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론 숲을 보고, 때론 나무를 보더라
위에서부터 뫼비우스, 강철중, 설국열차, 전설의 주먹, 둘 하나 섹스. 그래픽=송유진 기자 eujin07@ilyo.co.kr
제한상영가 등급의 역사는 약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노골적인 노출과 정사 장면, 혼음과 본드 흡입 장면 등이 포함된 독립영화 <둘 하나 섹스>가 1999년 두 차례 ‘등급 보류’ 판정을 받은 후 낸 위헌법률심판제청이 받아들여져 2002년 제한상영가 등급이 신설됐다. 이후 법률이 한 차례 개정된 후 완성된 현재의 제한상영가 등급은 인간의 보편적 존엄, 사회적 가치, 국민정서를 현저히 해할 우려가 있는 경우에 내려진다.
그 안에는 수간, 시간, 소아성애 등 혐오스러운 성적행위와 성기 및 실제 성행위 등 구체적 묘사, 근친상간과 혼음 등 비정상적인 성관련 묘사 등이 포함된다. 엄마와 아들의 성관계 장면을 담은 <뫼비우스>도 여기에 해당돼 제한상영가 판정을 받았다.
<뫼비우스> 외에도 올해 제한상영가 등급을 받은 영화는 총 5편. 프랑스의 거장 레오 까락스 감독의 신작 <홀리 모터스>는 등장인물의 발기된 성기가 문제가 됐다. 결국 성기 부위를 블러 및 모자이크 처리해 상영하는 촌극이 빚어졌다.
태국 영화 <잔다라> 역시 혼음과 세워진 성기, 음모 노출 때문에 제한상영가 판정을 받은 후 해당 장면을 재편집해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으로 현재 상영 중이다. <거짓말 섹스가 좋아>와 <클립> 역시 비슷한 이유로 철퇴를 받은 후 스스로 가위를 대 수위를 낮췄다.
지난 3월 제한상영가 판정을 받은 영화 <브루노>만이 재심의를 요청하지 않았다. 성인 영화 전용 극장에서는 상영할 수 있지만 제한상영가 전용 극장이 없는 한국에서 합법적인 방법으로 <브루노>를 볼 방법은 없다. 한국에서 ‘제한상영가=사망선고’라는 등식이 성립되는 이유다.
하지만 국내에 제한상영관이 없다는 지적에 대해 영등위 박선이 위원장은 “영등위가 논의할 문제가 아니다. 제한상영관 설치 법률이 상당히 엄격하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제한상영가 등급 영화를 예술영화전용관에서 상영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할 전망”이라는 희망적인 이야기도 꺼냈지만 언제 어떤 방식으로 진행될 지 여부에 대한 명확한 답은 없다.
제한상영가 영화를 결정하는 기준이 모호하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박선이 위원장은 “뚜렷한 기준이 있다”며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에서 정한 영화 및 비디오에 관한 법률(영비법)에 따라 상당히 구체적인 내용이 정해져 있다. 저울로 달 수 있는 문제는 아니지만 전문가들이 영비법을 근거로 진행한다. <뫼비우스>를 관객들이 보시면 그렇게 등급분류가 내려진 상황에 대해 이해하실 것으로 생각한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관객들은 결국 심의에 통과하기 위해 가위질된 영화만 보게 된다. 영등위가 올바른 결정을 내렸는지 관객들이 판단할 기회조차 없다는 의미다. 제한상영가 논란이 불거질 때마다 언론과 영등위만 대립각을 세우다 결국 뻔한 결과만 내놓게 되는 게 현실이다.
사실 관객들이 더 의아하게 느끼는 등급 기준은 ‘청소년 관람불가’와 ‘15세 이상 관람가’다. 올해 가장 이해할 수 없는 사례 중 하나로 꼽히는 것은 배우 황정민 유준상이 주연을 맡았던 영화 <전설의 주먹>이다. 영등위는 “영상 표현에 있어 학교폭력, 청부살인 등의 폭력성, 공포, 모방위험 수위가 높다”며 청소년 관람불가 판정을 받았다. 연출을 맡은 강우석 감독은 안타까워했지만 편집 없이 개봉을 결정했다.
하지만 시계를 5년 전으로 돌려보자. 강우석 감독의 2008년작인 <강철중:공공의 적 1-1>은 조폭을 전면에 내세웠다. 조폭이 되려는 고등학생이 청부 살인을 저지르고 그 학생이 학교에서 또 다시 살해당하는 내용을 담았지만 ‘15세 관람가’였다.
두 영화의 흥행 스코어는 각각 174만 명과 450만 명. <전설의 주먹>은 손익분기점조차 넘지 못했다. 한 영화 관계자는 “두 등급 사이에는 엄청난 흥행의 간극이 존재한다. 애매한 등급 판정 때문에 <전설의 주먹>이 흥행에 실패했다는 성토가 이어졌다”고 말했다.
개봉 한 달 만에 900만 관객을 동원하며 무더위를 뚫고 질주한 <설국열차> 흥행의 일등공신은 영등위였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영등위가 이 영화에 15세 관람가 등급을 줬기 때문이다.
<설국열차>은 전진하려는 꼬리칸 사람들과 이들을 막기 위해 도끼를 든 복면 남성들의 대살육전을 묘사하고 있다. 게다가 임신한 여교사가 학생들이 보는 앞에서 총기를 난사하며 살인을 하다가 목에 칼을 맞고 죽는다. 약물에 취해있는 일등칸 사람들의 모습도 다수 노출된다.
영등위가 내세운 기준에 따르면 7가지 평가 항목 중 ‘폭력성’ ‘약물’ ‘모방 위험’ 등에서 수위가 높다. <설국열차>를 본 영화 관계자들도 “15세 관람가를 받아 다행이지만 어떻게 이 등급을 받을 수 있었는지 궁금하다”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에 대해 박선이 위원장은 “영화 등급 분류를 하는데 ‘전체를 보지 않고 나무를 보느냐’는 영화계의 지적에 공감한다. 그런데 그 경계선이 쉽지 않다. 숲을 보려고 노력하기 때문에 성기 노출이 지나가고 술 담배가 지나가도 청소년관람가 등급이 나올 수 있다. 다만 결정적인 나뭇가지를 안 볼 수 없다. 법에 규정이 있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분명 조리 있는 해명이다. 하지만 영화계 현장에서 일하는 이들은 여전히 “기준이 들쭉날쭉하다”고 말한다. 제대로 모습을 갖춘 규정이 있는데도 이런 평가가 이어지는 건, 결국 규정을 다루는 이들이 갈팡질팡하고 있다는 의미다.
안진용 스포츠한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