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만 ‘대선 바람’이 하루빨리 지나가기만을 기다릴 뿐이다. 선거철만 되면 이 지역이 논란의 도마 위에 오르기 때문이다. 이번 대선도 예외는 아니다. 이미 서울시에서 재개발 계획을 발표한 상태다. 이 지역 5백여명의 업주들은 “별일이야 있겠느냐”면서도 내심 신경을 쓰는 눈치다.
‘미아리 텍사스촌’은 국내 최대의 윤락업소 밀집촌이다. 경찰은 2백60개 업소에 1천여명의 매춘여성들이 종사하고 있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지 만 실제로는 이보다 배 정도의 규모인 것으로 알려진다.
토요일인 지난 11월24일 저녁 7시께. 좁다랗게 이어진 텍사스촌 골목길 안으로 하나둘 분홍빛 전등이 켜졌다. 줄지어 늘어선 업소 유리문 안에서는 하얀색 드레스를 입은 아가씨들이 앉아서 무표정하게 바깥을 바라본다. 뒤늦게 화장을 하는 아가씨의 모습도 보였다. 골목 초입에 자리잡은 포장마차들도 영업준비에 부산하다.
텍사스촌 시간으론 아직 ‘새벽’. 이 시각에 찾아오는 ‘부지런한’ 손님은 별로 없다. 이곳에서 포장마차를 운영하고 있는 K씨는 “주 5일제 때문에 주말 장사가 잘 안 된다”고 털어놓았다. 과거에는 토요일 손님이 많았지만 요즘은 오히려 금요일에 이곳을 찾는 손님이 절정에 달한다는 설명.
주5일제로 금요일이 피크 대부분 40~50대 아줌마들인 호객꾼들은 골목 입구까지 나와 몇 안 되는 손님들을 업소로 끌기 위해 한바탕 몸싸움을 불사한다. 코트를 잡아끄는 것은 기본이고, 가방을 낚아채기도 한다. “경찰이 배치되면 히파리(호객행위)도 못한다. 초저녁에나 이렇게 하는 것이다.” 아직은 손님이 뜸한 시간이라 업주들은 삼삼오오 모여 커피를 마시기도 한다.
이들에게 다가온 대통령선거에 대해 질문을 던져 봤다. 업주 L씨는 “누가 되든 우리하고는 상관없다. 어차피 그게 그거 아니냐”며 “이 동네에서 투표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라는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 서울시가 최근 발표한 ‘미아리 텍사스촌’ 재개발 계획은 이들에게 자신의 생명줄이 걸린 문제.
서울시의 계획은 이곳의 용적률을 높여 자연스럽게 재개발을 유도한다는 것. 그렇지만 업주들의 생각은 달랐다. “청량리(588)도 재개발하겠다고 한 지 10년이 지났는데 그대로다. 가게 권리금이 1억원이고, 지금도 들어오려는 사람이 줄섰는데 재개발이 쉽겠느냐.”
“설령 천호동처럼 여길 없앤다고 쳐, 그런다고 이 나라에 윤락이 없어지나. 돈 많은 X들이야 룸살롱서 수백만원어치 술 먹고, 2차 가면 되지만 서민들한테는 여기가 천국이야. ‘강짜’(김강자 전 서장)이후에 미성년자 없어졌지, 바가지 없지….” 밤 10시가 넘어서면서 경찰이 배치됐다. 골목 입구마다 2인1조의 의경들이 들어섰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은 주로 미성년자의 출입을 막고, 길거리에서의 호객행위를 단속할 뿐이다.
손님들도 늘어나기 시작했다. 3~4명씩 술에 취한 남성들이 흥정을 벌이는 모습이 쉽게 눈에 띄었다. 근처 포장마차에서 뜨거운 어묵국물을 마시던 S씨(33)는 “대학친구들과 술을 마시다 여기를 없앤다는 소식을 듣고 그전에 한 번 가보자는 이야기에 엉겁결에 왔다”며 “아직 친구들이 업소에서 나오지 않아서 기다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자정이 가까워지면서 ‘텍사스촌’은 절정에 달했다.
손님들과의 실랑이로 골목 안이 시끌벅적했다. 이미 관계를 끝낸 손님들이 ‘서비스’로 받은 야쿠르트를 한 손에 들고 골목을 빠져나오는 모습도 눈에 띈다. 야쿠르트를 든 손님에게는 호객을 하지 않는 것이 이곳의 불문율. 자정을 넘어서서도 여전히 불야성을 이루고 있는 ‘미아리 텍사스’. 이곳의 체감경기에 대해 아가씨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30살의 고참 지희(가명)는 “요즘 경기가 나쁘다는데, 여기는 그런 대로 괜찮다”며 “보통 10개(횟수를 의미하는 은어)는 한다”고 털어놓았다. 업주협회에서 지난 6월25일자로 업소마다 붙여놓은 ‘공정가격’은 ‘짧은 밤’ 기준으로 카드 8만원, 현찰 7만원. 한 업소당 평균 5~6명의 아가씨들이 있다는 것을 가정할 때 하룻밤에 업소당 5백만원정도의 매출을 올린다는 계산이 나온다. 규모로 보자면 기업형 윤락인 셈이다.
룸살롱에서 일하다 술 먹는 게 곤욕이어서 세달 전에 이곳으로 왔다는 은숙(가명)이는 “심하게 술취한 손님만 아니면 있을 만한 곳”이라고 텍사스촌 생활을 이야기했다. 이젠 강제로 이곳에 끌려오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게 아가씨들의 이야기. 대부분 자발적으로 찾아온다는 것.
또 일정시간을 정해 자유롭게 출퇴근하며 일하는 속칭 ‘프리랜서 아가씨’들이 생겨난 것도 텍사스촌의 새로운 풍조라고 한다. 그녀들에게 미아리 텍사스촌 재개발 방침은 그저 사장(업주) 혼자 고민해야 할 문제였다. 전국 곳곳에 비슷한 일터는 얼마든지 있으니까. 자유출퇴근 프리랜서 생겨 후보 단일화 문제로 세상이 떠들썩하지만 한 달이 채 남지 않은 대통령 선거에 대해서 이곳 아가씨들은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여기에 있으면 바깥세상 일은 잊게 된다. 아직 누가 나오는지도 모르는 애들이 태반이다. 아마 이곳 사람들 중에서 투표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한 아가씨의 얘기가 끝나자 ‘현경’이라 불리는 다른 아가씨가 거든다. 그녀는 “가끔 손님들이 대통령 후보로 누굴 지지하느냐고 묻는 경우가 있는데 솔직히 짜증난다”며 “그럴 때는 손님은 누가 좋으냐고 물은 뒤 나도 그렇다고 맞장구를 쳐주는 게 속편하다”고 나름의 대응책을 밝히기도 했다. 안순모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