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 안하는 CEO” 리더십 뭇매
최장집 교수가 ‘내일’의 이사장직을 사임한 것을 두고 안철수 의원과의 갈등설도 제기됐다. 연합뉴스
지난 5월 22일 정책네트워크 내일 창립 당시 가장 눈길을 끈 것은 최장집 교수의 영입이었다. 중도 노선을 표방하는 안철수 의원이 진보적 자유주의 노선을 걸어온 최 교수와 만나 정치적 반경을 넓혔다는 해석이 쏟아졌다. 또 정당주의자인 최 교수를 영입하면서 사실상 신당 창당을 통한 독자세력화가 시작됐다는 반응도 나왔다. 그때마다 안 의원 측은 “내일은 정책연구 기능에 한정된다”며 확대 해석 자제를 주문했다.
하지만 이번에 최 교수가 사임하면서 “연구소 이사장으로서 정치적 역할까지 맡게 됐다”고 밝혀 내일이 단순 정책연구소가 아닌 정치세력화를 위해 일선에서 뛰고 있음이 드러났다. 복수의 정치권 인사의 말에 따르면 최 교수 역시 처음 이사장직을 수락할 때부터 단순 정책연구를 넘어 안 의원의 정치세력화에 뜻을 보탤 생각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안 의원 쪽에서 최 교수의 이야기에 호응하지 않거나 실질적인 도움을 주지 않은 것이 사임하게 된 이유가 됐다는 것이다.
실제 최 이사장은 사임 의사를 밝힌 후 지인들에게 “내가 정치활동을 요구받았다고 그만뒀겠느냐. 그 정도는 각오하고 안 의원에게 간 것이다. 그런데 뭔가 해 보려고 해도 최소한 지원은 있어야 하는데 그런 것이 없었다”는 취지로 말했다고 한다. 이 자리에서 최 교수는 자신이 어린애도 아닌데 마치 삐쳐서 나간 것처럼 안 의원 측이 말하는 것에 대해 불쾌해하는 속내마저 내비쳤던 것으로 전해진다.
최 교수와 오랜 기간 연을 맺어온 한 국립대 교수는 “점잖은 양반이 불만이 있어 나왔다고 그 이유를 속 시원히 말하겠느냐. 오죽 답답하면 못 버티고 나왔겠느냐. 일단 모셔놓고 꿔다놓은 보릿자루마냥 대했다는 생각을 안 할 수 없다”며 “안 의원이 그간 진심으로 최 교수를 대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정치인으로서 관계를 설정하는 것에 미숙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전했다.
사실 정치권에서는 안 의원이 대인관계에 있어 소통이 부족하다는 평가가 적지 않았다. 중요한 일은 본인 스스로 결정하거나 극소수의 측근들과만 의견을 교류한다는 것이었다. 과거 CEO 스타일을 여전히 고수하고 있는 것으로 이미 여의도에는 299명의 다른 CEO가 있는 만큼 무소속인 안 의원으로서는 이들과 연대하지 않고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게 정치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지난 6월 9일 열린 ‘정책네트워크 내일’의 개소식에 참석한 안 의원과 최장집 이사장.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한편 안 의원이 민주당과의 연대에 여전히 반감을 갖고 있다는 것도 최 교수와의 결별 원인이 되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대선 때 안 캠프에 몸 담았던 한 인사는 “내일 연구원들이 최근 최 교수가 민주당 초선 의원 모임에 나가는 등 민주당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에 대해 반감을 가졌다고 들었다. 자신들이 민주당과 거리두기를 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사장만 엇갈린 행보를 보여 오해를 살 것이라는 생각을 한 것 같다”라고 전했다.
실제로도 안 의원은 민주당 장외투쟁이나 정치적 논쟁이 될 만한 언급은 자제하고 민생 투어에 집중하고 있다. 지난 14일 안 의원은 사이버외교사절단 반크 사무실을 방문해 환담을 나눴고 16일에는 지역구인 상계동에서 노인들에게 도시락을 배달하고 경로당을 방문하는 등 여야가 대치한 상황에서 다소 한가로워 보이는 듯한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민주당 지도부 사이에서도 안 의원을 언급하는 것에 일종의 함구령이 내려져 있다. 최근 장외투쟁에서 만난 대다수의 민주당 의원은 기자에게 최 이사장이나 안 의원에 대한 입장 밝히기를 꺼려하는 모습을 보였다. 얘기해 봐야 좋을 게 없다는 것이다. 한 중진 의원은 “우리 쪽에서 신의를 지키기 위해 말 안하는 거다. 지금 좋은 말은 안 나올 것 같다”고 전하기도 했다.
전계완 매일P&I 대표는 “이번 최 이사장의 사임으로 안 의원의 민낯이 드러났다. 국회 입성 이후 새 정치는커녕 자기정치마저 보여주지 못하면서 이미 동력을 상실했다는 공감이 확산되고 있다”며 “10월 재보선에서 안 의원이 뭔가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지도 의문이다. 그를 지지한 진보개혁 세력이 민주당도 안철수도 아닌 또 다른 제3의 세력을 찾을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전망했다.
이 같은 정치권의 부정적인 시각에도 안 의원의 독자세력화는 가시적인 단계에 접어들었다. 내일 연구위원인 정연정 배재대학교 교수는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안 의원이 겉으로는 드러내지 않지만 상당히 좋은 사람들과 접촉을 하고, 몇몇 지역은 상당히 좁혀졌다”고 말했다. 안 의원 측 윤태곤 비서관은 “최 이사장 사임은 신문에 보도된 대로며 아직 후임 이사장에 관해선 논의하고 있는 바가 없다”며 “일정에 따라 금융개혁 관련 3개 법안을 준비하고 있다. 아직 다른 의원실에 협조 요청을 하지는 않았다”라고 전했다.
김임수 기자 ims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