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 씨 앞세워 정관계 로비했나
이 씨가 1993년 해운대 인근에 지은 고층 건물. 임 씨는 1999년과 2000년 해당 건물 ‘스카이라운지’를 운영했다.
이처럼 이 씨는 지금도 초고층 건설 사업을 진행할 만큼 유명한 건설업자지만 90년대에는 ‘이보다 더 잘나갔다’는 게 업계의 전언이다. 무엇보다 특유의 사업 기질로 부산 지역에 인맥이 탄탄했다는 것이다. 시행개발 업무가 ‘전공’이었던 만큼 그는 로비의 귀재로 불리며 사업권을 획득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인맥 중에는 정관계 인사도 다수 포함되어 있다는 얘기도 파다하게 돌았다. 당시 B 건설사 대표였던 이 씨는 1993년 해운대 인근에 고층 건물을 지으며 사업에도 탄력을 얻었다. 해당 고층 건물은 이번에 혼외아들 의혹이 불거진 임 아무개 씨가 가게를 운영했던 건물이기도 하다.
임 씨가 해당 건물에서 영업을 하게 된 계기는 이 씨의 도움이 컸다고 한다. 그런데 이 씨가 임 씨를 대체 왜 도와줬는지는 미궁 속에 빠져있다. 그저 1993년부터 임 씨가 건물로 들어왔을 것을 감안해 그 이전부터 연을 맺었을 것으로 추측되고 있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부산 바닥이 워낙 좁다. 이전에 가게 주인과 손님으로 만났건 어쨌든 친분이 있어 그렇게 밀어준 게 아닌가 싶다. 둘만의 사생활이니 어떻게 알 수가 있겠느냐”라고 전했다.
임 씨가 부상하게 된 계기가 됐던 스카이라운지 영업도 이 씨의 도움이 결정적이었다고 한다. 한마디로 이 씨는 임 씨의 든든한 후원자였던 셈이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임 씨의 청담동 영업도 이 씨가 뒤에서 후원을 한 것이 아니냐는 얘기도 들리고 있다.
이 얘기가 사실이라면 이 씨가 이렇게까지 임 씨를 도와준 계기는 아직 밝혀지진 않았지만 일각에서는 여러 의혹이 떠오르고 있다. 무엇보다 “이 씨가 정관계 스폰을 위하여 임 씨를 앞세우고 마담 역할을 시킨 게 아니냐”는 의혹에 관심이 쏠린다. 이러한 의혹은 이 씨가 90년대 정관계 인사들과 상당히 친분이 있었다는 정황이 뒷받침을 해주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잘나가던 건설업자이기도 하고 젊었을 때 이 씨는 상당히 접대를 많이 한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지금은 나이가 들어서인지 그렇게는 안 하는 것 같다”라고 전했다.
1999년 벌어진 ‘다대 만덕 사건’은 이러한 의혹이 정면으로 드러난 사건이다. ‘부산판 수서비리 사건’으로도 불렸던 이 사건은 이 씨가 90년대 초부터 부산 다대, 만덕 지구에 대규모의 땅을 사들이고 1000억 원대로 추정되는 엄청난 차익을 남긴 사건이다. 당시 다대, 만덕 지구는 자연녹지 지역으로 부산시에서 ‘원형보존’ 방침이 결정됐음에도 일반 주거 용지로 용도 변경이 갑작스 럽게 이뤄지는 한편, 아파트 건축까지 승인되어 이 씨에 대한 특혜 의혹이 불거졌었다. 당시 언론보도에 따르면 “이 아무개 씨가 토지를 매입하기 시작한 시점은 89년 이전부터이며 90년 3당 합당 이후 민주계와 밀착해오다 92년 대선 후 형질변경작업을 본격 추진했다”며 정치권과의 ‘커넥션’을 집중 추궁한 바 있다. 당시 국회와 시민단체에서는 이 씨와 연루된 고위직 관계자가 최소 10명 이상이고 이 중에는 한나라당 P 의원, 부산지역 국회의원 4~5명, 부산시 전 고위간부, 전 검찰간부 등이 있다는 얘기가 파다하게 돌며 ‘이 회장 리스트’에 대한 촉각을 곤두세운 바 있다.
이 씨가 대표로 있는 A 사 입구. 아래는 99년 ‘부산판 수서비리 사건’으로 불렸던 ‘다대 만덕 사건’을 다룬 기사. 이 씨도 이 사건에 연루됐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1999년과 2000년에 부산지검 동부지청에서 근무하던 채동욱 전 총장도 이 씨와 연이 있었던 게 아니냐는 얘기가 돌고 있다. 결국 임 씨와 채 전 총장과의 만남 사이에는 이 씨의 소개가 있었던 게 아니냐는 것이다. 하지만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이 씨와 채 전 총장이 “일면식도 없을 것”이라는 목소리가 강하게 일고 있다. 당시 스카이라운지에서 근무했던 한 관계자는 “임 씨가 스카이라운지를 운영하게 된 초반부터 함께 일을 했지만 이 회장이 가게에 온 일은 한 번도 없었다. 이 회장이 임 씨를 밀어줬다는 소문은 익히 들었다. 이 회장 성품이 워낙 좋고 의리가 있다는 얘기도 은연중에 들은 것 같다”라고 전했다. 실제로 임 씨가 스카이라운지를 운영하던 1999년과 2000년에는 이 씨가 검찰 조사를 피해 잠적을 하고 있던 시기로 밝혀졌다. 때문에 채 전 총장과 친분을 쌓았거나 임 씨를 소개시켜줬을 가능성은 낮았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하지만 의혹은 여전히 남아있다. 무엇보다 당시 시민단체 사이에서는 다대 만덕 지구 사건이 상당히 축소 수사됐다는 목소리가 있었다. 이 씨가 검찰 쪽에 ‘끈’이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일었던 것이다. 당시 다대 만덕 지구 사건을 수사했던 검사는 부산지검 특수부에서 근무하고 있던 이부영 검사였다. 이부영 검사는 1995년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 내란음모 수사 당시 채 전 총장과 함께 수사를 담당한 바 있다. 때문에 이부영, 채동욱, 이 씨의 ‘삼각 친분’이 사건을 축소 수사하게 된 원인이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가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의혹일 뿐 사실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
현재 이 씨는 자신에게 둘러싼 여러 목소리들에 대해 묵묵부답인 상황이다. A 사 관계자는 “채동욱 전 총장이나 임 씨와 관련해서 회사 차원에서 할 얘기가 없다. 회장님 소재도 모르겠다”라고 전했다. 한편 법무부는 최근 부산에 감찰팀을 급파해 기업인 6명을 집중 감찰하며 채 전 총장을 알게 된 경위와 재정 지원 여부 등을 집중적으로 캐물은 것으로 알려졌다. 감찰팀은 이 가운데 이 씨를 주목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져 채 전 총장과 이 씨 사이에 어떤 연결고리를 밝혀낼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A 사 관계자는 “감찰팀이 조사를 나왔다는 것을 확인해 줄 수는 없다”며 극구 부인하는 모습을 보였다.
박정환 기자 kulkin85@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