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은 지난 8월19일 축구협회 행사에 참석한 정 의원. 임준선 기자 | ||
주로 무소속으로 활동했기 때문에 정치적 인지도는 그리 높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그의 정치적 위상은 예전과 비교해 하늘과 땅 차이로 변했다. 왜일까. 해답은 축구공에서 튀어나온다. 한국 축구의 월드컵 4강 신화를 쓰는 데 그의 이름을 빼놓을 수 없다. 두터운 인맥과 막강한 재정을 한국 축구에 수혈했던 것. 월드컵을 통해 쌓은 대중적 지지도는 곧 그를 ‘축구대통령’으로까지 올려놓았다. 그는 지금 월드컵 신화를 ‘어시스트’ 삼아 한국정치계의 새로운 ‘센터포워드’로 나설 채비를 하고 있다.
그의 이러한 야심찬 도전에는 두 개의 지렛대가 작용하고 있다. 하나는 작고한 부친 정주영 전 회장에게서 물려받은 저돌적인 추진력과 공격적인 경영 스타일이다. 또 다른 하나는 역시 부친에게서 물려받은 막강한 재력 이다. <일요신문>은 정 의원을 ‘띄워줄’ 막강한 재산에 대한 검증을 통해 그의 대선가도를 미리 점검해보고자 한다. 또한 그의 ‘화수분’이 어떻게 축구 발전에 쓰이게 됐는지도 검증해본다. 정몽준 의원은 ‘재력가’라는 수식어가 항상 붙어 다닐 만큼 국회의원 가운데 ‘넘버 원’의 재력을 지니고 있다.
그의 ‘공개 재산’ 규모는 1천7백20억원대. 상당액을 주식형태로 보유하고 있고 예금과 현금도 20억원대에 이른다. 정 의원의 엄청난 재력에 대해 한발 접근해보기 위해선 먼저 그가 지난 9년 동안 국회의원으로서 공개해 온 재산목록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정 의원은 지난 93년 9월 첫 재산공개 이래 올해까지 해마다 변동사항을 신고하고 있다. 그의 재산은 크게 대지(건물)와 주식, 그리고 예금(현금)으로 나눌 수 있다. 이 가운데 주식은 그의 재산 대부분을 차지하는 주요 항목이다.
이는 한 해의 주식시장 변화에 따라 그의 재산도 증가와 감소를 반복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지난 93년 그가 처음으로 신고한 재산은 7백99억4천만원이었다. 종로구 구기동의 대지와 청운동 단독주택 등이 정 의원 소유로 돼 있었다. 88년식 쏘나타 승용차를 1천1백만원에 사서 소유하고 있다고 신고한 점이 특이했다. 재산의 대부분을 차지한 소유 주식은 모두 현대계열사의 것이었는데 그가 대주주로 있는 현대중공업 주식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당시 정 의원 명의의 예금은 1억원 정도였다.
정 의원은 첫해 신고 때 부친 정주영씨의 재산을 고지거부해 재산신고 취지를 두고 비난여론이 일기도 했다. 이듬해인 94년 정 의원은 재산이 30억원 감소한 것으로 신고했다. 당시 총 재산은 7백69억원. 이는 주로 본인 지분의 대지를 매각하고 현대 계열사가 현대중공업에 합병되면서 보유주식이 없어진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반면 예금액은 1년 전보다 8억9천여만원 늘어나 모두 10억여원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음해인 95년에는 16억원이 늘어난 7백85억원을 신고했다.
이는 주식 배당금과 예금이 증가했기 때문인데 전체 의원 중 증가 2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당시 1위는 53억원이 늘었다고 신고했던 민자당 김진재 의원이었다. 또한 정 의원은 이상범 김용진 작품인 동양화 2점을 6천만원에 구입했다고 신고해 눈길을 끌었다. 당시 예금액은 25억원에 육박했다. 96년에도 정 의원의 재산 증가는 계속됐다. 정 의원은 이 해에 48억원의 재산이 늘어난 것으로 신고해 처음으로 전체 재산규모가 8백억원대를 넘어섰다.
당시 총재산은 8백34억원. 보유중이던 현대상선 주식이 상장돼 가액이 32억6천여만원 오른 것이 재산증가의 가장 큰 배경이었다. 그리고 현대해상화재와 문화일보의 유상증자로 보유주식이 늘어 12억5천여만원이 증가했다. 예금은 봉급저축으로 3천8백만원이 증가했으나 주택 신축비용 등으로 14억원이 감소됐다고 신고. 이듬해인 97년 정 의원은 1년 전과 마찬가지로 48억원의 재산이 늘어난 것으로 신고했다.
전체 재산규모는 8백83억원. 보유중이던 현대전자 등의 비상장 주식이 상장되면서 재산이 증가한 것이다. 예금액도 배당금 입금으로 크게 늘어나 40억원에 이르렀다. 반면 예금 감소는 생활비 등의 명목으로 인출된 4천여만원에 불과했다. 95년 이래 3년 연속 증가세에 있던 정 의원 재산은 98년에 11억이 감소하며 뒷걸음질쳤다. 이때는 주식매입과 의정활동비로 19억원을 쓴 것으로 신고했다. 예금 보유액은 19억원. 이듬해인 99년 들어 정 의원의 재산은 큰 폭으로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IMF 한파로 인한 주가하락 때문에 주식매각과 청산으로 1백15억의 손해를 입었던 것. 당시 전체 재산 규모도 다시 8백억원으로 내려앉았다. 하지만 예금액은 주식매각 대금과 배당금 입금 때문에 38억원으로 크게 늘었다. 2000년은 정 의원의 재산이 비약적으로 늘어난 해였다. 자신이 대주주로 있는 현대중공업이 거래소에 상장되면서 평가가액이 무려 1천9백82억원이나 늘어났기 때문이다. 전체 재산도 2천7백83억원에 이르렀다.
2위 한나라당 김진재 의원(6백43억원)을 무려 4배 이상 차로 앞서며 국회의원 가운데 재산 1위를 차지했다. 정 의원은 당시 크게 늘어난 재산에 대한 여론 때문에 “보유주식이 크게 변동했거나 통상적인 주가상승으로 인한 재산증가가 아니라 상장주식을 액면가 기준이 아닌 우리사주가로 계산하면서 발생한 차익”이라고 해명하기도 했다.
이 해에 정 의원은 배당금 수입으로 11억원을 예금하기도 했지만 주식매입, 수익증권, 기부금과 출연금 등으로 지출한 금액도 30억원에 이르렀다.
▲ 울산 현대중공업 전경 | ||
다음해인 2001년에는 또다시 큰 폭으로 정 의원의 재산이 감소했다. 널뛰기 증권시장이 다시 침체에 빠지면서 현대중공업 주가가 반토막이 났던 것. 무려 1천1백78억원의 평가손을 입어 전체적으로 재산이 1천6백억원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총 재산 규모도 1천1백74억원으로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의원 1위’를 차지했다.
정 의원은 올해 2월 지난해보다 54억원의 재산이 늘어난 것으로 신고했다. 전체 재산규모는 1천7백20억. 지난해 부친 정주영 회장이 작고한 뒤 상속받은 토지 주식 현금 때문에 재산이 증가한 것이다. 예금액은 1억9천여만원에 불과했지만 현금 18억9천여만원을 상속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정 의원은 지난 93년 처음 재산을 신고한 이래 올해까지 9년 동안 모두 9백21억원이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하지만 이는 주로 주식평가액이 증감하면서 나타난 ‘장부상’ 숫자에 불과하기 때문에 손에 쥘 수 있는 유동성 자금은 그리 많지 않다는 점이 특징이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예금액의 입출 내역을 살펴보는 것이 그의 실질적인 재산 변동 사항을 보다 쉽게 파악하는 방법이 될 수도 있다. 정 의원의 예금액은 97년 한때 40억원에 이르기도 했지만 주로 10억~20억원대를 유지하다 올해에는 2억원대로 뚝 떨어졌다. 정 의원의 예금 입겷瘦附六?의미가 있는 이유는 그가 한국 축구계 발전을 위해 지금까지 내놓은 지원금이 거의 현금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요신문>이 확인한 결과 정 의원이 지난 9년간의 재산공개 때 축구 관련 출연금을 지급한 것으로 기록한 것은 지난 2000년 단 한 해뿐이었다. 정 의원은 지난 93년 축구협회 회장직에 오른 뒤 9년째 ‘사령탑’을 맡아오고 있다. 그는 취임 뒤 지금까지 축구협회 재정의 약 25% 정도를 책임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000년 대한체육회 국정감사 때 밝혀진 것을 보면 정 의원은 24억원의 찬조금을 출연해 기여도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그리고 97년에는 31억8천만원, 98년 99년에도 24억4천만원씩을 공식적으로 축구협회에 출연했다. 그가 현재까지 축구협회 공식 예산으로 지원한 출연금 액수만 1백87억원에 이른다고 한다. 그리고 비공식적인 출연금까지 합하면 대략 한해 50억원 이상을 지원금으로 내놓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전부 합하면 9년 동안 정 의원이 축구계를 위해 쓴 돈만 약 5백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하지만 출연금 액수에 이견도 있다.
축구협회 한 관계자는 “회장님이 출연한 지원금이 그 정도까지 될지 알 수 없다. 물론 회장님이 기부금을 많이 내고는 있지만 이는 협회 수익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지난해 같은 경우는 협회의 수익사업 성과가 좋아 협회에 공식적으로 낸 출연금이 전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올해도 FIFA에서 배당금이 나오기 때문에 회장님이 ‘기여’할 부분은 작다고 본다”고 전했다. 그 규모에 대한 이견은 있을지언정 정 의원이 상당액의 출연금을 내왔다는 사실 자체는 부정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그런데 정 의원의 재산공개 항목에선 이 출연금의 이름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정 의원은 지난 2000년 재산변동사항 신고 때 ‘주식매입, 수익증권, 기부금, 출연금’ 등을 합해 약 29억원을 지출한 것으로 기록했다. 이 외에는 93년 이래 단 한 번도 자신이 출연한 축구협회 지원금을 재산변동사항에 신고하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이에 대한 해답은 정 의원의 출연금 재원이 어디였느냐에 달려 있다.
정 의원은 지금까지 협회 출연금을 자신의 사재에서 낸 것이 아니라 현대중공업 회계에서 처리한 것으로 밝혀졌다. 축구협회 한 관계자는 “회장님이 협회에 출연한 돈은 사재가 아니다. 협회는 현대중공업 재무팀에 가서 돈을 받아오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리고 이 돈에 대해 찬조금 명목으로 영수증 처리를 해주고 있다”고 밝혔다. 현대중공업측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축구협회가 지정기부금단체로 지정돼 있어 기업체로부터 기부금을 받는 것으로 알고 있다.
현대중공업도 이런 기부금 명목으로 축구협회 예산을 지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재산 변동 사항만을 놓고 본다면 정 의원은 지난 2000년에 단 한번 축구계를 위해 ‘사재’를 털었을 뿐 그 외에는 현대중공업 금고에서 발전기금이 나왔다는 이야기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