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씨와 돌아가며 ‘잠자리’ ‘가족경영’ 비아냥
여기에는 속사정이 있었다. 인근에 A의 사촌이 운영하는 바가 있었는데 그곳은 늘 문전성시였다. A 역시 가게에 나오면 대부분의 시간을 자신의 바가 아닌 사촌의 바에 머물렀다. 알고 보니 사촌의 바 역시 실질적인 소유주는 A였다. 표면적으론 강남에서 장사가 잘 안되는 작은 바를 운영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지만 제2의 가게를 열어놓고 그곳 운영을 사촌에게 맡겨 놓은 것이다. 따라서 A의 바를 찾아온 손님들 역시 대부분은 그곳 아가씨들의 설명을 듣고 사촌의 업소로 바로 옮긴다. 사실상 A가 운영하는 바는 사촌이 운영하는 바의 안내창구 같은 곳에 불과했다. 여기서 술을 마시는 손님은 A가 운영하는 곳인지 모르고 우연히 들른 워킹손님들 정도였다.
이처럼 대외 이미지를 위해 위장 바를 만든 A는 사촌의 바에서도 늘 신사였다. 대외적인 업소 사장인 A의 사촌이 다소 악랄할 정도로 가게를 운영하는 가운데 실질적인 사장인 A는 늘 매너 좋은 신사에 가까웠다. 그러다 보니 거기서 일하는 접대 여성들에게도 A는 늘 최고의 인기를 얻었다. 그런데 당시 그 바에서 일했다는 한 접대 여성의 설명은 조금 다르다. “우리에겐 늘 친절했지만 우리를 못살게 굴던 사장(A의 사촌) 뒤에는 늘 A가 있었다”는 이 접대 여성은 “우리한테 사장이 욕까지 섞어가며 못되게 굴었던 것도 대부분 A가 뒤에서 시킨 것이라고 우리끼리 수군대곤 했다”고 말한다.
과거 텍가라오케가 한창 인기를 누리던 시절에 바지사장으로 활동했던 방송인 B는 독특한 영업방식으로 화제가 됐었다. 유흥업계에서 그는 말 그대로 ‘가족경영’의 선구자였다. 자신과 함께 일하는 접대 여성들에게 잘해주기로 유명했던 B는 늘 그 선을 넘었다. 이들의 관계가 사장과 고용인의 경지를 넘어 몸을 섞은 끈끈한 관계가 되는 일을 자주 만든 것. 워낙 그가 접대 여성들과 난잡한 관계를 유지했기에 당시 유흥업계 관계자들 사이에선 “B랑 일하는 아가씨들은 전부 B하고 잠자리를 같이 한 이들이니 어찌 보면 거기는 전부 한 가족 같은 관계일 것”이라며 ‘가족경영’이라는 우스갯소리가 떠돌았다.
이처럼 엉뚱한 데 신경이 집중돼 있던 탓인지 B의 영업실적은 늘 좋지 않았다. 바지사장으로 고용된 연예인은 사실상 얼굴마담이다. 하나의 텍가라오케에 여러 명의 바지사장이 있는데 각각의 바지사장을 보고 찾아온 손님들의 매상 가운데 일부를 바지사장이 가져가는 방식이다. 업소의 실질적인 사장 입장에선 바지사장을 통해 더 많은 매출을 올려야 그들의 몫을 제외하고도 수익을 올릴 수 있다. B는 화려한 연예인 인맥으로 인해 단골손님 층을 갖고 있는 연예인 바지사장이라는 강점이 있었지만 늘 접대여성들과의 복잡한 관계 등으로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다 보니 한 업소에 오래 있지 못하고 여기저기 전전하며 바지사장으로 활동했다. 그는 텍가라오케 열풍이 잦아들면서 차츰 유흥업계에서 퇴출됐다.
접대 여성들에게 친한 언니로 여겨지는 연예인 사장도 있다. 바로 방송인 C다. 이제는 방송 활동을 중단한 지 너무 오래돼 그가 연예인이라는 사실조차 모르는 이도 많지만 과거에는 나름 잘나가던 방송인이었다. C는 방송 활동을 중단하고 룸살롱 새끼마담으로 변신해 승승장구했다.
룸살롱 새끼마담은 텍가라오케 바지사장과 비슷한 개념인데 조금 더 사업적인 요소가 강하다. 대형 룸살롱의 경우 실제 사장(마담)이 있고 몇 명의 새끼마담이 실질적인 영업을 담당한다. 예를 들어 룸이 20개인 룸살롱이 있다면 이 가운데 3~4개는 마담이 직접 관리하는 직영이고 나머지는 새끼마담들이 2~3개에서 4~5개씩 관리하는 방식이다. 하나의 가게처럼 보이지만 사실 20개의 룸을 가진 룸살롱이 룸별로 각기 다른 업주(새끼마담)들이 영업을 하고 있는 방식인 셈.
C는 강남에서도 손꼽히는 대형 룸살롱의 잘나가는 새끼마담이었다. C는 접대 여성들에게 늘 친절했다. 아니 친언니라도 되는 듯 다정하게 대했다. 그의 밑에서 일하는 접대여성들도 속내까지 다 털어 놓으며 C와 각별하게 지냈다. 그런데 여기에 꼼수가 있었다. 과거 C와 같은 룸살롱에서 일했던 또 다른 새끼마담은 “고민 있는 어려운 애들이 C를 찾아가 상담하곤 했는데 그럴 때마다 C는 어려운 애들을 품고 보살펴 주는 좋은 마담이었다”면서 “C는 어려운 애들을 상담하며 늘 ‘참고 돈을 열심히 버는 게 최선’이라고 설득했는데 그 얘긴 곧 2차를 많이 나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애들이 2차를 빼지 않는 것은 기본, 2차에 적극적이었다. 그러니 C는 늘 큰돈을 벌었다”고 얘기했다. 결국 ‘친절한 C’는 돈이 되는 2차 장사를 위한 접대 여성 회유책에 불과했다는 얘기다. 사실이라면 정말 아찔한 경영기법이 아닐 수 없다.
조재진 프래린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