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지기 일보직전 ‘시한폭탄’ 수두룩
▲ 서울 강남에 위치한 상조전문회사 보람상조의 본사 입구.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 ||
지난 3월 30일 부산지검 특수부(부장검사 차맹기)는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위치한 보람상조 본사와 보람상조그룹 16개 계열사들에 대해 압수수색을 벌였다. 이날 압수수색은 부산 남구 용호동에 위치한 보람상조그룹 최 아무개 부회장의 집도 포함됐다. 최 부회장은 동생인 최 아무개 회장 등 가족과 친인척 명의로 계열사를 운영하며 총 100억여 원의 회사 돈을 횡령한 혐의로 지난 4월 2일 구속 기소됐다.
보람상조그룹 측은 사건이 터지자 “대표의 횡령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고객의 돈은 투명하게 관리되고 있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보람상조노동조합(노조·위원장 이부길)이 지난 4월 1일 최 회장 부인의 비서가 부산 사무실에서 돈을 찾아가는 장면을 공개하는 등 회사 측을 압박했다. 노조 관계자는 “장례를 치르고 나서 받은 돈과 장례 물품 판매 후 업체들로부터 받은 리베이트를 회장 일가가 찾아가는 모습”이라며 “최 회장 일가가 이런 방식으로 부산사무실에서만 매달 2억여 원의 돈을 받아갔다”고 주장했다.
이를 뒷받침하듯 검찰은 최 부회장이 2007년 6월부터 지난해 5월까지 62억여 원, 장례식장 수익금 5억 6000만여 원 등을 개인용도로 사용한 사실을 밝혀냈다. 또 최 회장이 지난 1월 미국으로 출국 전 164억여 원을 인출한 사실을 밝혀냈다. 이들 회장 일가족은 이렇게 빼돌린 돈을 모두 개인적인 용도에 사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사태로 인해 애가 타는 건 역시나 상조 가입 고객들이다. 현재 보람상조에는 가입을 해지하기 위한 고객들의 문의가 줄을 잇고 있다. 회사가 아예 무너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감이 팽배해있기 때문이다. 보람상조 관계자는 “해지를 문의하는 고객이 이전 전화상담 고객의 두 배에 달한다”며 “해약시 불이익을 설명하고 마음을 돌려보려 하지만 진화작업이 쉽지 않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납입금을 모두 냈을 경우에 돌려받을 수 있는 돈은 원금의 80% 정도”라며 “중도해지하면 최저 25%에서 50% 정도밖에 보장이 안 된다”고 보탰다.
이처럼 고객들의 부담감만 가중되자 정부의 상조업법 정비가 늦어 애꿎은 소비자만 피해를 봤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지난 2007년부터 이미 공정거래위원회에서는 ‘개정할부업법’을 상정해야 한다고 수차례 문제를 제기했다. 개정할부업법은 △자본금 3억 원 이상 회사만 시·도 등록 영업가능 △소비자로부터 미리 받은 돈의 50%를 금융기관에 예치 지급보증·보험 공제 가입 의무화 △계약일로부터 2주 이내 위약금 없이 청약 철회 가능 및 서비스 받기 전 위약금 내면 언제든 계약 해지 가능 등을 골자로 하고 있다. 이 법안은 올 9월부터 적용, 실시된다.
그런데 이 법안은 지난 2008년 10월 국회에 상정됐던 법안이다. 하지만 의원들이 보건복지부와 공정위를 지지하는 파벌로 나뉘어 갑론을박을 벌이기만 했고 올해 2월 말에서야 법안이 통과됐다. 만약 신속하게 법안을 통과시켰다면 이번 보람상조 사태로 애꿎은 피해를 보고 있는 소비자들을 구제할 수 있었을지 모를 일이다. 이는 이미 1970년대부터 상조회사를 허가제로 하고 고객 회비 중 최소 50%를 은행에 맡기거나 보증보험사의 보증을 받도록 하고 있는 일본과 상당히 대조적인 모습이다.
상조업계는 현재 보람상조 사건의 파장을 줄이려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일이 보람상조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주장이 제기돼 눈길을 끈다. 상조연합회의 한 관계자는 “일부이긴 하나 고객 돈으로 고급 외제승용차를 타고 다니며 재벌 행세를 하는 사장들도 더러 있다”며 “돈이 떨어지면 부도를 내고 잠적해 버리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또 고객 돈을 자기 돈처럼 생각하는 경영자들의 도덕적 해이가 방만한 경영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 지 오래다. 지난 연말 권택기 한나라당 의원은 “보람상조의 경우 고객이 100만 원을 내면 66만 원을 광고·판촉비 등 영업비용으로 쓰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지적한 바 있다. 당시 권 의원은 “영업비용이 과다하면 정작 회원에게 상이 닥쳤을 때 서비스가 부실해지거나 아예 서비스를 받지 못할 위험이 커진다”며 “일부 상조회사는 고객 돈으로 주식에 투자했다가 대규모 손실을 보거나 영업과 관계없는 부동산을 사들이는 데 골몰하고 있다”고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이와 더불어 일각에서는 상조업 부실의 주원인이 ‘다단계 판매’와 비슷한 영업방식이지만 금융관리 당국이 적극적인 관리·감독을 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결국 소비자의 피해를 키우고 있다는 비난여론도 나오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9월 <일요신문>(893호)이 ‘다단계 영업 문제’로 보도한 A 상조회사는 현재 더욱 사세를 키우고 있는 것으로 확인된다. 당시 사업설명회 자료만 보더라도 A 사가 불법 다단계 회사라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었다.
당시 A 사의 실태를 제보했던 H 씨는 “만약 회사가 ‘먹튀’를 해버리면 가입자들만 그 피해를 고스란히 뒤집어쓰게 되는 것 아니겠느냐”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찰과 금감원 등에서는 ‘수사하겠다’는 말만 하고 있다. 아무리 문제점을 지적해도 서로 책임전가만 할 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경우가 드물어 화를 더욱 키우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편 검찰은 이번 보람상조 수사의 뒤를 이어 군소 상조회사들에 대해서도 적극적인 수사에 나서겠다는 방침을 세우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실제로 검찰에서는 현재 대전 지역에 위치한 B 상조회사에 대해 직원들의 횡령 혐의를 수사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B 사는 소규모 회사지만 회원수가 1만 명이 넘는 것으로 전해진다.
김장환 기자 hwan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