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인, 2년 전 경찰에 ‘이웃갈등’ 고민 상담
지난 7월 21, 22일 이틀간 일본 야마구치현의 작은 산골마을에서 노인 5명의 시신이 차례로 발견돼 열도가 발칵 뒤집혔다. 사진은 불에 탄 사건 현장과 5명의 시신이 발견된 취락. 사진출처=아사히신문
처음 사건이 일어난 것은 7월 21일 오후 9시경. 사다모리 씨(71) 자택에서 화재가 일어나고 불탄 자리에서 사다모리 씨와 아내(72)의 시신이 발견됐다. 거의 동시에 약 80m 떨어진 집에서도 화재가 발생. 불에 탄 야마모토 씨(79)의 시신이 잇따라 발견된다. 그리고 다음 날인 22일 정오에는 두 채의 민가에서 각각 가와무라 씨(73)과 이시무라 씨(80)가 둔기로 살해당한 사실이 추가로 확인됐다. 이에 대해 경찰은 “5명 모두 머리를 여러 차례 가격당해 즉사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발표했다.
마을 주민은 14명. 이 중 5명이 사망했으니 인구 3분의 1이 살해된 사건이다. 마을은 순식간에 ‘공포의 지역’이 됐고, 살아남은 주민들은 두려움에 떨었다. 야마구치현 경찰 수사본부는 이번 사건을 연쇄살인 방화 사건으로 규정하고, 마을 주민인 호미 고세이 씨(保見光成·63)를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했다. 호미 씨는 자신의 집 유리창에 ‘타오르는 불과 연기가 기쁨을 가져다준다’는 방화 암시 벽보를 붙인 후 종적을 감춘 상태였다.
체포된 용의자. 사진출처=아사히신문
주변 주민들에 따르면, 용의자 호미 씨는 도쿄 인근에서 살다가 약 15년 전 아버지가 있는 고향집으로 귀향했다. 그러나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는 마을에서의 고립이 심화됐다고 한다. 고립의 계기는 무엇이었을까. 40대로 비교적 젊은 층에 속했던 용의자는 귀향 후 ‘마을 부흥 운동’을 제안했으나 주민들의 반대에 부딪혀 갈등이 불거졌다. 또 용의자가 기르던 개가 냄새가 난다는 이유로 이웃과 종종 말다툼을 벌이곤 했다는 얘기도 있다.
이후 용의자는 자치회 활동에 거의 참여하지 않았으며, 집 안에만 틀어박혀 있기 일쑤였다. 마을 주민들을 도발하기 위해서인지 마네킹에 브래지어를 입혀 집 앞에 장식하거나 실제는 작동이 안 되는 감시 카메라를 설치하는 등 기행을 일삼았다. 그럴수록 그는 더욱 주민들과 멀어졌다. 2011년 설날에는 “마을 안에서 고립돼 있다” “이웃에게 욕을 먹어 곤란하다”고 인근 경찰서에 가 상담한 것으로 드러났다. 결국 설날에 고민을 이야기할 사람이 경찰밖에 없는 지경까지 이른 셈이다.
범죄심리 전문가들은 이번 사건에 대해 “과거 일본에서 몇 번이고 일어난 대량살인의 전형적인 패턴”이라고 지적한다. 이들 사건의 공통점은 범인이 폐쇄적인 마을 전체에 원한을 품고, 그 원한을 대량학살에 의해 단번에 풀려고 한다는 점이다.
용의자의 집에서 발견된 방화 암시 벽보.
사실 대량살인범은 무서운 가해자이나, 정작 본인은 ‘나는 부당하게 억압받는 피해자’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감정이 쌓이고 쌓였을 즈음, ‘마침내 정의의 방아쇠를 당긴다’는 심정으로 끔찍한 사건을 저지르고 만다. 이들의 또 다른 특징은 현실로 돌아가려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 예로 30명을 살해한 쓰야마 사건의 범인은 자살했으며, 이케다 초등학교에서 학생 8명을 무참히 살해한 범인도 스스로 사형선고를 받길 원했다. 이번 사건의 용의자 역시 산에서 발견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신발을 신고 있지 않았던 점, 순순히 자백한 점 등을 들어 전문가들은 ‘아마 용의자는 산에서 자살할 장소를 물색 중이었을지 모른다’고 짐작한다.
한편 산케이신문은 이번 사건과 관련해 인터넷에 기묘한 동정론이 확산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시골의 집단 따돌림이 용의자를 살인에 이르게 했다” “도시에 살다 귀향한 용의자에게 고향은 따뜻하지 않았다. 기대를 배신당한 마음이 컸을 듯하다” 등 일부 동정하는 의견이 새어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기사는 안일한 동정론은 위험한 발상이며, 대량살인은 어떤 명분으로도 용서받지 못할 범죄행위라고 거듭 강조했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
쓰야마 사건이 사상 최악
주민 30명 죽이고 스스로 목숨 끊어
1938년 5월 21일, 일본 오카야마현 마을에서 일어난 대량살인 사건이다. 폐결핵으로 신경쇠약에 빠진 도이 무쓰오(당시 22세)는 20일 저녁 전기선을 잘라 마을을 어둠에 빠뜨렸다. 21일 새벽 1시 30분, 그는 도끼로 자고 있는 할머니를 즉사시킨다. 그 후 전기등을 머리에 두르고 이웃집을 찾아다니며 살인을 시작했다. 그렇게 그는 1시간 30분 동안 30명을 살해하고 3명에게 심각한 부상을 입힌다. 그가 살았던 마을은 작았기에 이 사건으로 인해 마을 사람의 절반 가까이가 사망했다. 그리고 곧 그도 자기 가슴에 총을 쏘아 자살했다. 자살유서에는 할머니를 살해한 이유에 대해 “살인자의 할머니로 살아가게 할 수 없었다”고 남겼다. 일본 범죄 역사상 ‘최악의 살인사건’으로 지금도 회자되고 있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
주민 30명 죽이고 스스로 목숨 끊어
1938년 5월 21일, 일본 오카야마현 마을에서 일어난 대량살인 사건이다. 폐결핵으로 신경쇠약에 빠진 도이 무쓰오(당시 22세)는 20일 저녁 전기선을 잘라 마을을 어둠에 빠뜨렸다. 21일 새벽 1시 30분, 그는 도끼로 자고 있는 할머니를 즉사시킨다. 그 후 전기등을 머리에 두르고 이웃집을 찾아다니며 살인을 시작했다. 그렇게 그는 1시간 30분 동안 30명을 살해하고 3명에게 심각한 부상을 입힌다. 그가 살았던 마을은 작았기에 이 사건으로 인해 마을 사람의 절반 가까이가 사망했다. 그리고 곧 그도 자기 가슴에 총을 쏘아 자살했다. 자살유서에는 할머니를 살해한 이유에 대해 “살인자의 할머니로 살아가게 할 수 없었다”고 남겼다. 일본 범죄 역사상 ‘최악의 살인사건’으로 지금도 회자되고 있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