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고 깨끗한 사람… 돈 욕심에? 말도 안돼”
12일 새벽 한강으로 투신한 김종률 전 의원의 시신이 하루만인 13일 오전 발견됐다. 사진은 13일 오후 서울 강남구 일원동 삼성서울병원에 마련된 빈소와 의원 시절 모습. 연합뉴스
지난 14일 오후 2시쯤 김종률 전 의원의 삼성서울병원 빈소에는 적막감이 가득했다. 빈소를 가득 채운 국회의원과 기관장들의 근조기와 근조화환은 그의 정치 인생을 대변해 주는 듯했다. 김 전 의원이 17대, 18대 국회의원을 했을 당시 보좌관을 지냈던 임 아무개 씨는 “전혀 말씀이나 내색이 없으셨다”며 “민주당 충북도당이 아까운 인재를 하나 잃었다”고 탄식했다.
김 전 의원은 지난 12일 한강으로 투신해 다음날인 13일 시신으로 발견됐다. 김 전 의원의 투신 사실이 알려진 건 12일 새벽 5시 45분쯤. 김 전 의원으로부터 ‘억울하다. 죽고 싶다’는 문자를 받은 지인이 이상한 낌새를 느껴 “김 위원장이 한강에 투신한 것 같다”며 경찰에 신고하면서부터다. 경찰 조사 결과 김 전 의원은 투신 전에 이미 주변 정리를 한 것으로 드러났다. 김 전 의원의 서울 도곡동 자택에선 ‘미안하다. 아이들을 잘 부탁한다’는 내용의 유서가 발견됐고, 페이스북에는 ‘당과 동지들에게 미안하다’는 글이 게시돼 있었다. 특히 김 전 의원은 투신 전날 충북 음성의 어머니 집에 들러 마지막 저녁 식사를 한 것으로 밝혀져 주변을 안타깝게 했다.
김 전 의원의 극단적인 선택에 가장 충격에 빠진 이들은 민주당 충북도당 관계자들이라고 전해진다. 전언에 따르면 가까운 측근조차 김 전 의원의 심경 변화를 전혀 짐작하지 못했다는 것. 심지어 투신의 발단이 된 검찰 조사를 받을 시점에도 이 사실을 알아챈 민주당 당원들은 거의 없었다고 한다. 민주당 충북도당 이광진 도의원은 “김 위원장이 워낙 꼼꼼한 성격이고 법률가 출신이라 아무래도 혼자서 이를 끌어안고 있었던 것 같다”며 “7월말에 봤을 때도 아무렇지 않게 같이 커피 한잔 마신 기억이 난다. 중학교 선후배 사이로 막역했는데 너무나 안타깝다”라고 전했다.
김 전 의원이 검찰 조사를 받은 시점은 8월 초부터다. 앞서 검찰은 라정찬 알앤엘바이오 회장으로부터 청탁 조건으로 5억 원을 받은 혐의로 금융감독원 연구위원 윤 아무개 씨를 구속 수사하고 있는 상태였다. 줄기세포 치료제 개발업체인 알앤엘바이오는 2011년 금감원으로부터 부실회계 문제로 조사를 받자 당시 금감원 주무국장이던 윤 씨에게 무마 대가로 5억 원을 건넸다는 의혹을 받았다. 그때 라 회장에게서 5억 원을 받아 윤 씨에게 건네준 사람이 김 전 의원이라는 사실을 검찰이 포착한 터였다. 김 전 의원도 “당시 5만 원 권을 가득 채운 박스로 5억 원을 윤 씨에게 직접 건넸다”고 검찰 조사에서 진술했다고 한다.
하지만 윤 씨는 “돈을 받지 않았다”며 강력하게 부인했다. 금감원 내부에서도 “윤 씨가 그럴 인물이 아니다”라는 목소리가 강했다고 전해진다. 결국 검찰은 거짓말 탐지기까지 동원하며 윤 씨의 혐의를 밝히기 위해 노력했지만 도리어 윤 씨의 반응은 ‘진실’, 김 전 의원의 반응은 ‘거짓’이 나와 의구심을 자아냈다.
오리무중으로 빠질 뻔했던 사안의 실체가 드러나기 시작한 시점은 지난 8일 대질 신문에서다. 앞서 거짓말 탐지기 검사와 더불어 김 전 의원의 진술에 모호한 점이 포착됐기 때문. 김 전 의원은 “(돈을 건네줄 당시) 윤 위원이 한 명을 데리고 나와 셋이 식사했다”고 주장했는데, 이에 윤 씨가 “내가 그 사람을 뭐라고 부르더냐”고 묻자 김 전 의원은 머뭇거리며 제대로 답을 하지 못했다고 전해진다. 게다가 돈을 건네줄 시점에 윤 씨는 자택 근처 지하철에서 교통카드를 사용한 것이 확인되기도 했다.
대질신문 이후 김 전 의원은 결국 11일 검찰에 출석해 “내가 배달사고를 냈다”고 시인하기에 이른다. 윤 씨에게 돈을 전달하지 않고 자신이 도중에 가져갔다는 것이다. 김 전 의원은 “내 거짓 진술로 윤 씨와 그 가족들에게 피해를 끼쳐 미안하다”는 뜻을 전했다. 윤 씨는 즉각 무혐의로 풀려났다. 그로부터 6시간 후 김 전 의원은 한강에 투신하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만 것이다.
김 전 의원의 사망 이후 5억 원의 향방은 안갯속에 가려졌다. 김 전 의원이 5억 원의 사용처에 대해서는 “변호인과 상의하고 추가 조사를 받겠다”며 끝내 밝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뇌물공여 혐의로 김 전 의원을 수사하던 검찰도 ‘공소권 없음’으로 수사를 종결했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이미 김 전 의원이 고인이 된 마당에 5억 원과 관련해서 왈가왈부할 상황이 아니다”라고 전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조심스럽게 5억 원의 행방을 추측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개인적인 용도로 쓴 것이 아니냐”는 얘기부터 “정치자금으로 사용했을지도 모른다”는 추측이 오가고 있는 것. 특히 김 전 의원이 유서에서 “돈의 행방을 밝히고 나의 무고함을 밝히고 싶었지만, 너무 늦은 감도 있고, 혼자 다 감당하기에는 벅찬 절망감만 있습니다”라고 언급한 부분과 “제가 다 지고 갑니다”라는 부분에서 이러한 추측은 일파만파로 번졌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김 전 의원이 5억 원을 개인적인 용도로 썼을 리 없다고 보고 있다. 김 전 의원의 재정 상황이나 성격 등을 따져봤을 때 5억 원을 가로챌 만한 인물이 아니라는 것이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충청 정가에서는 김 전 의원이 깨끗하고 맑은 사람으로 정평이 나 있다. 김 전 의원이 예전에 단국대 교수 시절 1억 원을 받아 국회의원직을 상실했을 때도 이명박 대통령으로부터 ‘정치적 보복’을 당한 게 아니냐며 측은하게 보는 시선이 많았다. 김 전 의원과 배달사고는 한마디로 전혀 안 어울리는 그림이라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이 다수였다”라고 전했다. 정치권 또 다른 관계자는 “밥을 먹어도 김 전 의원은 항상 먼저 계산하는 사람이다. 돈 욕심에 그랬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라고 잘라 말했다. 실제로 김 전 의원은 상당한 자산을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 2009년 3월 국회의원 재산공개 현황에 따르면 김 전 의원은 부동산, 예금, 주식 등 42억 원가량의 자산을 보유하고 있었다. 이후 국회의원직을 상실해서 별다른 수입이 없더라도 라정찬 회장과의 친분으로 알앤엘바이오의 고문직으로 활동한 것을 감안하면 항간의 추측대로 ‘생활고’ 때문에 5억 원을 가져가지는 않았을 것으로 추측하는 사람들이 많다.
때문에 개인적인 용도보다는 정치자금이나 공적자금으로 5억 원을 사용한 것이 아니냐는 목소리가 설득력을 얻고 있다. 민주당 충북도당위원장으로서 내년에 있을 지방선거를 꾸려가야 할 수장 임무를 맡다 보니 ‘무리수’를 두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도당위원장으로 선거 운동을 할 때도 변재일 의원이 하루에 전화나 문자를 다섯 번 정도 한다고 하면 김 전 의원은 그 두 배를 할 정도로 열정적이었다”며 “그 정도로 의욕적이었던 것을 감안했을 때 지구당 운영비용으로 썼을 가능성을 예상해 볼 수도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추측일 뿐이라는 목소리도 높았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는 “민주당 중앙위 쪽으로 이 사안(돈의 행방에 대한 사안)에 대해 보고가 된 것으로 아는데 중앙위 쪽에서도 마땅한 답이 없다. 그만큼 돈의 행방을 확실하게 알고 있는 사람이 현재로선 없는 것이다. 그 점이 참으로 의문이 남고 답답한 점”이라고 전했다.
민주당 충북 지역 도의원들은 김 전 의원의 갑작스런 죽음을 김 전 의원의 ‘양심적 가책’에 따른 것이라고 보는 이들이 많았다. 김 전 의원을 10년 넘게 지켜봐왔다는 A 도의원은 “김 전 의원의 성격은 의지와 책임감이 강한 스타일이다. 도당위원장으로 뽑히면서 열심히 일한다는 생각에 당원들과 함께 기대가 컸는데 그것에 대한 좌절과 당원들을 실망시킬 수도 있다는 생각이 컸던 것 같다”라고 전했다. 또 다른 도의원은 “전두환 전 대통령을 보더라도 몇 천 억 원의 돈을 먹어도 오히려 뻔뻔하면 버틸 수 있지 않겠느냐”며 “명예를 잃는 것보다는 양심적 가책을 느껴 차라리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는 점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과 비슷한 양상을 띠는 것도 같다”라고 전했다.
민주당 충북도당은 김 전 의원과 관련한 파장을 추스르기 위해 분주한 모습이다. 민주당 김동환 충북도의회 부의장은 “민주당에서는 비상대책기구를 구성해 사태를 해결해 나갈 예정”이라며 “언론에서 김 위원장의 후임으로 항간에서는 변재일 의원과 노영민 의원이 거론되고 있는데 아직 확실히 정해진 바는 없다”라고 밝혔다.
박정환 기자 kulkin85@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