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찰의 SK 비자금 수사가 총선자금으로 흘러갈 것으로 보인다. 사진은 지난 2000년 총선 개표 장면. | ||
SK측은 지난해 11월 최돈웅 의원을 통해 현금 1백억원의 대선자금을 한나라당에 제공한데 이어, 당시 노무현 후보 선대위 총무위원장 이상수 의원에게도 25억원의 자금을 제공한 것으로 검찰 수사 결과 밝혀졌다.
SK 비자금을 둘러싼 논란이 거듭되면서 삼성 LG 현대차 롯데 등 5대 기업도 적지 않은 대선자금을 정치권에 제공한 사실이 새롭게 드러나고 있다. 이 때문에 SK 비자금으로 촉발된 대선자금의 정치권 유입 수사는 5대 기업을 포함, 재계 전반으로 수사가 확대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그러나 문제의 핵심은 SK그룹이 제공한 정치자금의 실제 금액이 어느 정도인가 하는 점이다.
이와 관련해 검찰은 10개월 이상 지속된 SK 비자금 수사에서 수천억원대의 비자금을 발견한 것으로 전해졌다. 물론 검찰에서는 이 돈의 용처와 흐름에 대해 대략적인 윤곽을 파악하고 있을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현재 검찰 안팎에서는 SK의 비자금 가운데 대선 직전 최돈웅 의원과 이상수 의원에게 전달된 1백25억원 외에, 지난 2000년 총선을 전후해서도 여야 정치권에 거액의 정치자금이 전달됐다는 얘기가 나돌고 있다.
검찰은 이미 지난 99년부터 SK해운 등 SK그룹 계열사에서 조성한 비자금 규모가 수천억원대에 이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현재까지 사용처가 확인된 비자금이 1백25억원에 불과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어마어마한 자금이 아직까지 실종상태에 있는 셈이다.
따라서 SK 비자금의 제1의 뇌관이 지난해 대선 직전 여야 정치권에 제공된 ‘대선자금’이었다면, 제2뇌관은 지난 2000년 총선 직전 이뤄진 ‘총선자금’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하기 이전까지 SK그룹에 대한 검찰 수사는 SK글로벌 등 SK그룹 일부 계열사의 분식회계에 초점이 맞춰졌다. 수사 결과 지난 99년부터 2001년까지 약 1조5천억원대의 분식회계가 이뤄졌음을 밝혀냈다.
당시 검찰은 분식회계 등을 통해 마련한 자금의 상당부분은 최태원 회장이 그룹 지배권 확보를 위해 계열사 지분을 매입하는 데 사용한 것으로 파악했다.
비자금 조성 경위와 자금의 흐름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막대한 자금이 정치권에 유입된 정황을 포착하고 수사를 확대한 것이었다.
최태원 회장 구속으로 일단락될 것 같던 SK그룹 분식회계 수사가 손길승 회장의 소환으로 이어진 배경이다. 최태원 회장에 대한 수사가 SK 계열사의 분식회계와 부당 내부거래에 초점이 맞춘 반면, 손길승 회장은 SK그룹에서 조성한 비자금의 정치권 유입 부분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지난 99년부터 2001년까지 SK가 조성한 비자금의 규모는 수천억원대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SK글로벌 등 일부 계열사의 분식회계를 통해 자금이 조성되었을 뿐 아니라, SK해운의 소득금액 탈루 등으로도 천억원대의 자금이 조성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중 정치권에 유입된 자금은 지금까지 밝혀진 1백36억원(최돈웅 의원 1백억원, 이상수 의원 25억원, 최도술 전 총무비서관 11억원) 외에도 최소 수백억원대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지금까지 밝혀진 대선 직전 집행된 자금 외에도 2000년 총선, 2002년 지방선거 등 굵직굵직한 선거 때마다 적게는 수억원에서 많게는 수십억원의 자금이 정치권에 유입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지금까지 검찰 수사의 초점은 지난해 ‘대선자금’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검찰의 수사가 지방선거와 총선자금으로 확대될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럴 경우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인의 줄소환은 불가피한 상황이다.
손길승 회장을 소환 조사한 직후 검찰은 SK 비자금과 관련해 여야 중진 3∼4명에 대한 소환을 예고한 바 있다. 여기에는 최돈웅 의원과 이상수 의원이 포함돼 있었다.
그러나 이들 두 의원 외에도 2000년 총선 당시 여야 각 정당에서 중책을 맡았던 인사들도 상당수 수사선상에 올랐던 것으로 전해졌다. 오히려 이들 인사들이 먼저 소환될 가능성이 높았던 것으로 전해지기도 했다. K의원과 C의원, H의원 그리고 L의원이 주로 거론됐다. 또다른 정당의 H의원 S의원 등도 이름이 오르내렸다.
그러나 검찰 수사가 대선자금 수사에 집중되면서 이들 여야 중진들에 대한 검찰의 소환은 이뤄지지 않았다. 이 때문에 SK 대선자금 제공에 대한 검찰 수사가 어느 정도 마무리된 후 ‘총선자금’ 등에 대한 수사가 재개될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물론 변수는 있다. SK의 대선자금 제공 사실이 밝혀진 후, 삼성 등 다른 재벌기업들의 대선자금 제공과 관련해 수사가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검찰이 5대 재벌기업 등으로 수사를 확대한다면, SK ‘총선 지원금’에 대한 수사는 당분간 수면아래로 잠복할 가능성이 크다.
재벌기업의 정치자금 제공 부분에 대한 검찰 수사는 음성적인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는다는 대의명분 외에도 적지 않은 정치적 함의를 담고 있다.
특히 대선자금 수사와 총선자금 수사는 내포하고 있는 정치적 의미가 다를 수밖에 없다. 대선자금 수사는 일차적으로 거대 야당인 한나라당이 타깃이 될 가능성이 높다.
최돈웅 의원의 현금 1백억원 수수에서 알 수 있듯이 후보단일화 직전까지 거세게 몰아쳤던 ‘이회창 대세론’을 바탕으로 막대한 정치자금 유입이 이뤄졌을 개연성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2000년 총선자금 수사는 당시 집권 여당이었던 민주당, 특히 당시 실세 그룹이었던 동교동계가 타깃이 될 가능성이 높다. 공천은 물론 총선 지원금 배분에도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만큼 ‘정치자금’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관측인 것.
이들 대부분은 민주당 분당 이후에도 여전히 민주당을 사수하고 있다. 이 때문에 정치권에서는 검찰의 강도 높은 SK 비자금 수사와 노무현 대통령이 언급한 ‘창조적 파괴’를 연관지어 해석하는 인사들이 적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