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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외화유출혐의로 사회봉사명령을 받은 장재국 전 한국일보 회장은 이에 불복. 항소했다. | ||
그러나 그는 엿새 뒤인 9일 법원에 항소했다. 서류상의 항소 이유는 ‘죄에 비해 벌이 지나치다’는 ‘양형 부당’이었지만, 내심으로는 그가 받은 ‘사회봉사명령’의 꼬리표를 떼기 위한 이유도 있었던 것이 사실. 언론사 회장 출신인 그가 과연 양로원이나 고아원에서 청소나 빨래를 하게 될까. 장 전 회장의 선고를 계기로, 앞서 법원으로부터 사회봉사명령을 받았던 유명 인사들의 봉사활동 내역서를 들춰봤다.
사회봉사명령제도가 본격적으로 시행된 것은 1997년 1월1일. 이전에는 소년범들을 상대로 실시되던 것이 이때를 기점으로 성인범을 대상으로 확대된 것이다. 제도 시행 이후 가장 먼저 이 명령을 받은 ‘공인’으로는 아마 박지만씨를 꼽아야 할 것 같다. 박씨는 제도를 시행한 지 두 달도 채 안된 1997년 2월25일, 히로뽕 상습투약 혐의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 그리고 사회봉사명령 2백시간을 선고받았다.
그는 사회복지법인 우성원(서울 강동구 고덕2동)에서 정신지체인들의 허리펴기, 물리치료 보조, 식당 청소 등의 일을 했다. 당시의 박씨를 기억하는 우성원 관계자는 “봉사 활동은 아침 9시에 시작되는데 박씨는 한 시간이나 먼저 와서 일을 시작했다”며 “누가 시키지도 않는데 원생들 목욕을 시키거나 형광등 갓을 고쳐주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고 말했다.
박씨 역시 두 달 동안의 봉사명령 기간이 끝나고 난 뒤 직접 작성한 소감문에서 “나의 잘못에 대한 하나의 처벌이라 생각하고 열심히 활동에 임했습니다”라며 “역시 어려운 사람을 돕는다는 것은 보람있고 즐거운 일입니다”라고 썼다. 박씨는 당시 마약 사범으로서는 이례적으로 2주일에 한 번씩 보호관찰소의 마약 테스트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올해 4월, 여섯 번째 ‘히로뽕 사범’으로 구속된 박씨는 지난 8월에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받아 이 같은 참회와 주위의 노력을 무색하게 했다.
사회봉사명령을 받은 유명인들을 직업별로 나눠 보면 연예인이 가장 많다. 이들에 대한 사회봉사명령이 많은 이유는 연예인 범죄의 사회적 파장이 어느 직업군보다 크기 때문. 하지만 역시 사회적 여파가 큰 정관계 인사들의 범죄의 경우 상대적으로 사회봉사명령을 받는 일은 드문 편이다. 그런 까닭에 ‘유권(有權) 무봉사, 무권(無權) 유봉사’라는 얘기가 나돌기도 한다.
이유는 제각각이지만 지금까지 사회봉사명령을 받은 연예인들은 10여 명이 넘는다. 탤런트로는 이승연, 임현식, 유퉁, 안승훈, 허윤정씨가, 가수로는 강산에, 천상용(신촌블루스), 서정권(드렁큰 타이거), 심신, 김창열(DJ DOC), 김상욱씨(업타운) 등이 사회봉사명령을 받았다. 또 VJ로 알려진 재키 림씨와 개그맨 김용씨도 사회봉사명령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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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승연 | ||
마약관리법을 위반해 80시간의 봉사명령을 받은 강산에씨는 2000년 9월, 정신지체인들을 대상으로 작은 음악회를 가졌다. 음악회 제목은 ‘넌 할 수 있어’. 음악회를 지켜본 한 관계자는 “강산에씨는 무대 장치도 없는 강당에서 기타 하나만을 가지고 열창했다”며 “노래를 듣는 이나 부르는 이 모두가 감동을 느낀 자리”라고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사회봉사명령을 불성실하게 이행하면 집행유예가 해제되고 곧바로 감옥에 가야 한다. 그러나 ‘봉사활동’으로 ‘처벌’을 대신하기 때문인지 ‘봉사자’들이 자신의 처지를 망각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봉사명령을 받았던 일부 연예인은 개인 사정과 스케줄을 이유로 불성실한 모습을 보여 빈축을 사기도 했다.
3년 전 80시간의 봉사명령을 받은 가수 A씨는 말도 없이 봉사 장소에 나타나지 않기 일쑤여서 ‘불량자’ 경고를 세 번이나 받았다. A씨는 또 보호관찰소측에 전화번호 대신 팩스번호를 적어 놓아 보호관찰소 직원의 애를 먹이기도 했다. 급기야 보호관찰소측이 명령 불이행을 이유로 A씨를 강제 출석시키기에 이르렀다.
그때서야 “성실하게 이행하겠다”고 굳게 약속했던 A씨. 하지만 그 뒤로도 보호관찰소측의 보고서에는 ‘연락할 수 없음’이라는 문구가 사흘에 한 번꼴로 올랐다. 결국 A씨는 하루 8시간씩 열흘이면 끝날 분량의 80시간 봉사명령을 넉 달이나 걸려 마쳤다.
또 다른 연예인 B씨는 조금 더 심한 경우. B씨 역시 몇 번의 ‘전화 불통’ 이후 보호관찰소의 출석 요구를 받았다. 그러나 B씨는 출석일이 돼도 나타나지 않았고 그에게 전화를 건 보호관찰소 직원은 “깜빡 잊고 있었다”는 기막힌 변명을 들어야 했다.
하지만 봉사명령을 받은 연예인들 대부분은 성실하게 봉사활동을 편 것으로 나타난다. 서울보호관찰소의 이맹숙 계장은 “얼굴이 알려진 연예인들은 주위 시선을 의식해서인지 다른 일반인들보다 더 열심히 봉사 활동을 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98년 11월 장애아동 교육보호시설과 노인요양원에서 80시간의 봉사명령을 이행한 탤런트 이승연씨. 이씨의 활동 모습을 지켜본 서울보호관찰소 최승욱 주임은 “연예인이라는 특권 의식 없이 정말 열심히 일했던 사람”으로 그를 기억했다. 이승연씨는 봉사 활동이 익숙해지자 동행 관찰을 하는 최 주임에게 “왜 저는 일하는데 최 주임님은 노세요? 와서 함께 일해요”라고 농담을 던지는 등 ‘즐겁게’ 활동을 마쳤다고.
이씨는 봉사기간이 끝난 뒤에도 연말에 TV 수상기와 떡 등을 사들고 자신이 봉사활동을 한 단체를 다시 찾아와 주위 사람들의 칭찬을 샀다. 이씨는 봉사 활동을 끝내고 적은 소감문에서 서울시립노인요양소에서의 활동에 대해 “나는 그곳에서 작은 일손과 따뜻한 말 한마디를 드렸고 그분들은 나에게 인생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여러 가지의 느낌과 감정들을 깊은 선물로 주었다”고 적었다. 이씨는 또 봉사활동 경험을 “언제나 잊지 않으려 노력할 것이고 작은 일손이나마 그들과 함께 하고 싶다”고 밝혔다. 결국 연말의 위문 방문으로 소감문에 적은 자신의 약속을 지켰던 셈이다.
봉사 활동을 너무 열심히 한 나머지 사회봉사명령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한 사람도 있었다. 고아원에서 봉사 활동을 한 VJ 재키 림씨는 소감문에서 “청소를 계속할 만한 장소도 없고 매일 청소를 하기 때문에 별로 할 일도 없었으며 진짜로 (제대로) 청소를 하는 시간은 많지 않았다”며 ‘불평 아닌 불평’을 털어놓았다. 그는 또 “봉사활동을 하는 동안 반성할 기회도 되고 해서 나는 좋았지만 한 가족의 가장이 되는 사람은 생활에 지장을 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지적했다. 재키 림씨는 “하루 몇 시간씩 나눠서 한다든지 스케줄을 짜서 할 수 있다면 시간을 더욱 능률적으로 쓰지 않을까 싶다”라며 나름의 대안을 덧붙이기도 했다.
연예인 이외에 사회봉사명령을 받은 유명인으로는 만화가 박광수씨, 전 대우중공업 사장 C씨와 S씨가 있었다. 예비군 훈련에 상습 불참해서 사회봉사명령을 받은 박씨는 “처음에는 약간 억울한 마음도 들었지만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좋은 기회라는 생각도 들었다”고 봉사 활동 후기를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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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지만씨, 강산에 | ||
장애인시설에서 봉사 활동을 하던 어느 날, 봉사 시간보다 일찍 도착한 C씨는 자신이 가져간 책을 읽기 위해 주방 옆 도서실에 들어갔다. 그러나 도서실 직원은 냉담한 목소리로 ‘당신은 이곳에서 책을 읽을 수 없으니 부엌에 가서 읽으라’고 말했다는 것. C씨는 “한마디 말도 못하고 쫓겨 나오면서 ‘사회는 나를 죄인으로 생각하고 있으니 묵묵이 시키는 일만 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게 됐다”며 “이 사건은 봉사 기간 동안 나를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태도를 갖게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C씨가 수동적인 태도로만 봉사 활동을 한 것은 아니었다. 장애인근로복지관에서 조립생산을 보조할 때의 일. 33명의 장애인들에게 일감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게 된 C씨는 이들에게 장기적으로 일감을 줄 수 있는 업체 두 곳을 찾아 이 단체와 연결을 시켜줬다. 중공업 회사 사장이 조립생산 보조일을 맡았으니 가수의 콘서트 봉사처럼 C씨 역시 ‘전공 과목 봉사’를 했던 셈.
하지만 같은 이유로 형을 받아 4백 시간 봉사명령을 받았던 사장 S씨는 ‘불성실한 봉사 활동’을 한 것으로 기억되고 있다. 당시 S씨는 지체장애인시설에서 봉사 활동을 하고 있다고 보호관찰소측에 알렸다. 하지만 보호관찰소 직원이 예고없이 현장을 방문해 보니 S씨는 자리에 없었다.
장애인시설의 담당자 K부장 역시 S씨가 없어진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반면 봉사 활동 출석부 격인 ‘집행 명령서’에는 본인 서명이 된 상태였다. 보호관찰소 직원이 S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떻게 된 일입니까.” “아침 9시에 나가서 11시30분에 들어왔어요. 개인적으로 급한 일이 있었거든요.” “누구에게 얘길 했나요. K부장도 모르던데요.” “○○○에게 얘기했어요. 얘기 안 하던가요?”
보호관찰소 직원은 어이가 없었다. ‘○○○’는 장애인시설에서 보호를 받고 있는 정신박약아 원생. “일단 보호관찰소로 나오셔서 불참 사유서를 쓰시지요.” “제가 뭘 잘못했는데 나가야 합니까.” 이 같은 사실은 서울보호관찰소 관련 서류에 요약•기록된 내용. 하지만 당사자인 S씨는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그런 적 없다. 뭔가 기록이 잘못된 것”이라고 말했다.
사람마다 천태만상인 사회봉사 모습. 이들의 봉사 활동의 태도를 따지기 이전에 한번쯤 생각해보아야 할 문제가 있다. 다름 아니라 정관계 및 언론계 인사들은 상대적으로 법원의 사회봉사명령을 실행하는 경우가 적다는 점이다.
서울지방법원 신명중 판사(형사4단독)는 “재판부가 사회적인 지명도가 있는 유명인사에게 사회봉사명령을 내리는 것은 ‘망신을 줄 필요가 있다’는 판단이 들기 때문”이라며 “하지만 비슷한 이유에서 유명 인사일수록 사회봉사명령을 피하려는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앞서 예로 든 장재국 전 한국일보 회장의 항소 결과를 미리 가늠해 볼 수 있는 전례가 있다.
정태수 한보그룹 전 회장의 둘째 아들인 정원근 상아제약 대표이사의 경우. 정 대표이사는 이른바 장 존 사건의 시발점이 된 ‘로라 최 리스트’에 이름이 올라 97년 10월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 벌금 5백만원에 사회봉사 1백20시간을 명령 받았다. 하지만 2년여에 걸친 항소 끝에 99년 11월 ‘사회봉사명령’ 딱지를 뗐다.
올해의 경우 장재국 전 회장과 같은 언론계 인사들의 사회봉사명령이 많았던 것도 한 특징. 파크뷰 특혜분양에 연루된 시사평론가 김종찬씨, 홍보비 비리에 연루된 이창세 <스포츠투데이> 연예부장과 이기종 <스포츠서울> 편집국장 등도 모두 사회봉사명령을 받았지만 항소를 한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