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동생 애인 죽인 장남…‘막장 드라마’
15명의 자녀를 둔 말론 브란도. 그의 자식들은 큰 비극을 겪기도 했다.
둘 사이엔 미코와 레베카, 두 딸이 태어난다. 세 번째 아내는 타리타 테리피아. <바운티호의 반란>(1962) 때 공연했던 중국계 폴리네시아인으로서 그녀와 1962년에 결혼하면서 모비타와 이혼했다. 타리타와는 사이먼 브란도와 샤이엔 브란도 남매를 두었다.
아내 이외의 여성에게서도 말론 브란도는 아이를 낳았다. 하녀였던 마리아 크리스티나 루이스와 말론 브란도는 긴 세월 동안 부부 같은 관계였는데 그녀는 1989년에 니나, 1992년에 마일즈, 1994년에 티모시를 낳았다. 그리고 스티븐 블랙하트, 마이클 길먼, 딜런 브란도, 안젤리크 브란도는 말론 브란도의 자녀인 건 확실하지만 어머니는 알 수 없는 케이스다(마이클 길먼은 브란도의 친구인 샘 길먼이 입양했다). 여기에 브란도는 페트라 브란도-코발, 마이미티 브란도, 라이아투아 브란도 등 세 명의 자녀를 입양했다(페트라는 브란도의 비서의 딸이다).
세 번째 부인 타리타와 함께 한 모습.
말론 브란도가 타리타를 만난 건 1960년. 당시 모비타와 신혼 기간이었지만 브란도는 <바운티호의 반란> 현장에서 원주민 연인 역을 맡은 타리타에게 단숨에 끌렸고, 영화 촬영이 끝난 후 이혼 수속을 밟음과 동시에 타리타와 결혼한다. 1963년에 사이먼을 낳은 후 샤이엔이 태어난 건 1970년. 인공수정을 통한 출산이었다. 당시 아메리칸 인디언들의 인권 보호 운동에 앞장서던 말론 브란도는 샤이엔족 인디언에게 양해를 구하고 딸의 이름을 ‘샤이엔’이라고 붙였다.
브란도의 눈빛을 빼다 박은 듯한 샤이엔은 매력적인 소녀로 성장했다. 그녀는 세계적인 배우인 아버지를 너무나 자랑스러워했고 반대로 어머니를 무시했다.
틴에이저가 되자 아버지가 있는 LA로 간 샤이엔. 하지만 말론 브란도는 변덕스러운 아버지였다. 어떤 날은 선물 공세로 딸을 미소 짓게 하지만 어떨 땐 학비마저 주지 않는 구두쇠였다. 이 시기부터 샤이엔은 커다란 정신적 변화를 겪기 시작했고 아버지의 이중적 행동처럼 그녀도 ‘지킬 앤 하이드’ 같은 존재가 되고 있었다. 마약에 손을 댔고, 폭력적 성향을 드러냈다. 결국 타히티로 돌아온 그녀는 1987년에 해변의 디스코텍에서 다그 드로에라는 폴리네시아 청년을 만났다. 17세의 소녀는 23세의 핸섬한 남자에게 빠졌고 그들은 급속하게 빠져들었다.
장남 크리스천(왼쪽)과 딸 샤이엔, 드로에 커플.
더 큰 문제는 당시 샤이엔이 임신 상태였다는 것. 그녀는 카페에서 웨이터를 때리고 거리에서 낯선 사람에게 욕설을 퍼부으며 폭행을 하기도 했다. 거의 미친 상태였고 누군가 그녀에게 반격이라도 하면 태아가 위험할 뿐 아니라 수술로 인해 매우 불안정한 상태인 얼굴이 다시 함몰을 겪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결국 말론 브란도는 딸을 LA의 멀홀랜드 드라이브에 있는 자신의 저택으로 데려왔고, 여기엔 드로에도 동행했다. 사실 당시 드로에는 샤이엔과 헤어지려고 했지만, 뱃속의 아이 때문에 주저하는 상태였다.
그녀가 오자 의붓오빠인 크리스천 브란도는 샤이엔을 고급 레스토랑으로 초대했다. 초대 받지 못한 드로에는 집에서 TV를 보고 있었다. 샤이엔은 레스토랑에서 눈물을 흘리며 드로에가 자신을 매일 때린다고 이야기했다. 분노한 크리스천은 집으로 오는 길에 여자친구 집에 들러 맡겨두었던 시그자우어 45구경 권총을 챙겼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TV를 보고 있는 드로에에게 다짜고짜 총을 쐈다. 드로에는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하지만 이 일은 빙산의 일각일 뿐. 이후 밝혀지는 일들은 더욱 충격적이었다.
김형석 영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