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 가는 한국의 미 알리기 68
채상장 기능 보유자 서한규 선생(중요무형문화재 제53호)이 채상기법으로 만든 죽침이다. 채상장(彩箱匠)은 얇게 저민 대나무 껍질을 색색으로 물들여 기하학적 무늬로 고리 등을 엮는 기능을 가진 장인을 말한다. 사진제공=서헌강 문화재 전문 사진가
베개는 형태와 특징에 따라 퇴침(退枕·속이 빈 상자 모양의 베개), 접첩침(摺疊枕·말아서 베면 베개가 되고 펼치면 방석이 되도록 만든 것), 나전침(螺鈿枕·베갯모에 자개를 박아 만든 베개), 풍침(風枕·가운데에 바람구멍을 낸 베개), 수침(繡枕·수베개·베갯모에 갖가지 무늬를 색실로 수놓은 베개) 등으로 구분된다.
흔치는 않았지만 표면을 오톨도톨하게 만든 베개도 있었다. 오래 잠드는 것을 경계한 선비들이 토막잠을 자기 위한 베개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청자 모란 구름 학 무늬 베개. 국립중앙박물관
조선 후기의 실학자 서유구가 저술한 ‘조선판 백과사전’인 <임원십육지>(林園十六志)에는 흥미로운 베개가 등장한다. 접첩침의 일종인 ‘습첩침’이 그것. 양털이나 말털로 속을 채운 작고 얇은 베개주머니 같은 것을 네 개나 여섯 개 이어서, 상황에 따라 폈다 접었다 하며 높이를 달리하여 사용한 베개다. 요즘 말로 하자면 체격 불문하고 누구나 쓸 수 있는 4단이나 6단 베개라고 할 수 있겠다.
수침, 즉 수베개는 베갯모에 무엇을 수놓느냐에 따라 다양한 명칭으로 불렸다. 한 쌍의 봉황과 7마리의 새끼 봉을 수놓은 베개는 ‘구봉침’, 학이나 호랑이를 수놓은 베개는 각각 ‘학침’, ‘호침’이란 이름이 붙었다. 새벽을 알리는 닭을 수놓은 베개는 신계침이라 불렀다. 장수의 상징인 십장생과 한자 복(福)자도 베갯모에 자주 수놓이는 대상이었다.
목침. 국립중앙박물관
‘예부터 장마철 한철을 넘기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어찌 어찌 보릿고개를 넘긴 뒤끝인지라 더욱 그러했다. …내가 어렸을 적에 우리 식구들은 장마통에 꽤 여러 날 끼니를 걸렀다. 배가 고프다고 칭얼대는 이도 없었다. 쌀독의 배꼽이 드러난 지 오래였으므로 칭얼대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다 알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나는 천국을 만났다. 할머니가 벽장 속에 깊숙이 숨겨둔 베개 하나를 꺼내왔고, 베개의 실밥을 급하게 풀어가자 그 속에서 눈부시게 노란 조가 쏟아져 나왔다. 두 되쯤 됐을까. 그 조밥의 꿀맛이라니, 단 하나의 반찬으로 밥상 위에 오른 간장을 찍어 바를 여유가 없었다.…’
우리 선조에게 베개는 단순히 머리를 뉘는 도구가 아니었다. 쓰임새가 다른 다양한 종류의 베개는 한민족의 창의성을 대변한다. 조가 담긴 베개에서 보듯 어려운 미래를 대비하는 지혜도 담겨 있다. 특히 우리네 전통베개에는 칭얼대는 손자에게 할머니할아버지들이 기꺼이 내주시던 팔베개와 무릎베개의 정서가 배어 있다.
최근 웰빙 바람을 타고 베갯속에 곡물이나 약재를 넣은 일부 전통베개의 기능이 주목을 받지만, 정작 후대가 계승해야 할 부분은 따로 있는 것 같다.
참고문헌
네이버 지식백과 / 한국민속대사전/ 문화콘텐츠닷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