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이 불려준 돈 삼성에 쓰면? 헉!
지난 11월 16일 삼성생명 상장 추진 소식을 접한 증권가에서 가장 주목받은 종목들은 당연히 삼성그룹 관련주였다. 삼성 계열사들 주가가 이날 일제히 상승세를 기록했는데 이와 더불어 신세계와 CJ㈜ 그리고 CJ제일제당 등 삼성생명 주식을 보유한 범 삼성가 계열사들의 주가 역시 상승곡선을 그려 눈길을 끌었다.
이들 중 삼성생명 지분율이 가장 높은 회사는 신세계다. 271만 4400주를 보유, 지분율 13.57%로 삼성생명 최대주주인 이건희 전 회장(20.76%)과 삼성에버랜드(19.34%, 은행 신탁분 6% 포함)에 이은 3대주주에 올라 있다.
삼성생명 상장 작업이 순조롭게 진행될 경우 신세계는 엄청난 차익을 거둬들일 것으로 보인다. 지난 1999년 이 전 회장 측이 삼성차 채권단에 손실 보전 비용으로 삼성생명 주식 350만 주를 지급할 당시 상장을 전제조건으로 책정한 삼성생명 적정 주가는 70만 원이었다. 삼성생명 상장시 주가를 70만 원으로 놓고 환산해보면 신세계가 보유한 삼성생명 주식의 평가액은 1조 9000억 원 정도가 된다.
삼성생명 상장 추진 소식이 전해진 지난 11월 16일 신세계는 3분기 실적을 명시한 분기보고서를 공시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신세계가 보유한 삼성생명 주식의 장부가액은 약 53억 원. 삼성 측 바람대로 삼성생명이 주가 70만 원에 상장될 경우 신세계는 장부가액의 360배의 이익을 거두게 되는 셈이다.
1조 9000억 원은 신세계 주식 18.32%를 사들일 수 있는 금액(11월 26일 신세계 종가 55만 원 기준)이다. 현재 신세계 최대주주인 이명희 회장의 신세계 지분율은 17.30%. 여기에 이명희 회장 자녀들과 임원 지분율을 합하면 28.07%에 이른다. 삼성생명 상장 이익으로 신세계 자사주를 사들일 경우 현재 28.07%인 이명희 회장 측 지분율을 46.39%까지 끌어올릴 수 있다.
삼성생명 상장 특수를 통한 대규모 M&A(인수·합병)용 실탄 장전도 가능하다. 예컨대 이명희 회장 아들 정용진 부회장이 최대주주(지분율 52.08%)로 있는 광주신세계의 주식 시가총액은 2080억 원 정도다. 단순 계산으로 삼성생명 지분만 다 팔아버리면 그 돈으로 광주신세계 같은 회사 몇 개를 더 사들일 수 있는 셈이다.
삼성생명 상장 대박 수혜는 범 삼성가 장손 이재현 회장이 이끄는 CJ그룹에도 해당된다. 공시에 따르면 그룹 지주사 CJ㈜는 삼성생명 주식 63만 9434주를 갖고 있다. 지분율은 3.20%. 주가 70만 원으로 환산해보면 평가총액은 4476억 원 정도가 된다. 사업 자회사인 CJ제일제당도 삼성생명 주식 95만 9151주(지분율 4.80%)를 갖고 있다. 주당 70만 원으로 보면 6714억 원의 가치로 환산된다. 삼성생명 상장으로 CJ그룹이 보유하게 될 주식가치가 1조 1190억 원에 이른다.
이는 CJ㈜ 지분 77%가량을 사들일 수 있는 금액이다. 이재현 회장의 CJ㈜ 지분율이 43.43%에 이르는 까닭에 추가 지분을 확보할 필요가 없으니 대규모 M&A를 위한 자금으로도 활용할 수 있는 셈이다. 최근 들어 방송 관련 사업 확장 소문이 끊이지 않는 CJ가 삼성생명 상장 특수를 어떻게 활용할지에 관심이 쏠릴 만하다.
재계에선 삼성그룹 측이 삼성생명 상장 추진을 알리기에 앞서 삼성생명 대주주인 신세계나 CJ 측과 의견을 나눴을 것으로 보고 있다. 삼성생명이 그룹 지배구조에서 차지하는 비중 때문이다. 삼성생명은 ‘삼성에버랜드→삼성생명→삼성전자→삼성카드→삼성에버랜드’의 순환출자 형태로 이뤄진 삼성그룹 지배구조의 한 축을 이루는 회사다. 삼성생명은 삼성전자 지분 7.21%를 보유하고 있다.
현재 삼성생명 지배구조엔 최대주주인 이건희 전 회장을 비롯해 삼성문화재단(4.68%) 삼성생명공익재단(4.68%) 등 삼성 계열 공익법인들이 대거 참여하고 있다. 이 전 회장 우호지분만 45.76%에 이른다. 설사 신세계나 CJ가 삼성생명 상장 직후 보유주식 전량을 처분한다 해도 이 전 회장 측이 삼성전자 지배력을 유지하는 데 큰 지장은 없는 셈이다. 결국 삼성생명 상장이 주가 70만 원대에만 순조롭게 이뤄진다면 삼성차 채권단과의 소송 문제를 처리하려는 삼성 측이나 투자자금을 필요로 하는 범 삼성가 기업들에 모두에 좋은 일이 되는 셈이다.
그러나 만에 하나 신세계와 CJ가 보유한 삼성생명 지분 21.57%가 삼성에 적대적인 집단에 전량 넘어간다면 어떻게 될까. 지분을 인수한 주체는 삼성생명이나 그 자회사인 삼성전자의 경영권을 당장 위협할 수준은 아니더라도 두 회사 경영에 어느 정도 영향력을 행사할 기반을 갖게 될 것이다. 이 두 회사는 삼성그룹의 주력 사업장인 데다 이 전 회장의 아들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 시대의 기반이 될 대표적인 캐시카우(현금창출원)들이다. 범 삼성가 보유 삼성생명 지분 향배를 이 전 회장 측이 예의주시할 수밖에 없는 셈이다.
한편 신세계가 삼성석유화학 지분 5.2%, CJ㈜가 삼성에버랜드 지분 2.35%를 보유하고 있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삼성석유화학은 이건희 전 회장 맏딸 이부진 호텔신라 전무가 지분 33.19%를 보유해 최대주주로 있는 회사다. 삼성그룹의 실질적 지주사 역할을 해온 삼성에버랜드의 경우 이부진 전무와 이 전 회장 둘째딸 이서현 제일모직 상무가 각각 8.37%씩 지분을 갖고 있다. 이 두 회사는 올 들어 경영자로서 주가를 올리고 있는 이부진 전무가 독립할 경우 계열분리 대상 후보군으로 분류되는 곳들이다. 이래저래 삼성그룹 입장에선 신세계나 CJ가 보유한 삼성 계열사 지분에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을 듯하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