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저승사자’로 불려
채 전 총장은 2003년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장 자리에 올랐고 노무현 정권 초기 굿모닝시티 특혜분양 사건을 수사하면서 정대철 민주당 대표에게 칼끝을 겨눴다. 채 전 총장은 결국 정 대표를 뇌물수수 등의 혐의로 구속했다. 정권의 눈 밖에 난 채 전 총장은 대전지검 서산지청장, 부산 고검 검사 등에 임명되며 잇따른 인사에서 이른바 ‘물’을 먹는 상황에 놓인다.
채 전 총장은 2006년 전국 특수수사를 총괄하는 대검 수사기획관으로 자리를 옮기며 다시 한번 특수통으로서의 진가를 발휘한다. 채 전 총장은 현대자동차 비자금 사건을 수사하며 정몽구 회장을 구속했다. 또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CB) 발행사건을 수사하며 허태학 당시 사장 등을 재판에 넘겼다. 이 사건은 삼성 비자금 특검 수사의 단초가 된다. 이후 대우건설 사장 로비사건과 외환은행 헐값매각 의혹 사건 등을 수사하며 ‘재계 저승사자’라는 별명이 붙었다. 그러나 2010년 김준규 검찰총장 시절 터져 나온 ‘스폰서 검사’ 사건의 진상조사단장을 맡으면서 ‘봐주기’ 의혹에 휩싸였다.
지난해 한상대 검찰총장과 최재경 대검 중수부장이 갈등을 빚으며 사상 초유의 ‘검란’이 일어나자 한 전 총장에게 사퇴를 권유했다. 채 전 총장은 직속상관을 몰아낸 장본인이라는 비판을 받았지만 헌정사상 최초로 검찰총장후보추천위원회의 천거를 받아 검찰총장 후보에 임명됐다.
후보자 시절 청렴한 재산관계와 2009년 안타깝게 딸을 잃은 사연이 전해지면서 채 전 총장은 ‘파도남’이라는 별명도 얻는다. ‘파도 파도 미담만 나온다’는 뜻이다. 고등학교 동기와 결혼한 채 전 총장은 첫 딸이 병에 걸려 뇌성마비 장애를 얻게 되자 지극정성으로 간호했다. 부인은 중학교 교사 생활을 접었고 채 전 총장은 뇌성마비에 걸린 딸을 여러 외부행사에 데리고 다닌 것으로 유명하다. 10대를 넘기지 못할 것이라던 딸은 22세로 세상을 떠났다.
청렴하고 가정적인 이미지에 강단 있는 수사력까지 보태지면서 ‘검란’ 이후 위기에 처해있던 검찰을 추슬렀던 채 전 총장은 아이러니하게도 사생활과 관련한 의혹으로 곤욕을 치르고 있다. 사실 여부를 떠나서 채 전 총장을 달갑지 않게 생각했던 검찰 안팎의 인사들에게 이번 사건은 절반의 성공인 셈이다. 가장 빼어난 장점 중 하나로 손꼽힌 부분에 금이 간 것이다. 결국 그는 퇴임식도 없이 서둘러 검찰청사를 떠나야 했다.
이승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