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출구전략…5년 전 악몽 스멀스멀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 우려로 인도,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 신흥국의 금융시장이 불안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사진은 명동에 설치된 각국 화폐 모습. 연합뉴스
금융당국의 한 관계자는 “2008년 7~9월 3개월 연속 경상수지 적자에 외평채 발행 무산이 겹친 상태에서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자 국제사회에서는 한국이 1997년과 같은 외환위기에 빠질 수 있다는 전망이 적지 않았다”며 “실제 코스피지수는 그 해 10월 900선이 무너졌고, 환율은 1200원선을 넘어서며 벼랑 끝에 몰렸다”고 회상했다. 당시 위기는 미국 및 일본, 중국과의 통화 스와프(교환) 체결로 외환보유 문제가 해결된 이후에야 가라앉았다.
이후 해마다 9월이 다가오면 위기설이 떠올랐다. 2009년에는 우리나라 단기외채 상환이 집중되면서 9월 위기설이 불거졌다. 2010년부터 2012년까지 3년간 이어진 9월 위기설의 진앙은 유럽이었다. 유로존 재정위기로 국제 투자자금 이탈이 발생해 한국 금융시장이 위기에 처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특히 2012년에는 그리스가 유로존에서 퇴출될 것이라는 소문이 번지면서 시장이 요동치기도 했다. 하지만 2008년 9월을 제외하고는 모든 위기설은 현실화하지 않았다.
그러나 올해 9월 위기설에 대한 분석은 사뭇 다르다. 단순히 외채나 유로존 등 한 가지 문제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국제적인 각종 악재가 집중된 탓이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미국 경기가 좋아지고 있어 미국이 9월부터 양적완화 축소를 시행하면 미국이 세계에 풀어놓은 돈 덕분에 성장을 해온 신흥국이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크다. 게다가 신흥국의 경기가 최근 들어 나빠지고 있어 충격이 예상보다 클 가능성이 있다”면서 “신흥국 경기가 악화되면 분류상 신흥국에 속하는 우리나라도 금융시장이 흔들릴 수 있다. 미국에서 우리나라에 들어온 투자자금이 173조 원가량 되는데 양적완화 축소로 이 자금 중 일부가 빠져나갈 경우 주가와 환율에 상당한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 가능성에 인도와 인도네시아, 태국, 브라질,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신흥국 경제가 요동치면서 위기감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인도의 경우 국가 부도 사태로 갈 수도 있다는 전망마저 나오는 실정이다. 9월 미 의회가 부채한도 증액 협상에 들어갈 예정이지만 타결 가능성이 낮은 것도 악재다. 부채한도를 상향조정하지 못할 경우 재정적자를 줄이기 위해 미 정부 재정지출은 자동 삭감된다. 이렇게 되면 미국에 대한 국제 신용도가 떨어지면서 금융시장은 요동칠 수 있다.
일본 소비세 인상안 실시 여부가 9월에 결정되는 것 역시 불안 요소다. 일본은 재정건전성 확보를 위해 현재 5%인 소비세를 2014년과 2015년 2차례에 걸쳐 10%까지 올린다는 계획이다. 민간 경제연구소 관계자는 “소비세 인상안 시행 여부를 9월에 결정하는데 원안대로 추진할 경우 소비 위축이 발생할 수 있고, 원안을 손볼 경우에는 재정건전성에 대한 우려가 커질 수 있는 양날의 칼”이라며 “일본이 세계 3위의 경제대국이라는 점에서 무시할 수 없는 사안”이라고 말했다.
재정위기에 빠진 유럽 경제의 버팀목인 독일 총선이 9월 22일에 치러지는 점, 이집트와 중동 지역 정치적 불안이 확대되면서 원유가격이 급등세를 보이고 있는 것도 9월 위기설에 대한 우려를 키우고 있다.
오정근 아시아금융학회장(고려대 경제학과 교수)은 “9월 위기설의 핵심은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인데 현재 인도와 인도네시아 등 상황에서 보듯이 파장이 크다. 우리나라는 위험성이 없다고 하지만 지난 6월 초에 밴 버냉키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이 양적완화 축소 로드맵을 내놓자 부도위험을 나타내는 CDS 프리미엄이 급등했다”면서 “정부에서는 경상수지 흑자가 많으니 괜찮다는 이야기만 할 것이 아니라 외화유동성 확보에 만전을 기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준겸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