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부른 손님들 ‘잔치’에서 딴 생각?
▲ 지난해 11월 23일 G20 정상회의 준비위 개소식 모습. 청와대사진기자단 | ||
오는 11월 한국에서 개최되는 G20정상회의 관련 예산이 총 1300억 원 안팎이 될 것으로 정부는 보고 있다. 예산이 정확하게 정해지지 않은 것은 정부가 올해 예산안을 지난해 10월 초에 제출한 탓에 G20정상회의 유치 관련 예산이 반영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현재까지 증액된 예산은 경찰청 120억 7000만 원, 국방부 20억 1000만 원, 해양경찰청 3억 1000만 원, 소방방재청 5억 1000만 원 등 경비업무에 집중됐다.
G20정상회의 행사 자체에 필요한 예산은 아직 정확하지 않지만 보통 정상회의에서 사용되는 비용이 1000억 원 가까이 들어간다는 점에서 총 1300억 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이처럼 세금이 많이 들어가는데도 내실 있는 성과를 거둘지에 대해 벌써부터 걱정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큰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세계 경제가 위기를 벗어나 회복세로 돌아서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 ‘피그스’(PIIGS·포르투갈 이탈리아 아일랜드 그리스 스페인) 등 유럽 국가들이 재정위기를 겪고 있고 미국의 금융 규제와 중국의 긴축 경제에 세계 경제가 이따금 흔들리고 있기는 하지만 회복세에 접어들었다는 점에는 어느 누구도 이견을 달지 않는다.
G20정상회의가 주요 8개국(G8)정상회의를 대체해 세계 경제를 조율하는 주요 협의체가 될 수 있었던 것은 2008년 발생한 금융위기 때문이었다. 세계 대공황을 피하기 위해서는 세계 각국이 서로 공조해 확장적 재정정책을 펼칠 필요성이 제기됐고 이를 위해서는 선진국만 모인 G8로는 힘이 부쳤다. 실제 G20정상회의에 중국과 인도를 포함시키면서 이들 국가에 재정정책 등을 쓰도록 하는 데 성공, 세계 경제는 일단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런데 세계 경제가 회복세에 접어들면서 공조 움직임이 삐걱거리고 있다. 당장 재정정책으로 시중에 풀린 돈 때문에 물가 상승 가능성이 커지면서 각국 정부가 공동보조를 취하기 어려워졌다. 중국이 부동산 투기와 지급준비율 억제 등 긴축정책을 취한 것도 이를 방증하고 있다. 정부가 올 6월 G8정상회의와 G20정상회의(4차)를 동시에 개최하는 캐나다 정부에 G20정상회의에 더 신경써줄 것을 주문키로 한 것도 G20정상회의의 힘이 예전과 같지 않음을 시사하는 부분이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세계 경제가 살아나면서 각국의 정책 공조가 점차 약해지고 있다. 이미 일부 국가는 출구전략에 들어갔고, 대다수 국가들이 출구전략의 시기를 저울질하고 있다”면서 “더 큰 문제는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회담은 올해 말인 11월이라는 점이다. 그때는 세계 경제가 완연한 회복세에 접어들어 더 이상 G20정상회의의 약발이 먹히기 힘들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미국과 유럽, 미국과 중국의 불협화음도 개최국으로 의장을 맡을 우리나라에 부담이다. 초기 공조 목소리를 냈던 데 반해 지난 연말 있었던 3차 정상회의에서부터 금융규제 개혁 문제를 놓고 주요국 간 줄다리기가 벌어졌다. 유럽의 경우 금융권의 과도한 보수와 보너스 체계에 대한 직접적인 제한을 요구하는 데 반해 미국은 은행권 제재를 통한 간접적 보수체계 제한을 선호한다. 금융위기 극복 이후 새로운 질서를 만드는 데 가장 핵심인 금융권 규제를 놓고 양측 간 이견이 팽팽하다.
우리나라의 경우 미국 측에 기울어진 입장이어서 유럽 국가들이 우리나라의 5차 G20정상회의 개최에 반대의 목소리가 높았다. 프랑스 등 유럽 국가들은 우리나라가 G20에 드는 것 자체에 대해서도 탐탁해하지 않았다. 중국과 일본, 인도는 아시아 대표국으로 충분한 데 반해 한국은 국제사회에서 영향력이 떨어진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렇다보니 선진국 외에 첫 번째 G20정상회의 개최국이 한국이 된다는 것에도 반대가 심했다.
그럼에도 한국을 자신의 가장 확실한 우군으로 여기는 미국의 지지로 G20에 든 것은 물론, G20정상회의까지 꿰찰 수 있었다. 미묘한 상황 탓에 의장국으로서 운신의 폭이 그만큼 좁아질 수밖에 없다. 세계 경제의 양대 축인 미국과 중국이 위안화 절상문제를 놓고 첨예한 이견을 보이다 달라이 라마 방미 등 정치적 갈등으로까지 번져버린 점도 부담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의장국이면서도 의제를 주도해 나가기보다는 주변국들의 눈치를 보는 분위기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의 위안화 절상 논란이 한 예다.
윤 장관은 최근 외신기자 간담회에서 “위안화 절상이 세계 경제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한 유일한 방향이라고 생각하느냐”라는 중국 기자 질문에 “위안화 절상 이슈도 포함돼 논의가 진행될 것”이라고 답했다. 그런데 일부 외신이 “‘위안화 절상이 G20정상회의의 의제가 될 것’이라고 답했다”고 보도하자 “통역이 잘못 전달했다”며 진화에 나섰다.
미국과 중국 간 이해가 첨예한 문제인 만큼 조심스러운 행보를 보이겠다는 것이지만 이에 대해 의장국으로서 논의를 주도하겠다는 의지가 없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적지 않다. 여기에 사공일 G20정상회의준비위원장은 한국 경제개발과 금융위기 극복 경험을 모델화한 ‘코리아 이니셔티브’를 의제로 내놓겠다는 입장이지만 이미 수많은 위기를 극복해온 미국이나 유럽 국가들의 눈길을 끌기에는 역부족이라는 평가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미국과 유럽은 이미 대공황을 경험한 바 있고, 영국 등 일부 유럽 국가들은 수차례 국가부도 사태를 극복한 저력을 가지고 있다.
한국의 경제개발이나 금융위기 극복 모델은 G20 국가들에게는 아무런 매력이 없다”면서 “정부가 국제사회의 주목을 끌 만한 의제 개발이라는 내실을 다지기보다 G20정상회의 유치라는 성과를 과시하는 홍보에만 매달리고 있다. 1000억 원 넘게 들여 남의 잔치만 마련해주는 것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문제는 G20에 대한 홍보마저도 제대로 되고 있지 않다는 점. G20정상회의준비위원회 구성 당시 주요부서인 기획재정부와 외교통상부가 제외되면서 이를 담당할 기자들이 모호해져버린 탓이다. 사공 위원장이 지난달 기획재정부 기자실을 찾고, 위원회 연락처를 배포하는 등 대언론 행보를 강화했지만 실제로는 아직 전담 기자단이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동안 공을 들여왔음에도 외신들이 잇단 오보나 ‘룸살롱 욕설 파문’ 등을 일으키며 정부와 사이가 틀어지면서 대외 홍보도 만만치 않은 실정이다.
이준석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