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박도 갸웃한 그때 인사 알고보니 그들 ‘작품’
박근혜 정부 출범 직후인 지난 3월 2일 서울 시내 한 교회에선 현경대 전 의원 장남의 결혼식이 열렸다. 여기엔 허태열 전 비서실장을 비롯한 청와대 고위 인사들과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 등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현 전 의원에게 눈도장을 찍기 위한 하객들이 몰려 예식장은 북새통을 이뤘다.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정치권 인사들의 화환도 길게 늘어서 있었다. 당시 결혼식을 찾았던 한 새누리당 초선 의원은 “현 전 의원과 악수하기 위해 한참을 기다렸다. 웬만하면 새치기를 하겠지만 워낙에 유력인사들이 많아 그러질 못했다”고 털어놨다.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 발탁과 관련, 박근혜 정부를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권력으로 지목받고 있는 ‘7인회’가 재조명되고 있다. 사진제공=청와대
7인회 멤버는 김용환 새누리당 상임고문, 최병렬 전 한나라당 대표, 안병훈 기파랑 대표, 김용갑 전 의원, 김기춘 신임 비서실장, 현경대 전 의원, 강창희 국회의장이다. 이들 대부분은 박정희 전 대통령과도 남다른 관계가 있었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7인회 좌장 김용환 고문은 박 대통령이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하고 있을 때 청와대 경제수석과 재무부 장관을 지냈다. 기자 출신인 최병렬 전 대표와 안병훈 대표는 청와대를 출입하며 박 전 대통령과 인연을 맺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강창희 의장은 박 전 대통령의 군 추종 세력이던 하나회 소속이었고, ‘정수장학회 1기’ 김기춘 실장은 검사 시절이던 1972년 비상계엄이 선포된 직후 유신헌법 초안을 완성한 인물이다.
7인회는 지난해 5월 박지원 민주당 의원이 그 실체를 폭로하면서 세간에 알려졌다. 당시 박 의원은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에게 7인회가 있다고 하는데 그 면면을 보면 수구꼴통이어서 나라를 맡길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새누리당 비박 대선주자였던 정몽준 의원 역시 “이명박 대통령 후보 시절 6인회가 있었는데 그 중 3명이 문제가 됐다”면서 “원로들의 자문을 받는 자체는 좋다고 생각하지만 만약 그 분들이 권력을 향유하는 구조가 되면 개개인의 도덕성과 관계없이 문제가 될 소지가 있다”며 7인회를 겨냥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당시 비대위원장이던 박 대통령은 “당의 원로 분들이 자발적으로 친목 모임을 갖고 가끔 만나 서로 점심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분들이 초청을 해 한두 번 오찬에 가 뵌 적이 있는데 소위 멘토 그룹 운운하는 것은 잘못 알려진 내용”이라고 반박했다. 7인회로 거론되는 당사자들도 하나같이 강하게 손사래를 쳤다. 가끔 만나 식사하고 환담하는 수준일 뿐 박 대통령에게 어떠한 영향력도 행사하고 있진 않다는 것이었다. 김용환 고문은 한 인터뷰에서 “박근혜 위원장이 잘 되길 바라는 순수한 뜻에서 생긴 사적 모임에 불과하다. 박 위원장이 집권하더라도 주변에서 권력을 휘두를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말한 바 있다.
정치권에선 이러한 박 대통령 측 해명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새누리당 내에서조차 7인회가 베일에 가려져 있던 박 대통령 비선라인의 핵심일 것이란 소문이 확산됐다. ‘박근혜와 일곱 난쟁이’라는 말이 생긴 것도 이 무렵이다. 그러나 이 문제를 아무도 공식적으로 제기하진 못했다. 친박 내에서 7인회에 대한 언급이 사실상 금기시됐기 때문이다. 친박 핵심 의원이 “박 대통령과 말이 안 통한다. 도대체 어디서 무슨 말을 듣고 오는지 모르겠다. 어디서 조언을 해주는 그룹이 분명히 있을 것”이라며 7인회를 염두에 둔 발언을 했다가 비주류로 밀려났다는 후문도 있다.
여권 인사들 중 몇몇은 7인회를 두고 박 대통령의 단순한 멘토가 아닌 ‘정치 스승’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박 대통령이 1998년 정계 입문 후 거물급 정치인으로 성장하는 과정에 7인회가 직·간접적인 도움을 줬기 때문이라고 한다. 김용환 고문과 가깝게 지내는 한 새누리당 의원은 “(김 고문이) 사석에서 가끔 박 대통령을 딸처럼 여기는 듯한 말을 한 적이 있다. 박 대통령이 초선으로 시작해 온갖 역경을 딛고 대선 후보로까지 성장한 것을 두고 흐뭇해했다”고 전했다.
최병렬 전 대표의 한 측근은 “박 대통령이 지금에 이르기까진 최 전 대표의 공이 크다”는 주장을 폈다. 내용인즉슨 이렇다. 박 대통령이 정치인으로서 스포트라이트를 받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04년 총선 때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대표를 맡으면서부터다. 당시 박 대통령은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역풍’을 맞고 있던 당의 구원투수로 등판해 예상 밖 선전을 하며 정치인으로서의 입지를 다졌다. 그런데 아이로니컬하게도 노 전 대통령 탄핵을 주도했던 인물이 바로 최 전 대표다. 그 측근은 “물론 농담으로 하는 말이지만 최 전 대표가 아니었다면 오늘날의 박 대통령도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왼쪽 위에서 부터 시계방향으로 김용환 상임고문, 최병렬 전 대표, 안병훈 기파랑 대표, 김용갑 전 의원, 강창희 국회의장, 현경대 전 의원, 김기춘 비서실장.
이러한 7인회의 위상을 보여주는 사례 중 하나가 바로 박 대통령을 대할 때의 자세다. 서청원·홍사덕 전 의원 등 친박에서도 중진으로 꼽히는 인사들조차 박 대통령과 마주할 때는 바싹 얼어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한다. 친박의 한 고참급 전직 의원은 아직도 박 대통령과 얘기할 때는 눈도 못 마주친다고 털어놓은 바 있다. 그러나 7인회 멤버들은 박 대통령 앞에서도 그다지 긴장을 하지 않는다는 게 친박 관계자들의 공통된 전언이다. “박 대통령과 얘기할 때 걸려온 전화를 받을 수 있는 사람은 딱 7명”이라는 말은 7인회를 빗댄 것이다.
박 대통령이 7인회를 얼마나 신뢰하는지는 지난 2007년 대선 경선 캠프의 면면을 봐도 알 수 있다. 김용환·강창희·최병렬(고문), 김기춘(선대위 부위원장), 안병훈(선대위원장) 등 7인회 멤버들은 박근혜 캠프의 주요 보직을 맡으며 선거를 주도했다. 현경대 전 의원은 외곽조직인 ‘한강포럼’을 이끌며 박 대통령의 조직 강화를 위해 앞장섰다.
당시 캠프에 몸담았던 한 친박 의원은 “그때만 해도 7인회라는 말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니 7인회가 캠프를 좌지우지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에 가장 열심이었던 게 바로 7인회”라고 떠올렸다. 7인회의 몇몇 인사는 박 대통령의 경선 패배가 확정된 후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고 한다.
경선 패배 후 7인회는 정치 전면에서 자취를 감췄다. 대신 막후에서 박 대통령 멘토 역할을 했다. 7인회는 경선이 끝난 후 박 대통령에게 이명박 정부 하에서 ‘여당 내 야당’ 역할을 하며 존재감을 부각시킬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박 대통령이 세종시 문제에 있어서 측근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이 대통령과 끝까지 대립각을 세웠던 것도 7인회 작품이라고 한다.
김용환 고문은 2010년 말부터 박 대통령에게 경제민주화를 스터디해야 한다고 충고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박 대통령은 지난 대선에서 경제민주화를 핵심 대선 공약으로 내걸었다. 7인회는 지난 대선에서 별다른 보직을 맡진 않았지만 물밑에서 영향력을 행사했는데, 일례로 현경대 전 의원은 대선 과정에서 ‘정수장학회 강탈 논란’이 불거졌을 때 가장 적극적으로 방어 활동에 나섰던 친박 인사로 꼽힌다.
현 정부 ‘성골’이라고 할 수 있는 7인회의 진가는 대선 승리 후 주요 인사에서 발휘됐다. ‘밀봉 인사’로 일컬어지는 박 대통령 인사에 7인회가 관여한 흔적이 곳곳에서 포착됐던 것이다. 김기춘 실장의 사위인 안상훈 서울대 교수가 인수위원으로 활동한 것을 비롯해 7인회와 친분이 있는 인사들이 대거 박근혜 정부에서 기용된 것으로 전해진다.
친박 의원들조차 발탁 배경에 고개를 갸웃거렸던 황교안 법무부 장관, 김용준 인사위원장, 정홍원 국무총리 등은 모두 7인회가 천거했다는 게 정치권에서는 정설로 통한다. 남재준 국정원장 역시 7인회에서 밀었다는 얘기가 끊이지 않았다. 7인회 내 소모임 ‘4인회’가 인사 리스트를 뽑아 청와대에 전달했다는 소문도 돌았다. 김용환 고문은 KB금융지주를 비롯해 금융권 인사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받기도 했다.
야당은 김기춘 실장의 발탁에 대해 ‘올드보이들의 귀환’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박용진 민주당 대변인은 “7인회 멤버로 인의 장막을 치겠다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동안 박 대통령은 ‘유신’과 결부되는 것을 될 수 있으면 피해왔다. 지난해 대선에서 7인회가 비선을 통해 활동했던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 대통령이 김 실장을 임명한 것은 친정체제를 강화해 후반기에 강한 국정 드라이브를 걸기 위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청와대 정무 관계자는 “김 실장 기용은 여권 내에서도 거부감이 있는 만큼 박 대통령에게도 부담이 될 수 있는 인사”라면서도 “그러나 국정원 사태 등 현 상황이 녹록지 않다는 것을 감안해 달라. 박 대통령으로서는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최선책”이라고 밝혔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