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분양 떨이 분양권 손절매 대폭락 징조?
▲ 용인 수지구 성복동 아파트 밀집단지. 중개업소가 몰려 있지만 근처 입주를 앞둔 아파트 단지 공사 관계자를 제외하고는 사람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거리가 한산하다. | ||
국민은행 통계에 따르면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2008년 2월부터 지난 3월까지 2년간 버블세븐 지역 아파트값은 서울 서초구(0.9%)와 양천구(목동 포함 1.0%)를 제외하면 모두 하락세로 전환했다. 10% 가까이 빠진 곳도 있고 5% 전후로 떨어진 곳이 대부분이다. 이 기간 전국 집값이 4.4% 올랐고 수도권이 3.0% 오른 것과 비교된다. 용인의 경우 2년간 9.6%나 하락했다. 평균이 이 정도고 현장에 가면 20~30%씩 시세가 떨어진 아파트가 즐비했다.
지난 4일 오후 1시 용인시 수지구 성복동 LG빌리지 아파트 밀집지역. 단지 내 상가마다 1층엔 어김없이 ‘분양권 매물 다량 보유’란 표시를 해놓은 중개업소가 대여섯 곳씩 자리 잡고 있었다. 이 아파트 단지 내 상가의 한 중개업자는 “2~3년 전 7억 원이 넘던 인근 161㎡형이 현재 5억 원대 초반까지 매물로 나왔다”고 말했다. 그는 “중소형은 2000만~3000만 원, 대형은 1억 원 이상 분양가보다 싼 분양권이 나오고 있다”고 덧붙였다.
길거리 벽과 전봇대 곳곳에는 경매 나온 아파트를 대신 잡아주겠다는 홍보물이 붙어 있었다. 대상은 주변지역인 신봉동 상현동 죽전동 풍덕천동 등 수지구에 위치한 자이, 아이파크, 푸르지오 등 유명 브랜드들이다. 표시된 연락처로 문의하니 “수지 쪽에는 요즘 경매물건이 엄청나게 많이 나온다”며 “급매물보다 최소 10% 이상 싸게 잡아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신봉동의 한 중개업자는 “이곳엔 대출이 많이 낀 투자수요가 많다”며 “집값이 계속 떨어지니까 금융비용 부담을 못 감당하고 경매로 넘어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용인지역에서 가장 부촌으로 통하는 수지구는 2008년 초까지만 해도 3.3㎡(1평)당 1400만~1500만 원짜리 아파트가 즐비했지만 최근 분위기는 완전히 달라졌다. 성복동주민센터 인근에서 만난 한 중개업자는 “최근 3.3㎡당 1000만 원 아래로 떨어진 급매물이 늘어나고 있지만 거래는 거의 없다”며 “급매물이 쌓이고 있어 정확한 시세를 가늠하기 어려운 정도”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국민은행 통계자료를 보면 집값이 한창 올랐던 2006년 한 해 용인은 20%, 수지구는 25%나 폭등했다. 같은 시기 서울 강남 상승률(21%)과 비슷하다. 용인이 버블세븐 지역으로 분류된 건 이때부터다. 하지만 2006년 말부터 수지구를 중심으로 집값은 하락하기 시작했다. 수지구는 집값이 가장 많이 올랐던 2006년 12월부터 올 3월까지 16% 떨어졌고, 그 영향으로 이 기간 용인도 9.7% 하락했다. 풍덕천동에서 5년간 중개업을 해왔다는 한 중개업자는 “집값이 많이 오를 때 건설사들이 용인에 아파트를 너무 많이 공급한 게 문제”라고 풀이했다.
닥터아파트에 따르면 용인에서는 지난 2008년까지 매년 신규 분양이 크게 늘어났다. 2005년 1135가구 수준에서 2008년엔 1만 가구 이상으로 급증했다. 수지에서는 물론 기흥의 공세동 동백동 구성동 등에서 아파트 분양이 봇물을 이뤘다. 당시 급증한 분양은 최근 입주량 증가로 이어지고 있다. 2007년과 2008년 연간 5000가구 규모로 입주했으나 2009년 1만 2271가구, 올해는 1만 4355가구나 입주할 예정이다.
입주물량이 쏟아지면 주변 아파트의 매매값과 전세값을 떨어뜨린다. 새 집으로 이사하기 위해 기존 집을 매물로 내놓는 경우가 늘어나면서 공급이 갑자기 증가하기 때문이다. 2006년 말 동백동 인근 99㎡형으로 이사한 연 아무개 씨는 “당시 1억 2000만 원 웃돈을 주고 아파트 분양권을 샀다”며 “최근 집값이 매매가 밑으로 떨어져 큰 손해를 보고 있다”고 씁쓸해 했다.
오는 5월부터 주변 지역에 6000여 가구가 순차적으로 입주하는 상현동의 한 중개업자는 “분당과 강남 지역 거주자들이 이곳에 투자를 많이 했다”며 “그쪽 주택시장에서도 거래가 잘 안 되기 때문에 입주일이 가까울수록 이쪽 분양권을 포기하는 사례가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분양권 가격 하락이 불가피하다는 이야기다.
용인 지역 곳곳에 고분양가 평가를 받고 있는 미분양 물량이 쌓여 있는 것도 문제다. 2006년 입주한 성복동 S 아파트에 거주하는 주부 김 아무개 씨는 5월 입주 예정인 주변의 새 아파트에 대해 “입지와 크기, 브랜드가 거의 같아도 저쪽 아파트가 우리 집보다 2억 원이나 비싸다”며 “누가 저걸(미분양) 사겠느냐”고 반문했다. 성복동 LG아파트 단지 내 상가에서 만난 중개업자는 “171㎡형의 경우 주변 아파트 시세는 6억 원대 초반까지 떨어졌는데 새 아파트 분양가는 9억 원이 넘는다”며 “차이가 많이 나니 미분양이 많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때문인지 용인 지역 부동산업계에는 입주가 가까워오면서 미분양 해소책으로 분양가를 내리는 단지가 생길 것이라는 소문이 돌고 있다. 성복동의 한 중개업자는 “분양대행사라면서 ‘(주변 미분양 아파트의) 분양가를 20% 깎으면 매매할 수 있겠느냐’고 묻는 경우가 최근 몇 번 있었다”며 “건설사가 분양가 인하 폭에 대해 분위기를 조사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건설사가 미분양 물량을 팔기 위해 20%가량 분양가를 내려 중개업자에게 건네면 중개업자의 능력에 따라 할인해서 팔고 인센티브를 적절히 챙기면 어떻겠냐는 제안이 왔다는 것이다.
관련 건설사 측은 “근거 없는 소문일 뿐”이라며 강하게 부인하지만 업계에선 “분양대행사가 단독으로 그런 질문을 할 리 없다”며 분양가 인하가 곧 있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한 분양대행사 관계자는 “분양대행사가 시행사나 시공사와 상관없이 단독으로 20%를 낮추겠다는 등의 제안을 하는 경우는 없다”며 “뭔가 교감이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용인 지역의 시세 하락은 정부가 조장한 측면도 있다”는 게 현재 주민들의 불만이다. 각종 개발 계획을 발표했지만 기반시설 등을 조성하는 데는 소홀히 해 실거주자나 투자자들이 실망하기 시작한 것이다. 기흥구 구성동 S 아파트에 거주하고 있는 손 아무개 씨는 “2004년 용인에 이사 오고 현재까지 기반시설이 나아진 것이 거의 없다”며 “용인은 지역이 넓은 만큼 옹기종기 모여 있는 거주지가 많은데 전반적으로 기반시설이 부족해 집값 침체의 원인이 되고 있다”고 했다.
박일한 중앙일보 조인스랜드 기자
jumpcut@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