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한 농담도 내 뒤통수친다
▲ 영화 <아빠는 여자를 좋아해> 포스터 컷. 기사의 내용과 관련 없음. | ||
대부분의 루머는 믿었던 동료의 입에서 흘러나온다. 철석같이 믿고 비밀을 털어놓는 것은 금물. 나중에 소문이 돌고 후회를 해 봐야 이미 늦었을 때가 많다. 부동산 관련 회사에 근무하는 N 씨(30)는 최근 곤란한 일을 겪었다. 업무 파트너로 항상 붙어 다니던 동료에게 고민을 털어놓은 것이 화근이었다.
“학교 선배가 경쟁업체서 일을 하는데 얼마 전 술자리에서 대우도 잘 해 줄 테니 와서 좀 도우라고 가볍게 얘기가 나왔어요. 이후 ‘확 가버릴까’ 하고 동료한테 그냥 우스갯소리로 이야기했는데 얼마 뒤 사건이 불거졌어요. 회의를 하는데 팀장님이 갑자기 업무 기밀 같은 건 맡은 프로젝트별로 각자 알아서 철저히 관리하라는 지시를 하시더군요. 그러더니 회의가 끝난 후 저를 불러서 만약 회사와 인연이 끊어지더라도 양심 있게 행동했으면 좋겠다고 하시는 순간 아차 싶었습니다.”
자동차 관련 회사에서 일하는 K 씨(32)도 몇 년 전 ‘적은 내부에 있다’는 사실을 몸소 겪고 행동을 더욱 조심하게 됐다.
“사회생활을 처음 시작하는 때여서 가리는 것도 없고 사람을 판단하는 능력도 모자랐던 시기였어요. 여자 입사 동기와 죽이 잘 맞아서 회사에서 단짝처럼 지냈죠. 서로 고민도 많이 공유하고 말 못할 이야기도 했었어요. 한번은 호스트바에 관한 영화 이야기를 하다가 슬쩍 과거 경험을 털어놨습니다. 20대 초 방황하던 시절 호스트로 일했었다고 고백했죠. 그 동기는 그런 게 뭐 대수냐 그럴 수도 있다, 오히려 그런 색다른 경험을 한 것이 대단해 보인다며 넘어갔어요. 문제는 그 다음이었습니다.”
K 씨는 얼마 뒤부터 느껴지는 이상한 시선들이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특히 여직원들끼리 모여 있을 때 지나가기라도 하면 그 정도가 심했다. 그는 “나중에 그 동기가 퇴사하고 나서야 선배한테 이야기를 들었다”며 “시간이 흐른 뒤에 진실을 알게 됐지만 굉장히 씁쓸했다”고 털어놨다.
비서로 근무하는 M 씨(여·27)는 보복성 루머 때문에 회사를 옮겨야 했다.
“회식 자리에서 상사가 치근대서 적당히 자리를 피했는데 그 뒤로도 계속 민망한 말을 하면서 추파를 던지더라고요. 그것 때문에 스트레스가 심해서 마음먹고 강하게 거부 의사를 밝혔습니다. 그 뒤에 상사가 악성 루머를 퍼뜨리고 다니더군요. 남자들끼리 뭉쳐 있을 때마다 제가 먼저 꼬리를 친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흘리고 다녔어요. 한참을 모르고 있다가 다른 부서 선배한테 사건의 전말을 듣게 됐죠. 억울했지만 부하직원이 무슨 힘이 있겠어요. 불명예스럽게 회사를 옮긴 걸 생각하면 지금도 답답하죠.”
D 씨(31)도 전 회사에서 악성 루머에 시달리다 결국 퇴사하게 됐다. 루머가 사실 ‘팩트’였지만 그래도 퇴사할 때는 속상한 마음이 컸다고.
“일종의 낙하산으로 입사한 회사였어요. 하지만 스펙이 떨어지거나 그랬던 건 아니었습니다. 서류 통과에만 입김이 들어갔을 뿐 면접도 보고 들어갔었어요. 그래도 ‘낙하산이 다 그렇지’라는 소리는 듣기 싫어 정말 열심히 일했습니다. 세상에 비밀은 없더군요. 결국 쉬쉬하면서 루머가 돌았죠. 회사 윗분 누구랑 가까운 친척이라느니, 앞으로 인사에도 영향이 있을 거라느니…. 그러다 계속해서 낙하산 인사는 회사 방침에 맞지 않다는 투고가 올라가면서 결국 그만둘 수밖에 없었습니다. 비록 입사는 정상적이지 않았지만 열정을 다했기 때문에 그만큼 억울하고 속상했지만 어쩔 수 없었어요.”
금융업계에서 일하는 H 씨(36)도 웃지 못 할 루머 때문에 쓴웃음을 지은 경험이 있다.
“제가 운동을 좋아해서 거의 모든 여가 시간을 운동에 투자하는 편이에요. 자기관리에 좀 빈틈없이 신경 쓰면서 살고, 뭐 하나 빠질 게 없는데 애인 없이 공부하고 운동에만 매달리니 이상하게 보였던 모양이에요. 전 그게 재미있어서 그렇게 살고 있었고 나름 순정파라고 생각하는데 웃기게도 동성애자라는 소문이 돌더군요. 나중에 술자리에서 그런 루머가 돈다는 소리를 듣고 크게 웃어줬습니다.”
H 씨는 그냥 웃고 넘어가면서 해명을 한 셈이 됐지만 유통업체에 근무하는 S 씨(30)는 황당한 루머에 직접 당사자를 찾아가 따져 물었다. 심각한 상황이 아니었기에 가볍게 넘어갔지만 그리 유쾌한 경험은 아니었다.
“성격까지 그렇지는 않은데 말투가 좀 무뚝뚝한 편이어서 차갑게 보는 사람이 많아요. 친절한 사람은 아니라는 인식이 좀 강하죠. 다른 부서에 업무상 협조를 구할 일이 많은데 한 여직원과 자주 이야기를 하게 됐어요. 사실 특별한 이야기를 나눈 것도 아닌 데다 거의 업무 관련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여직원이 제가 자기를 좋아한다고 소문을 내고 있더라고요. 원래 무뚝뚝한 사람이 자신에게만 친절하게 굴었다 이거죠. 좀 어이없었지만 사실이 아니기 때문에 그냥 넘어갈까 했는데 정도가 심해지기에 찾아가서 물어봤어요. 제가 언제 그렇게 오해를 살 만한 행동을 했는지. 그쪽도 당황해 하면서 그런 루머 퍼뜨린 적 없다고 하더군요. 대놓고 물어서 상대방이 민망했겠지만 이런 황당 루머는 초기에 진압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회사에서 받는 업무 압박 이외에 루머로 인한 스트레스를 겪고 있다. 루머로 인해 마음고생을 했던 경험자들이 공통적으로 조언하는 게 있다. 일단 루머를 퍼뜨리는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 왜 그러는지를 먼저 생각하라는 것이다. 만약 근거 없는 소문이라면 당당히 찾아가 해명하는 것이 좋다고 한다.
이다영 프리랜서 dylee2@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