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주사 강제 전환 미루기 ‘묘수’
제일모직 SPA 브랜드 ‘에잇세컨즈’ 매장.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삼성에버랜드가 지주회사가 되면 현재 19.3%인 삼성생명 지분율을 30%까지 늘려야 한다. 삼성생명 시가총액이 20조 원이니까, 2조 원 이상 추가지분을 매입해야 한다. 삼성생명이 가진 삼성전자 지분 7.2%를 지배목적으로 소유할 수도 없게 된다. 삼성 특수관계인의 삼성전자 지분율 17.67% 가운데 절반 이상이 사라지는 셈이다. 하지만 자산가치 1조 원이 넘는 제일모직 패션부분이 에버랜드로 넘어오면 총자산 가운데 자회사 지분가치가 50% 미만으로 떨어져 지주회사 강제전환 위험에서 벗어나게 된다.
덤도 있다. 패션부문 매출은 그룹 내 거래가 아니어서 삼성에버랜드의 내부거래 비중을 떨어뜨리는 효과가 발생한다. 지난해 제일모직 패션부문 매출액은 1조 8000억 원이 넘는다. 일감몰아주기 규제법안은 내년 2월부터 시행될 예정인데, 그 칼날을 피해갈 수 있는 셈이다.
세상이 주목하는 후계구도 관련성도 배제할 수는 없지만 아직은 가정의 가정이 필요한, 삼성SDS의 삼성SNS 흡수합병 등과 함께 살펴야 할 ‘큰 그림 속 하나의 퍼즐’ 단계다. 먼저 삼성에버랜드의 매출이 크게 늘어 이건희 회장 자녀들이 후계구도를 위한 자금을 마련할 것이란 가정이다. 이 돈을 바탕으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삼성전자 지분을 추가 매입하고, 이부진 사장과 이서현 부사장은 각기 제 몫의 계열사에 대한 지배력을 높일 것이란 시나리오다.
하지만 당장에는 많아야 연간 2000억 원 정도의 순이익이 날 에버랜드에서 후계구도를 위한 지분매입 자금을 충분히 마련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상장해서 자금을 마련하는 방법도 있지만, 그룹 지주사에 대한 지배력 축소를 감수해야 한다. 물론 지배력 감소를 최소화하면서 상장할 수 있는 방법이 없지는 않다. 삼성에버랜드를 지주사와 사업회사로 인적분할을 한 후 삼성생명 지분, 즉 그룹 지배력은 지주회사에 두는 방법이다.
이 경우 상장에 따른 그룹 지배력 약화우려를 줄일 수 있다. 특히 삼성에버랜드가 가진 15.23%가량의 자사주는 향후 그룹 경영권 향배를 가를 결정적 변수가 될 수도 있다. LG나 SK그룹의 지주사 전환 과정에서 인적분할 전 회사의 자사주는 지주사 주주의 지배력을 강화하는 역할을 했다. 현재 삼성에버랜드는 이 부회장이 25.1%, KCC가 17%, 이부진, 이서진 자매가 각각 8.37%를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이 역시 아직은 ‘가정’ 단계일 뿐 실현되리라 장담하기 어렵다.
다만 확실한 것은 이번 사업구조 개편으로 이건희 회장의 3남매가 삼성에버랜드에 모두 모였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이 부회장은 삼성에버랜드의 단일 최대주주고, 이 사장은 전략담당, 이 부사장은 패션부문 책임자로 경영에서도 ‘한솥밥’을 먹게 된다.
한편 제일모직은 이번 영업부문 양도에 따른 수혜가 적잖을 것으로 예상된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패션부문이 전체 매출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분의 1에 가깝지만 순이익 비중은 15% 남짓에 불과해 그만큼 이익률이 좋아질 여지가 크다”며 “아울러 1조 500억 원의 현금이 유입됨에 따라 재무구조 개선과 투자여력 확충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고 밝혔다.
최열희 언론인