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력 재력 겸비 ‘내 몫은 손대지마!’
▲ 이부진 호텔신라 상무(왼쪽)과 이서현 제일모직 전무 | ||
삼성 이부진-서현 자매
지난 한 해 동안 재계에서 가장 주목받은 재벌가 오너의 딸은 단연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 장녀 이부진 호텔신라 전무(39)일 것이다. 그때껏 평범한 샐러리맨(임우재 현 삼성전기 전무)과의 결혼생활 정도로 관심을 받아온 이부진 전무에게 2009년은 비로소 경영자로서 본격적인 주목을 받기 시작한 뜻 깊은 해였을 것이다.
지난 1월 정기인사에서 승진한 이 전무는 2월 오빠 이재용 부사장(당시 전무)이 이혼소송에 휘말린 시점부터 주목받기 시작했다. ‘수신제가’에서 허점을 드러낸 이재용 부사장에 대한 이건희 전 회장의 신뢰가 흔들릴지 모른다는 관측이 제기되면서 이부진 전무의 경영자적 역량이 더욱 주목받게 됐다. 이재용 부사장이 사업적 측면에서 크게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는 사이 이부진 전무가 이끄는 호텔신라가 꾸준한 실적 상승세를 기록해온 점이 인정받게 된 것이다.
호텔신라의 2008년 영업이익은 531억 원으로 전년 235억 원에서 두 배 이상 늘었으며 당기순이익도 같은 기간 동안 171억 원에서 249억 원으로 30% 이상 상승했다. 외모부터 성격까지 아버지 이 전 회장을 빼닮은 이부진 전무는 ‘리틀 이건희’라는 수식어까지 꿰차게 됐다.
이부진 전무는 지난 9월 삼성그룹 지배구조 핵심인 삼성에버랜드의 경영전략담당 전무까지 겸직하게 되면서 재계의 ‘삼성가 계열분리’ 전망을 부풀리고 있다. ‘삼성에버랜드→삼성생명→삼성전자→삼성카드→삼성에버랜드’로 이어지는 순환출자구조에서 이재용 부사장이 삼성에버랜드 지분 25.10%를 보유해 경영권 승계 여건을 갖춰놓은 상태. 그런데 이부진 전무 역시 삼성에버랜드 지분 8.37%를 보유하고 있다. 이재용 부사장의 그룹 경영권 승계과정에서 핵심 계열사 지분과 경영자로서의 소질을 동시에 갖춘 이부진 전무의 존재가 변수가 될 것이란 관측이 퍼지게 됐다.
재계에선 이재용 부사장이 그룹 주력인 전자·금융 계열을 안정적으로 물려받기 위해 이부진 전무가 호텔신라와 삼성에버랜드를 가져가는 분할 구도가 거론되고 있다. 이부진 전무로 향하는 스포트라이트가 뜨거워지면서 그가 지분 33.19%를 보유해 최대주주로 있는 삼성석유화학도 품에 안을 것이란 전망까지 고개를 들고 있다.
이렇듯 2009년이 이부진 전무의 해였다면 2010년은 이 전무 여동생 이서현 제일모직 전무(36)가 주목받는 한 해가 될 거라 내다보는 시각이 그룹 안팎에 퍼지고 있다. 이서현 전무는 지난 연말 발표된 삼성그룹 정기인사에서 제일모직 전무로 승진함과 동시에 제일기획 기획담당 전무까지 겸직하게 됐다. 이서현 전무 역시 언니와 마찬가지로 삼성에버랜드 지분 8.37%를 보유하고 있다.
제일모직은 전부터 계열분리를 통한 소그룹화가 가능한 곳으로 주목받아왔다. 기존의 패션부문에 화학 전자소재 사업을 성공적으로 장착시켜온 까닭에서다. 제일모직의 지난해 매출액은 3조 7277억 원으로 호텔신라(8748억 원)의 4배가 넘는다. 그동안 미래사업 발굴과 브랜드 전략 기획 등을 맡아온 이서현 전무는 이번 승진인사를 계기로 제일모직에서 더욱 견고한 오너 경영인 체제를 뿌리내릴 것으로 평가받는다.
이렇듯 이부진-이서현 자매가 경영역량을 과시하며 계열분리 전망을 높여가고 있지만 이들에겐 호텔신라와 제일모직 지분이 하나도 없다는 핸디캡이 있다. 일각에선 이재용 부사장으로의 승계 과정에서 이들 자매 명의 삼성에버랜드 지분 8.37%에 대한 적절한 보상을 받아 호텔신라 제일모직 지분율을 높일 것이란 가능성도 거론된다. 이 일이 새해 안에 일어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 정성이 이노션 고문(왼쪽)과 최기원 행복나눔재단 이사장 | ||
삼성 이부진-서현 자매에 비해 크게 주목받지 못했던 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회장 딸들 정성이-명이 자매의 2010년 행보 역시 재계의 눈길을 끌 전망이다. 정몽구 회장 장남 정의선 부회장이 승진을 계기로 그룹 경영 전면에 나서면서 경영권 승계 전망을 밝히고 있다. 이런 가운데 재계에선 정몽구-의선 부자의 승계과정에 광고계열사 이노션 경영에 참여 중인 정성이 고문(47)이 어떤 변수로 작용할지에 적잖은 시선이 모아진다.
정성이 고문은 현재 이노션 등기이사로 등재돼 있으며 남동생 정의선 부회장과 함께 각각 지분 40%를 보유한 최대주주 자리에 올라 있다. 나머지 20%는 정몽구 회장 몫이다. 이노션을 비롯해 현대엠코 위스코 등 정의선 부회장이 최대주주로 있는 비상장 계열사들은 그룹 물량 지원으로 급속한 성장세를 타고 있다.
이 회사들은 훗날 상장돼 핵심 계열사 지분율이 턱없이 부족한 정 부회장에게 승계용 실탄 창고가 될 것이란 기대를 낳기도 한다. 일각엔 정몽구-의선 부자 승계과정에서 이노션을 정성이 고문 몫으로 계열분리할 것이라 보는 시선도 있다. 정의선 부회장의 원활한 승계를 고려한 이노션에 대한 몰아주기와 키워주기가 계속될수록 정성이 고문의 주머니 역시 커져만 가는 셈이다.
지난 10월 별세한 정몽구 회장 부인 고 이정화 여사의 손길이 남아 있는 제주 해비치리조트가 정성이 고문 몫이 될 것이란 전망도 조심스레 제기되고 있다. 고 이 여사는 지난 2005년 3월부터 2006년 11월까지 해비치리조트 대표이사를 맡은 바 있고 타계 직전까지 리조트 등기이사직을 유지해왔다.
정성이 고문은 해비치리조트 전무 직함도 갖고 있는데 모친과 함께 리조트를 둘러보는 모습을 주변에 자주 보여주기도 했다. 일각에선 이노션 경영에 주력해온 정성이 고문이 고 이 여사의 대를 이어 해비치리조트 경영 전면에 나설 가능성을 그려보기도 한다. 고 이 여사가 보유해온 해비치리조트 지분 16%가 정 고문 몫이 될지에도 관심 어린 시선이 향하고 있다.
정성이 고문의 여동생 정명이 현대커머셜 고문(45)은 현대커머셜 지분 20%를 보유한 개인 1대주주며 남편인 정태영 현대카드·현대캐피탈 사장도 이 회사 지분 10%를 보유하고 있다. 현대커머셜은 지난 6월 자산관리공사(캠코)로부터 현대카드 지분 5.54%를 인수했다. 정태영-정명이 부부가 지분 30%를 갖고 있는 현대커머셜의 외연 확대를 분가 수순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정태영 사장은 지난 2003년 현대카드·현대캐피탈 대표이사에 취임해 적자상태에 있던 두 회사를 흑자법인으로 변모시키면서 능력을 인정받았다. 그런데 이 같은 경영수완은 정의선 부회장과 잦은 비교대상에 오르내리게 했다. 재계에선 정몽구 회장이 안정적 경영권 승계를 위해 정태영-정명이 부부를 계열분리시킬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SK 최기원 이사장
2009년은 그동안 베일에 가려져 있던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여동생 최기원 행복나눔재단 이사장(45)의 외부 활동을 모처럼 볼 수 있는 해였다. 지난 2005년 이혼 이후 ‘외출’을 삼갔던 최 이사장은 지난 2월 SK 계열 사회봉사단체 행복나눔재단 이사장직에 오르면서 조금씩 나들이 폭을 넓히기 시작했다.
최 이사장에 대한 재계의 관심은 그가 지난 11월 상장된 SK C&C의 대주주라는 점에서 더욱 커졌다. 최 이사장은 이 회사 지분 10.5%를 보유해 최태원 회장(44.5%)에 이은 2대주주다. 최 이사장 보유 주식 평가총액만 해도 2000억 원을 넘어선다. 최태원 회장은 그룹 지주사 SK㈜의 지분 31.82%를 갖고 있는 SK C&C 지배를 통해 그룹 전체를 장악하고 있다. 최 회장의 SK C&C 지분율이 높은 까닭에 최 이사장이 상장특수를 누리는 SK C&C 지분을 팔아 현금을 챙겨도 오너일가의 경영권 수성엔 별다른 지장이 없다.
일각에선 최기원 이사장이 SK C&C 지분을 팔아 다른 계열사 지분 취득에 나설 가능성에 주목하기도 한다. 가령 최태원 회장 사촌형 최신원 SKC 회장이 경영권을 요구했다고 알려진 SK네트웍스 지분을 사들일 경우 7~8% 매입이 가능하다. 최신원 회장이 한때 “지분율을 15%까지 늘리겠다”고 했던 SK증권 지분의 경우 23~24%를 사들일 수 있다. 최태원-최신원 사촌형제 사이에 나도는 계열분리설의 근간을 뒤흔들 수 있는 금액인 셈이다. 현재 최신원 회장의 SK네트웍스 지분율은 0.03%, SK증권 지분율은 0.10%에 불과하다.
일각에선 ‘최태원→SK C&C→SK㈜’ 형태의 기형적 지주회사제 구조를 개선하기 위한 SK㈜와 SK C&C 합병 추진설이 거론되기도 한다. 이 경우 최기원 이사장은 지주회사 SK㈜에 대해서 상당한 영향력을 지닐 수 있게 된다.
SK 측은 “최기원 이사장이 현재 상태에서 굳이 SK C&C 주식을 팔 이유는 없다”고 밝힌다. 또한 SK 안팎에선 가부장적 전통이 강한 SK 오너일가 문화를 볼 때 최 이사장이 직접 경영에 나설 가능성은 낮다고 입을 모은다. 그러나 최신원-창원(SK케미칼 부회장) 형제의 분가설이 지속적으로 제기되는 만큼 최 이사장의 실탄이 새해 오너일가 지분구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관심을 모으고 있다.
▲ 신영자 롯데쇼핑 사장 | ||
지난 12월 16일 울산롯데호텔에서는 신격호 회장이 사재 570억 원을 출연해 설립한 롯데삼동복지재단 창립 기념식이 있었다. 이날 행사 참석자 중 가장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이는 신격호 회장의 맏딸이자 재단 이사장을 맡은 신영자 롯데쇼핑 사장(67)이었다. 신 사장이 물론 재단 이사장이기도 하지만 재단 출범 배경이 따로 있다는 관측 때문이다.
지난 7월 일본롯데가 신격호 사장을 회장으로, 신 회장 장남인 신동주 부사장을 부회장으로 승진시키는 등 롯데는 ‘포스트 신격호 시대’를 본격적으로 준비하는 것으로 보인다. 현재 후계구도에서 신동빈 부회장의 존재는 ‘변수’가 아닌 ‘상수’다. 신 부회장의 총수 등극을 의심하기는 어렵다는 얘기다. 가장 큰 변수는 바로 신영자 사장이다.
오늘날의 롯데쇼핑을 키운 일등공신으로 평가받는 신영자 사장이 현재 보유하고 있는 롯데쇼핑 지분은 0.79%에 불과하다. 신동빈 부회장(14.59%)과 롯데쇼핑 지분율로만 비교하면 변수라고 할 수도 없어 보인다. 이외에 그는 편의점 세븐일레븐에 식품을 납품하는 롯데후레쉬델리카 9.31%, 서울·경기 이외 지역 롯데시네마 매점을 위탁 운영하는 시네마통상 28.3%도 보유하고 있지만 장남 신동주 부사장의 일본롯데, 차남 신동빈 부회장의 롯데그룹 경영권 승계에 비하면 초라하다.
이 때문인지 지난 한 해 후계체제를 준비하는 롯데그룹 안팎에서는 롯데쇼핑 내 신동빈 부회장과 신영자 사장 남매간 힘겨루기가 벌어지고 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지난 11월 30년 장기근속상을 받을 정도로 롯데쇼핑에 대한 신 사장의 영향력은 오래고 깊다. 그런 신 사장의 영향력이 더욱 확대되자 이를 견제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고 한다. 지난 연말 정기인사를 앞두고 신 부회장 측근들과 신 사장 측근들이 신경전을 벌였다는 루머까지 돌았다.
이런 상황에서 신격호 회장이 거액을 출연해 복지재단을 만들었다. 게다가 신 사장을 이사장에 앉히자 신 회장이 딸을 분가시키려는 액션을 취하며 직접 교통정리에 나섰다는 관측이 나왔다. 롯데쇼핑에 애착을 가진 신 사장에게 복지재단을 줘 딸의 마음을 달래려고 한다는 것이다. 신영자 사장은 삼동복지재단 창립 기념사를 통해 “롯데삼동복지재단은 ‘사랑과 희망의 옷’을 짓기 위해 한 땀 한 땀 바느질을 시작하려 한다”고 밝혔다. 그가 2010년 롯데 후계구도에 어떤 변수로 ‘바느질’을 할지 주목할 만하다.
신격호 회장과 미스 롯데 출신 서미경 씨 사이의 딸 신유미 씨(26)의 경영 참여설도 새해 들어 더욱 주목받을 전망이다. 신유미 씨는 롯데후레쉬델리카 지분 9.31%를 보유, 신영자 사장과 함께 개인 최대주주에 올라 있다. 항간에는 신동빈 부회장과 서미경 씨 사이가 원만치 않다는 이야기도 들려온다. 만약 신유미 씨의 경영 참여가 이뤄질 경우 신동빈 부회장과의 ‘알력’ 관계라는 공통분모를 지닌 신영자-신유미 자매의 연대 여부도 지켜볼 만한 사안이다.
이성로 기자 roilee@ilyo.co.kr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