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들의 장모님’으로 통했다
임 씨가 운영했던 부산 고층건물의 스카이라운지. 해운대 전경이 한눈에 보인다.
채동욱 전 검찰총장의 혼외아들 어머니로 지목된 임 아무개 씨의 첫 번째 ‘공개석상 등장’은 뜻밖이었다. 조선일보의 혼외아들 의혹 보도에 며칠 사태를 관망하던 임 씨는 언론사 몇 곳에 해명편지를 보내면서 정면대응에 나섰다. 하지만 임 씨는 그 뒤 이렇다 할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임 씨가 보다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는 것은 뭔가 말 못할 상황이 있다는 의혹을 부추기고 있다.
하지만 임 씨의 성장 기반이었던 대구의 여론은 그런 의구심과는 조금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임 씨는 대구의 명문인 S 여고를 졸업한 엘리트 여성인 것으로 전해진다. 그래서 대구에서 나고 자란 상류층 인사들 가운데 임 씨(대구에서는 임 씨가 윤초희로 알려져 있고 또 그렇게 부르고 있다)에 대해 아는 사람들이 꽤 있다. 이들의 대체적 반응은 임 씨가 채 전 총장의 아들을 과연 낳았을지 의구심이 든다는 쪽이 조금은 우세했다. 구체적인 팩트를 설명하지는 못하지만 정황상 아닐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대구의 명문고를 졸업한 뒤 법조계에서 일하고 있는 A 씨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임 씨는 검사들 사이에서 별명이 ‘장모님’이었다. 키는 작지만 지적인 외모에 매너도 좋고 매력적인 분위기라 좋아하는 검사들이 많았다. 임 씨는 또한 검사들 술 문화를 잘 알아 관리를 잘하는 편이었다. 입이 무겁고 믿을 만한 마담이었기 때문에 검사들이 부담 없이 편하게 술을 마셨다. 그런데 임 씨가 채 전 총장의 아들을 몰래 낳았다는 의혹은 좀 억측인 것 같다. 임 씨는 1990년대 중반부터 검사들과 친분이 깊었기 때문에 채 전 총장보다 훨씬 윗선의 고위층 검사들과 상대했다. 임 씨는 이름만 대면 다 알 정도의 검찰 최고위급 인사들을 많이 안다. 채 전 총장과 임 씨가 알던 시기는 채 전 총장이 검사 중에서도 하위간부였기 때문에 아들까지 낳으면서 은밀하게 사귈 상황이 아니었다. 그럴 수도 있지만 자연스러운 가설은 아니라는 것이다. 임 씨와 당시 상황을 잘 알고 있는 나로서는 채 전 총장의 혼외아들 의혹에 대한 얘기를 듣고 사실이 아닐 것이라고 확신했다.”
대구 출신으로 검찰 고위직을 지낸 뒤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는 B 씨도 비슷한 증언을 하고 있다.
스카이라운지에 빼곡히 걸려 있는 유명인사들의 사인 액자.
임 씨와 채 전 총장, 그리고 당시 상황을 잘 아는 검찰의 전직 고위급 간부들은 대체로 채 전 총장의 혼외아들 이야기를 믿지 않는 분위기였다. 선배들 몰래 대범하게 아들까지 낳을 정도로 채 전 총장이 이중생활을 할 수 있었겠느냐는 반응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임 씨가 ‘입’을 열 경우 핵폭탄이 될 수도 있을 것이라며 우려를 표했다.
임 씨는 주점을 운영하면서 검사들의 비밀을 워낙 많이 알기 때문에 ‘검찰의 장모님’으로 불렸다고 한다. 이는 임 씨가 한창 잘나갈 때 비교적 ‘어린’ 검사였던 채 전 총장 정도가 검사들의 상징적 마담인 임 씨와 은밀한 생활을 할 수 있었을까 하는 의혹과 맞닿아 있다. 또한 임 씨는 전 정권의 장·차관급과도 상당한 친분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법조계의 한 인사는 이에 대해 “최근 여권 인사들로부터 임 씨가 전 정부의 청와대 수석급 인사, 부처 장관과도 친분이 있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의외로 전현직 고위층 인사들 가운데 임 씨를 아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이들은 자신과의 관계가 드러날까봐 언급을 자제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그래서 임 씨에 대한 얘기도 그렇게 많이 나오지 않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임 씨는 또한 부산의 최대 재력가 중 한 사람인 모 회장과도 잘 알고 있다고 한다. 임 씨의 이런 고위층과의 폭넓은 인맥 때문에 일각에서는 임 씨 사건이 ‘제2의 장영자 사건’으로까지 커질 수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채동욱 전 총장의 혼외아들 사건의 폭발력은 바로 여기에 있다. 이 사건의 재판 과정에서 검사들의 은밀한 술 문화나 특정 인사에 대한 비밀스런 일화들이 드러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런 점에서 채 전 총장도 혼외아들 재판 과정에서 터져 나올 자신과 임 씨의 비밀스런 관계에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다. 이럴 경우 이번 사건은 아들의 DNA 확보를 둘러싼 책임공방으로 번져 영구미제로 흘러갈 가능성도 있다.
채동욱 전 총장과 오래전부터 친분이 깊은 한 의원은 이번 사건과 관련, “느낌상으로는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지만 아닐 가능성이 더 높다”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진다. 이 의원은 임 여인의 친척 소송 문제로 채 총장이 그에게 상의를 해와 상담을 해주며 그들의 존재를 알게 된 것으로 알려진다.
고진동 언론인·성기노 기자 kin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