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풍에 돛 단 홀로서기 항해
한진해운홀딩스는 지난 2월 17일부터 3월 9일까지 공개매수 방식의 유상증자를 실시, 한진해운 주주들에게 한진해운 주식과 한진해운홀딩스 주식을 교환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했다. 이번 증자를 통해 최은영 회장은 보유 중이던 한진해운 주식 전량인 174만 8928주를 처분하고 한진해운홀딩스 주식 278만 3149주를 획득했다. 한진해운홀딩스 주가가 한진해운에 비해 40%가량 낮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종전까지 한진해운홀딩스 보유 주식 수가 33만 7191주에 불과했던 최 회장은 이번 거래를 통해 주식 수를 312만 340주(지분율 7.13%)까지 늘렸다.
한진해운홀딩스는 지난 연말 한진해운이 지주사(한진해운홀딩스)와 사업 자회사(한진해운)로 분리되면서 신설된 법인. 지주사 형태의 한진해운홀딩스가 한진해운을 지배하고 있으므로 최 회장은 한진해운 지분을 모두 처분해 한진해운홀딩스 지분율을 높여 지배력을 강화하는 방법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같은 방식으로 최 회장 딸 조유경-유홍 자매가 한진해운홀딩스 지분율을 각각 4.73%까지 높였다. 그밖에 한진해운 계열 공익법인인 양현재단과 한진해운 우호세력으로 평가받는 해외 투자회사들이 지분을 늘려 최 회장 우호 지분율은 현재 47.65%에 이른다. 한진가 장남 조양호 회장 계열의 ㈜한진 대한항공 한국공항 등도 한진해운 주주인 까닭에 이번 증자에 참여해 한진해운홀딩스 지분율을 높였다. 그러나 조 회장 계열 회사들의 지분율 합계는 27.45%에 머물러 최 회장 및 우호 지분과 20%가량의 차이를 보이게 됐다. 지분율로만 놓고 보면 최 회장은 조 회장 영향력에서 벗어나 독립할 수 있는 기반을 닦은 셈이다.
조양호(한진·대한항공)-조남호(한진중공업)-고 조수호(한진해운)-조정호(메리츠금융), 한진가 4형제 중 조남호-정호 형제는 지난 2002년 조중훈 창업주 타계 이후 분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지난 2005년 한진중공업과 메리츠금융은 한진과의 지분관계를 정리하고 계열분리를 하기에 이른다. 반면 3남 고 조수호 회장의 한진해운만은 분리되지 않고 계속해서 조양호 회장 그늘 아래 머물러 왔다. 지난 2006년 별세한 조수호 회장이 오랜 투병생활을 한 것이 계열분리가 미뤄진 이유로 꼽히곤 했다. 유산 분배와 관련해 조양호 회장과 조남호-정호 형제가 법정공방을 벌일 때 조수호 회장 측은 조양호 회장 편에 서 있었다.
조수호 회장 별세 이후 한진해운을 부인 최은영 회장이 맡게 됐지만 재계에선 여전히 조양호 회장이 한진해운을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있다고 여겨왔다. 그런데 지난해 한진해운에서 의결권이 없는 자사주 일부를 우호세력에 매각하면서 최 회장 측은 의결권 행사에 필요한 우호지분을 늘려가기 시작했다. 이후 한진해운홀딩스 설립 등 최 회장 측이 계열분리를 염두에 둔 듯한 행보를 벌이기 시작하면서 재계 일각에선 조양호-최은영 갈등설이 퍼졌다.
이와 관련, 최은영 회장은 지난 연말 기자간담회에서 “(한진그룹과의) 계열분리는 어떤 시점이 되면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이뤄질 것”이라며 “타임 스케줄을 갖고 있지 않다”고 밝힌 바 있다. 최 회장은 이어 “조양호 회장 또한 ‘한진해운의 독립경영’이라는 큰 그림에 동의하고 있다”면서 “해운 시황이 좋지 않다보니 (조양호 회장이) 염려하는 것일 뿐, 경영권 분쟁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런 최 회장 일가가 최근 한진 주력 계열사 대한항공의 지분을 대량 처분하면서 조 회장 측과의 지분관계 정리에 나선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최은영 회장은 지난 3월 25일부터 3월 30일까지 네 차례에 걸쳐 대한항공 주식 총 3만 2256주를 처분했다. 최 회장 딸 조유경-유홍 자매도 같은 기간 동안 각각 2만 3872씩을 매도했다. 최 회장 일가가 처분한 대한항공 주식의 평가총액은 약 38억 원에 이른다. 이에 대해 한진해운 측은 “개인적 사유에서 지분을 처분한 것일 뿐”이라고 밝혔다.
계열분리 전망에 대해서도 한진해운 측은 “당장 계획이 없다. 어차피 독립경영을 해왔으니까 당장 계열분리 여부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는 입장이다. 이번 증자에 대해 한진해운 관계자는 “계열분리 때문이 아니다. 공정거래법상 지주사가 상장 자회사 지분 20%를 보유해야 하기 때문에 새 지주사인 한진해운홀딩스의 한진해운 지분율을 높이기 위해서 유상증자를 단행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증자 과정에서 한진해운홀딩스는 한진해운 지분율을 종전의 12.20%에서 37.23%까지 끌어올린 상태다.
한진해운 관계자는 이어 “현행법상 (한진그룹으로부터) 계열분리를 위해선 한진 계열사들(㈜한진 대한항공 한국공항)의 한진해운홀딩스 지분율이 3% 아래로 떨어져야 한다”고 보탰다. 결국 27.45% 지분을 쥐고 있는 조양호 회장의 결단 없이는 최은영 회장의 계열분리 선언이 어려운 셈이다. 최 회장의 말처럼 조 회장과의 아무런 갈등 없이 ‘물 흐르듯’ 계열분리가 순조롭게 이뤄질지, 재계의 관심이 점점 더 뜨거워지고 있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