담합 의심 업체를 공정위에 통보하면 공정위가 조사를 하고 검찰 고발 여부를 판단하되, 감사원이나 중소기업청, 조달청이 요청하면 의무적으로 검찰에 고발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조달청은 이보다 더 나아가 발주 기관이 담합 혐의 업체에 대한 조사권을 갖도록 ‘국가계약법’ 개정을 추진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발주기관이 공정위에 조사를 의뢰하는 대신 직접 조사를 한 뒤 제재를 내리고 결과를 공정위에 통보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정부 공사 발주 기관인 조달청의 권한이 강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국토교통부는 산하 기관에 하도급 조사권을 부여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현재 건설산업기본법에 따르면 하도급 대금 미지급 등 하도급 관련 사건의 조사·처분권은 국토부 장관이 지방자치단체에 위임하도록 하고 있다. 그런데 이 중 조사권을 국토부 산하 5개 지방국토관리청과 토지주택공사 등 4대 건설공기업에 부여하도록 건설산업기본법 하위법령을 바꾼다는 것이다.
한 정치권 인사는 “경제민주화라는 것이 지금까지 지속되어 왔던 불공정한 관행을 바로잡고 정당한 활동에 정당한 보상이 주어지는 경제로 만들자는 의미인데 정부 부처들이 이러한 경제민주화를 어떻게 이룰 것인가보다는 어떻게 하면 자기 부처의 영향력과 몸집을 키울 것인가에만 관심이 있는 듯하다”면서 “서민들이 우리 사회가 과거보다 공정해지고 있다고 체감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지 않는다면 이러한 몸집불리기는 오히려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준겸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