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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하디 흔한 재산분쟁 정도로 생각할 사람이 대부분이겠지만 송사의 내용은 특이하게도 ‘이혼무효’소송이었다.
게다가 이혼의 당사자라고 할 수 있는 아버지는 이미 30년 전에 사망한 상태였기 때문에 ‘아버지와 어머니의 이혼을 무효로 해달라’는 아들의 요구는 더욱 관심을 모았다.
좀처럼 보기 드문 이 같은 소송의 배경에는 행상으로 세 아들을 눈물겹게 뒷바라지해 온 어머니와 ‘백수’ 아버지의 철없는 ‘바람기’가 뒤얽힌 기막힌 사연이 숨겨져 있었다.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사는 정호섭씨(가명·45)는 아버지가 사망한 지난 75년, 뜻밖의 사실을 발견하곤 황당함을 감추지 못했다.
아버지가 사망함에 따라 사망신고 및 호주상속 신고를 하기 위해 찾아간 관할 구청에서 어머니 김말선씨(가명·68)가 호적에서 제적된 사실을 발견했기 때문. 제적 이유는 다름 아닌 아버지와 어머니의 ‘협의이혼’ 때문이었다.
아버지가 사망한 당일까지도 모든 가족들과 함께 집에서 임종을 했던 호섭씨로서는 이 같은 사실이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살아오면서 이혼은커녕 각방 생활조차 한 번도 해본 적 없던 부모들이었다.
당사자인 어머니 김씨 역시 자신도 몰래 남편으로부터 이혼을 당했다는 사실을 전해듣곤 배신감에 몸서리를 쳐야 했다.
도대체 어찌된 영문인지를 알아내기 위해 동사무소와 시청 등을 동분서주하던 호섭씨 삼형제. 이들은 마침내 그 원인을 찾아냈지만 이런 황당한 일이 아버지의 ‘철없는 바람기’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고 허탈한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호섭씨의 어머니 김씨가 아버지 정씨에게 시집온 것은 지난 1945년, 불과 열한 살 때의 일이었다. 당시 남편 정씨는 스무 살 열혈청년으로 군복무중이었다.
전쟁통에 10여 년이 넘어버린 남편의 복무 기간 두 아들을 낳은 김씨는 아이들을 ‘가슴에 안고 등에 업은 채’ 행상을 다니며 생계를 유지해갔다. 남편은 전역 후에도 별다른 일을 찾지 못했고, 이 와중에 막내아들까지 생겨 생계가 더욱 어려워졌지만 그녀는 묵묵히 집안을 이끌었다.
생활능력이 없었던 남편 정씨는 차츰 무위도식하며 하루하루를 보내게 됐고 설상가상으로 ‘한눈’까지 팔게 된다. 그 대상은 인근 주점의 한 과부댁. 주색에 빠져든 남편은 하루가 멀다하고 얄궂은 분내를 풍기며 술에 취해 집으로 들어왔다. 심지어 며칠씩 외박을 일삼기도 했다.
그런 남편을 의심하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김씨는 ‘저러다 말겠지’하면서 하루하루를 견디며 살아갔다. 그러던 중 사단이 발생했다.
1973년 초 어느날, 남편 정씨는 당시 한창 빠져지내던 과부댁을 찾아갔다. 평소 가까운 관계를 유지해왔던 터라 이참에 ‘동거하자’고 요구할 심산이었다.
하지만 과부댁의 반응은 예상 밖으로 완강했다. 일언지하에 거절. 조르고 또 졸랐건만 쉽게 넘어오지 않았던 것이다.
성이 난 정씨가 ‘이유가 뭐냐’며 심하게 따져묻자 과부댁은 그때서야 속내를 비쳤다. ‘부인과 이혼신고된 호적등본을 가져오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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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걸음에 집으로 돌아온 그는 아내의 인감도장을 몰래 빼내 들고 이혼서류를 만들어냈다. 위조된 이혼서류로 호적공무원의 최종 심사를 무사히 넘긴 정씨는 너무도 쉽게 호적에서 ‘조강지처’를 지워버렸다.
아내에게는 못내 미안한 생각도 있었지만 일단은 과부댁에게 잘보이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적당한 시기에 원상회복해 놓으면 될 것’이라고 편리하게 생각했던 것.
‘협의이혼’에 성공한 남편 정씨는 헐레벌떡 호적등본을 들고 과부댁에게 다시 찾아갔지만 그녀는 실소를 감추지 못했다. 오히려 ‘그 말을 진짜로 믿었느냐’며 코웃음을 치고 자취를 감췄다.
그제서야 뒤늦게 자신의 철없음을 한탄하며 개과천선해 가정으로 돌아온 남편 정씨. 하지만 너무 마음을 놓아서였까. 호적 원상회복 문제를 까맣게 잊고 지내던 그는 ‘과부댁 환심 사기’ 사건이 지난 지 채 2년도 되지 않아 유명을 달리하고 말았다.
이 같은 전말을 알게 된 아들 호섭씨의 가슴 속에서는 아버지에 대한 분노와 어머니 김씨에 대한 연민이 교차했다. 평생 삼형제를 혼자 힘으로 키워 낸 어머니와 한순간의 바람기 때문에 조강지처를 버린 아버지.
호섭씨는 당장 호적을 원상회복시키자고 주장했지만 그럴 때마다 매번 어머니 김씨는 손사래를 쳤다.
호적을 바로잡으려면 재판을 해야하는데 괜히 자식들에게 폐를 끼치기 싫다는 것이었다. 아들들이 어머니 김씨의 ‘명예회복’을 주장할 때마다 그녀는 “그냥 이렇게 살다가 죽겠다”며 고집을 피웠고 무심한 세월은 그렇게 흘렀다.
하지만 아들 호섭씨는 법적으로 ‘남남’인 어머니가 하루가 다르게 늙어가는 모습을 결코 더 이상 지켜볼 수만은 없었다. 호섭씨의 절절한 마음이 어머니를 움직인 게 지난 7월 중순, 마침내 어머니의 승낙을 얻어낸 아들은 서울가정법원에 이혼무효소송을 제기하기에 이른다.
결과는 당연히 ‘원고 승소’ 판결. 서울가정법원 가사8단독 김익현 판사는 지난 9일 “1973년 서대문구청에 신고된 피고 김씨(어머니)의 이혼은 무효임을 확인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원고와 피고가 모두 ‘같은 편’인 데다 소송의 사유도 재산문제 등 복잡한 양상이 아니라 순수한 ‘명예회복’ 차원인 만큼 양측의 입장을 충분히 반영한 것.
남편 호적에서 자신도 모르게 지워졌던 어머니 김씨의 이름 석자가 30년 만에 다시 빛을 보게 되는 순간이었다.
조민수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