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입구·상사 책상 멀~수록 ‘명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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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태윤 기자 wdosa@ilyo.co.kr | ||
직장인들이 맘에 드는 자리에 앉는 것은 일종의 행운과 같다. 간혹 선택권이 주어질 때도 있지만 좋은 자리는 서열대로 돌아간다. 그만큼 자리는 ‘신분’을 상징하기도 한다. 유통회사에 근무하는 B 씨(28)는 ‘따끈따끈한 신입’이다. 입사한 지 6개월이 안 된 그의 자리는 출입문 바로 앞, 누구에게나 노출된 자리다.
“연봉이 높아지길 바라는 만큼 지금 자리를 탈출할 그 날을 늘 꿈꾸고 있어요. 요즘처럼 날이 추울 때는 문을 열어놓고 들어오는 사람이 제일 밉죠. 출입문 쪽이라 방문하는 사람이 있으면 제 차지예요. 안내에 차 준비까지 안할 수가 없어요. 한창 업무에 집중하다가도 선배들 심부름 때문에 바로 일어나야 하죠. 물론 팀장급들은 모두 창가를 등진 명당 중의 명당에 앉아 계십니다.”
답답한 사무실에 있다 보면 햇살을 바로 받을 수 있는 자리의 팀장들이 너무 부럽다는 B 씨. “점심 먹고 한창 나른한 시간에도 꼿꼿이 등 펴고 앉아 있어야 하는 자리는 힘들다”며 “컴퓨터 모니터를 최대한 눈에 띄지 않게 돌려놔 살짝 살짝 인터넷 서핑을 즐기며 버티고 있다”고 말했다.
투자회사에 다니는 C 씨(여·31)도 자리가 주는 비애감을 바로 옆에서 목격하고 있다. 얼마 전 나이 지긋한 직원이 사무실의 통로 쪽 어수선한 자리로 책상을 옮겼다.
“혼잡한 통로 옆이라 업무에 집중하기가 어려워서 업무 능률이 굉장히 떨어지는 자리예요. 다들 그 자리를 꺼려서 비워두었던 곳이죠. 몇 달 전 회사 방침에 비판적이었던 직원이 해고를 당했다가 소송에서 이기고 다시 들어왔어요. 자리 위치는 바로 그 빈자리였죠. 원래의 좋은 자리도 비워져 있었지만 윗분의 지시에 따라 그곳에 앉게 됐어요. 무언의 압력에도 굴하지 않고 꿋꿋하게 지내는걸 보면 참 대단하게 느껴져요.”
뭐니 뭐니 해도 사무실 최고의 명당은 ‘구석’이다. 안락한 자기만의 요새를 꿈꿀 수 있는 자리, 특히 상사와 멀리 떨어진 구석은 요지 중의 요지다. 인쇄회사에 디자이너로 일하는 Y 씨(여·25)는 현재의 자리가 너무 마음에 든다.
“사무실이 확장되면서 건물 한 층을 다 빌려 쓰게 됐어요. 대대적인 자리 이동이 있었죠. 하지만 말단 직원들한테 무슨 선택권이 있겠어요. 그런데 운 좋게도 정말 최고의 자리에 앉게 된 거예요. 뒤에는 창문이 있고 왼쪽은 벽, 오른쪽과 앞은 파티션. 뭘 해도 모를 자리죠. 게다가 펀룸(Fun Room)이라고 TV가 설치돼 있는 방과 대각선이라서 고개를 들면 하루 종일 틀어놓는 뮤직비디오도 볼 수 있고요. 팀장들 자리를 등지고 모니터가 완전 노출된 곳에 앉아있는 동료를 보면 참 안됐다 싶어요.”
우연히 지금의 자리에 앉게 됐지만 Y 씨가 회사를 계속 다닐 수 있는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다. 그는 “원래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게 일을 빨리 끝내 놓고 오후에 인터넷도 하면서 여유를 즐기는 타입”이라며 “하루 종일 업무만 해야 하는 자리였으면 지금까지 다니지 못했을 것”이라고도 말했다. 구석은 확실히 인기지만 프린터나 복사기, 탕비실이 가까운 곳은 호불호가 갈린다. 세금 관련 서비스회사에 근무하는 J 씨(여·28)의 뒤에는 프린터 복합기가 자리 잡고 있다.
“업무상 복사기를 사용할 일이 많긴 하지만 그래도 지금 자리가 맘에 들진 않아요. 좀 먼 자리의 남자 직원은 제 자리를 부러워하지만 그건 모르는 소리죠. 저 같은 경우는 미니홈피 관리도 하도 틈틈이 인터넷 서핑을 할 때가 많아요. 게다가 퇴근 후에 어학학원에 다니기 때문에 일을 빨리 끝내고 종종 과제를 할 때도 있죠. 근데 사람들이 복합기를 사용하려고 자꾸 오면 업무에 집중 안 되는 건 물론이고 눈치가 보이거든요.”
위치 외에 옆자리 동료 때문에 같은 장소가 명당이 되기도 하고 최악이 되기도 한다. 교육 관련 업체에 다니는 P 씨(여·32)는 예전 회사에서 악몽의 자리에 앉았었단다.
“지금 회사는 건물자체가 금연건물이라 괜찮은데 전에 다니던 회사는 아니었어요. 옆에 팀장이 앉게 됐는데 찌든 담배 냄새에 1회용 커피 냄새까지, 가만히 있어도 괴로운데 자꾸 말을 시켜서 코를 막고 싶을 정도였죠. 게다가 이거 가져와라 저거 해라 하면서 자잘한 심부름을 시키는데 미치겠는 거예요. 어찌 보면 위치는 벽을 등진 구석에 가까운 자리라 괜찮았는데 옆자리 때문에 한 순간에 기피 장소 1위가 됐죠. 아침마다 회사 갈 생각을 하면 그 자리에 앉아야 한다는 사실 때문에 발걸음이 떨어지질 않았어요. 이직을 고려하게 된 심각한 이유 중 하나예요.”
L 씨(여·29)는 반대의 경우다. 좋을 것 없던 자리가 순식간에 명당이 됐다. 인터넷 업체 상담업무를 하는 그녀의 팀은 대부분이 여자다. 그러던 어느 날 남자 신입사원이 왔다.
“나이도 비슷하고 외모가 훤칠한 훈남 스타일이었어요. 키도 크고 저음의 목소리도 듣기 좋았죠. 옆에서 상담하고 있는 걸 듣고 있으면 기분이 편안해지기까지 했고요. 선배님 선배님, 하면서 이것저것 물어보고 말을 시키는데 얼마나 기분이 좋았는지 몰라요. 그 기분을 표현하고 싶었지만 다른 동료들의 질투어린 시선이 느껴져서 혼자 속으로만 쾌재를 불렀어요.”
지금은 다른 부서로 이동해 다시 무료한 업무로 돌아왔다는 L 씨는 그 당시에는 매일매일 출근하려고 일어나는 아침이 그렇게 상쾌할 수 없었단다. 그녀는 “늦잠 때문에 허둥지둥 준비하고 갈 때가 많았는데 신경 쓰느라 저절로 일찍 눈이 떠졌다”며 “기분이 좋아서인지 업무도 늘 활기차고 스트레스를 받는 일도 드물었다”고 기억했다.
무역회사에 다니는 K 씨(30)도 ‘이성’ 때문에 자리싸움을 했던 경험이 있다. 사무실 내 자리이동이 있었고 맘에 두던 여직원 가까이 가기 위해 보이지 않는 암투를 벌였던 것.
“외모가 출중한 데다 상냥해서 인기 많은 직원이 있었어요. 미혼남들에게 선망의 대상이었죠. 자리 이동이 있었을 때 어떻게든 옆자리에 앉아보겠다고 짐짓 상관없다는 말투로 업무 연관성을 열심히 피력해서 가까이 앉아야 한다고 말했는데…. 결국 대놓고 옆에 앉겠다고 당당히 말한 다른 남자 직원에게 뺏겨 버렸어요. 어찌나 아쉽던지, 그냥 속보이게 말해버릴 걸 하는 후회가 남더군요.”
최근 취업포털 잡코리아가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직장인 절반 이상이 창가와 안쪽 구석진 자리를 선호했다. 잡코리아 관계자는 “출입구나 통로 쪽 자리는 업무 집중력을 떨어뜨리고 외부 손님을 상대해야 하는 등 귀찮은 업무가 많다”라며 “상대적으로 부담감이 덜한 구석과 창가 자리를 선호했다”고 밝혔다.
이다영 프리랜서 dylee2@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